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시절에 가장 두려웠던 동물은 개가 아니고, 수탉이다.
우리 집 밭을 가려면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집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 집에서 기르는 수탉이 엄청 무서웠다.
그 수탉은 내가 그 집 앞만 지나가면 용케도 알고 쫓아 나와 나를 공격했다.
얼마나 공격적으로 대들고 쪼아대는지 내가 넘어져서 울면, 할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나와 닭을 쫓아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봄이 되면 수탉만큼은 아니지만, 암탉도 사납게 변했다. “구구구” 소리를 내면서 날개를 반쯤 펴고 다른 닭이나, 심지어는 강아지에게도 위협하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알 퉁가리에 다른 암탉이 낳은 알을 품어주기도 했다.
암탉이 이런 행동을 하면, 아버지는 수탉이 있는 집에 가서 달걀 20여 개를 사 오셔서 볼펜으로 까만 점을 그리고, 알 퉁가리(암탉이 알을 낳도록 짚으로 삼은 집)에 넣어주셨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그렇게 사납게 굴던 암탉이 얌전해지고, 알을 품기 시작했다.
20일 정도 지나면 어머니가 바빠지셨다. 하루에도 여러 번 헛간에 가서 알 퉁가리를 살피면서 병아리가 부화하기를 기다리셨다. 나는 병아리가 생겼나 보려고 암탉 깃털을 살짝 들어 올리다가 여러 번 혼나기도 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깨고 나온 알껍데기를 알 퉁가리에서 꺼내 얼기미(어레미의 충청도 방언- 구멍이 넓은 체)에 담았다.
그러면서 갓 깨어난 병아리를 얼기미에 담아서 보여 주셨다. 작고 노오란 병아리가 얼마나 귀여운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좁쌀을 물에 불려 모이를 주셨고, 그 옆에 그릇에 물을 떠 놓으셨다. 병아리는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를 반복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물을 목으로 잘 넘기려고 하늘을 쳐다보는 줄 알았다. 이런 행동은 소리개(솔개의 사투리)를 주의하는 본능적 행동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미 닭이 알을 품은 지 20일쯤 되면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속껍질을 쭉쭉 소리를 내며 빤다고 한다.
이 소리를 들은 어미 닭이 알껍데기를 톡톡 조금 깨준다. 그러면 드디어 새로운 생명체가 밖으로 나온다. 이 행동을 교육용어로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한다.
병아리가 안에서 나오려고 갈구하면, 어미 닭이 밖에서 동조해준다. 그러면 병아리가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다.
학생이 배움을 갈구할 때 스승은 옆에서 약간의 조력으로 스스로 학문을 익힐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슬쩍 밀어주는 것이다.
알이 스스로 깨고 나왔으니 위대한 생명체가 된 것이다. 만약 사람이 깨주었다면, 달걀부침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
‘넛지’라는 말이 있다. 잘할 수 있도록 팔꿈치로 슬쩍 찔러주는 것이다. 교육이 이렇다.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조력해 줄 때 우리 자녀는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