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대 절경에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이곳 트레킹 코스는 전문적으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곳으로, 보통 7박 8일 정도 하는 곳이다.

오늘은 종일 트레킹을 하는 날로, 가장 쉬운 구간을 온종일 하기로 했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기대하고 온 이곳은 버스를 한참 타고 가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한국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 더 좋았다. 늘 알프스산 같은 곳을 하루종일 돌아다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은 종일 트레킹을 한다니 얼마나 좋은가.

종일 트레킹을 하기 위해 미리 달걀을 삶고 과일을 사서 도시락을 푸짐하게 준비해 왔다.

남극에 가까워서인지 바람이 세다. 여기의 식물들은 바람에 적응하느라 키가 작다. 센 바람에 맞서지 않고 납작 엎드려서 살아가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생존이라기보다 거대한 자연에 대한 겸손이라고 말하고 싶다. 땅에 바짝 붙어서도 나름의 아름다운 색으로 갖가지 꽃을 피워내고 있고 열매를 조롱조롱 달고 있으니 말이다.

민들레도 한국 토종 민들레처럼 길손들의 발에 밟히면서도 꿋꿋이 살아내고 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맞서지 않고 바람이 흐르는 대로 제 몸을 일제히 뉘어서 이리저리 흔들어대니 군무를 추는 듯한 모습이다.

바람과 풀이 어우러져 합작 예술품을 만들어서 오가는 이들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갓 잡초로 여겨지는 풀들이 바람의 지휘에 따라 만들어 내는 초원의 예술작품이다. 풀도 예술임을 보았다.

풀들이 바람이 지날 때마다 핑크빛 물결을 이루며 초원의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반하여 주저앉아 넋 놓고 쳐다보노라니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다.

아예 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웠다. 누워서 쳐다보는 하늘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파란 하늘 위 구름은 더욱 가깝게 보이고 바람 따라 흩어지며 파란 하늘에 살풀이춤을 풀어 놓는다.

자연의 작품 위에 누워 있노라니 흐르는 시간이 미울 따름이다. 옆 지기는 그런 풍경에 취하더니 아예 코를 골며 단잠을 잔다.

마냥 있을 수 없어 일어서는데 왜그리 아쉬운 지…. 바람 햇빛 풀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작품 속에서 행복했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코스인 토레스 델 파이네를 걸어보면서 느끼는 충만감을 무엇에 비교하리.

눈앞에 보이는 산봉우리의 눈, 발 앞에 펼쳐지는 갖가지 꽃, 키 작은 툰드라 지역 풀들의 가녀린 손짓, 때론 과하지만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과 함께 비렁길도 걸어보고, 초원같이 펼쳐진 풀길도 걸어보고, 바람이 등 떠밀어주는 길도 걸어본다.

아마도 네팔 트레킹보다 한 수 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국화 닮은 노란 꽃 한 송이 꺾어 귀에 꽂고 빙글빙글 춤을 춰본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남미 땅끝마을에서 해보는 트레킹, 내겐 큰 행복이었다. 비록 하루였지만 더 이상을 원하고 싶지 않을 만큼 충분하였다.

이곳에는 소나무가 많은데, 잎의 크기를 줄여가며 나름 툰드라 지역에 적응해 가며 살고 있고, 우리의 쑥부쟁이와 닮은 풀은 잎을 흔적쯤으로 남겨놓고 바람에 꺾이지 않으려 가녀린 목만 내밀어 햇빛 바라기를 하고 있다.

땅에 붙어 목숨만 겨우 유지하는 것 같은 나무들도 자세히 보면 작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조롱조롱 달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을 하고 있음에 생명의 존엄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한 달쯤 일찍 왔더라면 마거릿이 하얗게 피어있는 모습도 보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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