부부가 긴 세월 살다 보면 다투지 않고 살기는 힘들지 않을까. 어느 부분이든 잘 맞지 않는 곳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만 읽어봐도 남편을 ‘나와 전쟁을 제일 많이 한 남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 부부도 그렇다. 침대의 온도부터 다르다. 나는 따뜻한 걸 좋아하지만 더우면 못 자는 남편은 겨울에도 시원해야 한다. 나는 단 커피를 싫어하는데 남편은 달달한 커피를 좋아한다.

어디 그뿐인가.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남편은 여행이나 쇼핑도 좋아하고, 나는 꼭 필요할 때 외에는 사람 많은 곳은 피곤해서 돌아다니길 즐기지 않는다.

급하고 직선적이어서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누가 있거나 말거나 화를 내서 가끔은 자존심도 상하고 한바탕하고 싶지만 대부분 참고 산다.

문정희 시인의 시에서처럼 그래도 나와 제일 많이 밥을 같이 먹은 남자이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아이들의 아빠이고 내가 아플 때 제일 먼저 달려와 줄 남자가 남편일 것 같아서다. 그래서 좀 맘에 안 들어도 되도록 ‘좋은 것만 생각하며 살자’ 그러며 산다.

얼마 전, 가까이 지내는 지인에게서 자신을 위로하는 아주 좋은 말을 배웠다. 평소 착하고 현명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던 분이다.

전직 교사였는데 좀 까탈스러워 보이는 남편과 살면서도 늘 교양미 있게 온화한 미소를 띠며 사는 조용한 분이어서 내가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그리 못 살아서 그 모습이 더 좋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하루는 남편이 소나무 전지를 한다고 그 옆 꽃밭의 아끼는 꽃을 여러 개 밟아 망가뜨려 놓았다. 아깝고 꽃들에게 미안해서 푸념을 했더니 왜 꽃을 소나무 가까이 심었냐며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마침 그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껄껄 웃으며 “그 꽃이 남편보다 더 소중하지는 않잖아요. 웃어넘기셔요.”하며 나를 위로하는데 듣고 보니 그 말이 진리였다. 이왕 벌어진 일, 화를 낸다고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참 좋은 말이었다.

남편이 퇴직하니 자연 함께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그러니 또한 의견 충돌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농장에서 서로 할 줄 모르는 농사일을 갖고 의견 대립을 하게 된다. 고춧대를 너무 짧고 튼튼치 못한 걸 해놔서 고추가 무겁게 달리니 쓰러져 버린다거나, 강낭콩밭에 지주를 너무 짧게 해놔서 콩 줄기들이 갈 곳 없어 허공을 허우적대고 있는 걸 보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생길 때마다 한마디 하고 싶고 속이 상하는데 그녀의 말을 생각하면 다 참아 넘길 수 있었다. 그 무엇이 남편보다 더 소중하랴 싶어서다.

이제 함께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남은 세월은 짧아만 간다. 누가 먼저 갈지 남게 될지는 모르나 부부가 서로 좋은 말만 하고 즐겁게 지내기도 부족한 아까운 시간들이다.

그이가 싫어하는 건 되도록 하지 말아야지 하고 내가 나를 훈련시키고 있다. 나에게 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