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의 기(杞) 나라에 하릴없이 몽상(夢想)에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보다못한 친구가 “하늘은 기(氣)로 뭉쳐 있어 결코 무너질 염려가 없다”며 달랬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달과 별들까지 떨어지는 사태를 우려했다. 친구가 다시 “기로 된 해와 달.별들은 비록 머리에 떨어져도 다칠 염려가 없다”고 설득하자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이 사람이 살던 시대에만 해도 ‘천지붕괴’가 괜한 걱정일 수 도 있었다. 그러나 환경재앙이 우려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천변지이(天變地異)가 꼭 기우라고만 생각할 수 없게됐다.

쓸데없는 걱정인지 필요한 걱정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최근 울산시 교육감 선거를 놓고 말들이 많다. 후보 난립에 따른 과열선거 분위기와 함께 거론되는 후보자의 자질론도 대두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이 교육감 선거에 개입 의사를 밝혀 논란이 뜨겁다. 발단은 특정 정당 소속의 모 지역구 의원이 울산시 교육감 선거의 예비경선(cut-off)제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부터다.

발언 당사자는 지역구 국회의원 중 연장자로, 한나라당 소속이다. 이 의원은 지난 3일 자신의 국회법사위 위원장 축하간담회 자리에는 교육감 선거 방법론을 언급했다. 10여명의 후보 난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본선 등록에 앞서 예비후보를 뽑는 ‘컷오프’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자리에서 지역일간지 기자들과 같은 당 지역구 의원 3명등 당관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다음날인 지난 4일에도 이 의원은 “이번 교육감 선거는 친한나라당 인사들이 대거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어 사전검증 등을 통해 본선 후보자를 압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이 지역정가와 교육계등에 알려지자 비난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교육단체와 학부모단체등은 이 의원의 문제발언을 “정치권, 특히 특정 정당이 교육감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라며 “교육발전을 위한 방법론은 개인 차원에서 제시되야지, 특정 정당이나 그 정당의 소속 의원이 함부로 거론할 일은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5일 전교조 울산지부도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 지역국회의원들의 교육감 선거 개입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며 “정당공천이 금지된 교육감 선거에서 ‘컷오프’ 운운은 암암리에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불법행위”라고 규탄했다.

재선거 형식으로 치러지는 이번 울산교육감 선거는 사실 지역의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제대로 된 교육감을 뽑겠다는 유권자의 판단과 교육수장으로 뽑히고 싶어하는 출마예정자들의 의욕 또한 각별하다. 비록 정당공천은 배제돼 있다 하나 직접선거로, 그것도 대선과 같은 날짜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 정치권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같은 색깔의 출마자들이 혼전을 펼칠 경우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감선거를 마치 한나라당 자신들의 잔치인냥 착각해서는 안될 일이다. 예비후보자들 중에는 평생을 교육계에 헌신해 왔고 평소 정치권을 혐오해온 인물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컷오프’ 제기의 배경이 된 ‘친 한나라당’후보 난립도 부질없는 걱정이다. 지역 유권자 대부분은 그런 성향의 인물들을 훤히 꿰뚫고 있고 교육감으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따논 당상’인냥 교육감 선거의 승리를 확신하는 한나라당 지역국회의원의 이번 발언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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