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뜰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매번 새삼 느낀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수록 손바닥 만한 집 앞에 뜰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날 아침 나의 일터인 <루치아의 뜰>로 출근을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작은 뱀딸기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수줍은 노란 꽃들이 지고난 뒤 내 손톱만한 크기의 무르익은 딸기들이 올망졸망 맺혀 있는 게 아닌가.

조그마한 딸기알들이 가득 열리면 우리 집은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몇 해 전 장미과의 들풀인 뱀딸기를 구해 처마 밑에 한 줄 기차처럼 길게 심어놓고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마루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이고, 또 하나의 공간인 <초코루체>로 갈 때 바라볼 수 있는 곳인데 줄기들이 땅 위를 기면서 뻗어나가 지금은 제법 풍성한 한 뼘 딸기밭이 되었다.

열매는 독이 없어 먹을 수는 있지만, 관상용으로 보면서 찻자리에 다화로 쓰거나, 아이들이 올 때 재미로 따먹게 해주는데 무척 신기해한다.

어른들도 물론 좋아하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 철모르고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맛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집 고양이 명수도 그 옆에서 졸고 있다. 나는 우리 집 꽃들 중에서 뱀딸기꽃과 차꽃들에게 특별한 애정이 가곤 한다.

전에는 화려한 장미꽃이나, 꽃이 크고 탐스러운 작약꽃에 눈이 자주 갔지만, 요즘엔 작고 수수한 꽃들이 훨씬 좋다.

더욱이 딸기꽃은 수수해서 눈에 띄지는 않으나, 가지나 꽃의 영광이 시들고 나면 우리에게 그 열매를 준다.

그렇다. 열매를 맺는 꽃들은 그 어떤 꽃이든 겸손하고 단아하다. 우리 집 대문 옆에 있는 한국산 바나나라 불리는 은은한 자줏빛 으름꽃이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정결한 모습의 소화 수녀님을 닮은 하얀 차꽃이 그러하다.

장미는 장미로만 잎이 지고 만다. 그 화려하고 오만한 꽃만 지면 된다. 그러나 딸기꽃은 그에 비해 수줍고 초라하나, 시들면 붉은 딸기를 잉태하고 결국엔 우리에게 선물로 주지 않는가. 이 고마운 신비를 섭리하신 손길에 감사할 뿐이다.

내가, 우리 가족들이, 나의 선한 이웃들이 장미를 닮으려 하지 말고 수수한 딸기꽃을 닮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연히 건네는 배려 섞인 몇 마디 말과 자태, 부드러운 미소만으로 갑자기 팍팍한 세상의 풍경을 바꾸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세상 곳곳에서 자신만의 맛과 사랑스런 열매와 향기를 전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 상상만으로도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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