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물건에 과학적 원리가 담겨있듯 계영배(戒盈杯) 역시 사이펀(siphon)효과를 이용하여 만든 술잔이다.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하여 술을 어느 한도 이상으로 따르면 술잔 옆에 난 구멍으로 술이 새도록 만든 잔이다.

계영배는 보통 잔과 비슷해 보이지만, 잔의 가운데에 술이 흘러나가는 기둥이 있다. 중심 기둥은 잔 다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기둥 끝과 잔 다리 바닥에는 구멍이 나 있다.

기둥 끝의 구멍은 위로 기둥 꼭대기 내부의 공간으로 연결되고, 이 공간은 다시 아래로 다리 바닥의 구멍에 연결되어 흘러나간다.

계영배(戒盈杯), 출처: 네이버 블로그 구름바다
계영배(戒盈杯), 출처: 네이버 블로그 구름바다

계영배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군주 제환공(齊桓公)이 군주의 올바른 처신을 위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며, 늘 곁에 두고 마음을 가지런히 했던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리었다.

사실 제환공은 유좌지기(宥坐之器)를 늘 옆에 두고 있었지만, 그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그가 죽자 후계자 문제로 자식 간의 싸움이 오랫동안 이어져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을 정도였다.

어느 날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제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이 그릇을 보고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함을 가르쳤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우명옥’이라는 유명한 도공이 있었다. 그는 강원도 홍천사람으로 본명이 ‘우심돌’이었다. 질그릇을 만들어 팔던 우심돌은 우리나라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마침내는 그는 고향을 떠나 궁중에 그릇을 진상하던 광주분원으로 들어가 조선 최고의 장인이던 ‘지외장’의 제자가 되었다.

젊은 우삼돌은 주야로 스승의 지도와 피땀 어린 노력으로 도자기 기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가 만든 ‘백자반상기’를 만져보던 순조대왕도 탄복하며 상금을 내리고 치하할 정도였다.

스승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촌스러운 ‘우삼돌’이라는 이름 대신 ‘우명옥’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날로 우명옥의 명성이 높아지자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겼고, 때문에 우명옥은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자 그의 가슴속에 교만함과 부도덕함이 생겨 스승에게 예를 갖추지도 않았으며 늘 기녀 집을 다니며 술을 마시는 등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어느 날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던 그는 술이 과한 친구의 움직임으로 배가 뒤집혀 모두 빠져 죽고, 자신만 간신히 살아 나왔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우명옥은 초라한 자신의 모골을 보고 깊이 반성한다. 그리고 스승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다시 도공으로서 삶을 시작한다.

어느 날 그의 친구인 실학자 하백원이 찾아와 비밀리에 계영배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는 계영배를 만들어 그의 스승 지외장에게 바친다.

“이게 무슨 잔이냐?”, “'계영배'라는 술잔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입니다.” “다른 술잔하고 어떻게 다르냐?”,  “잔의 7부만 술을 따르면 마실 수 있고, 7부를 넘치게 채우면 모두 밑바닥으로 흘러내려 사라지고 맙니다.”

그 후 스승 지외장이 가지고 있던 계영배는 당대 최고의 거상 임상옥(林尙沃)에게 전해졌고, 그는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욕망을 경계하면서 조선 최고의 무역상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임상옥과 계영배, 출처 : 유튜브
임상옥과 계영배, 출처 : 유튜브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도가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계영배는 비록 술잔이지만 사람들에게 지나친 욕심과 욕망을 경계하고, 마음을 비우고 바르게 살아가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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