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늦게 현대자동차 파업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울산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범시민적으로 이번 사태의 조기해결을 촉구해왔던 분위기와는 달리 실망스럽고 허탈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5년째 영업용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울산 H교통 김모기사 (43)의 말이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번만큼은 회사측이 뭔가 보여줄 줄 알았는데 또 노조에 무릅을 꿇고 말았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택시영업도 타격을 받지만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번만은 현대차문제가 정상적으로 처리되기를 바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노조의 위협적이고 상투적인 단체행동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용렬하고 무기력한 회사측 대응태도 또한 한심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자동차의 소나타택시를 몰았고, 한달 수입이 얼추 120만원 수준이었다.

경주시 외동읍에서 종업원 30여명을 거느리고 부품업체를 하고있는 박 사장(54)은 "설을 앞두고 그나마 정상조업이 돼 한시름 놓게 됐다"며 그래도 이번에는 파업기간도 짧고 회사측 손실규모도 적어, 하도급업체가 떠안을 부담이 크지 않을 것" 이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부인과 동업으로 12년째 현대자동차에 하도급을 하고있는 박 사장의 연봉은 부인 몫을 합쳐 6천만원 정도이고, 모(母)기업의 분규와 관계없이 상급업체의 납품단가(單價)후려치기는 연례행사라고 털어놓았다.

직업이 보험설계사라는 한 오십대 남자는 대뜸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와 "신문 전면의 광고비가 얼마쯤 되느냐"며 따지듯 물었다. 가격을 일러주고 광고내용을 묻자 그 남자는 "현대자동차 불매운동 캠페인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대신 몇마디라도 신문에 실어달라" 고 떼를 썼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톤의 음성으로 "연봉 5~6천만원을 받는 근로자가 걸핏하면 파업을 하고, 파업 잘했다고 회사가 격려금을 주는 나라가 어디있느냐"며 "노조도 망하고 기업도 망하고 나라도 망해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될 것" 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덧붙여 그는 "파업으로 입은 손해는 협력업체에 은근설쩍 떠넘기고 기존모델에 외형만 조금 바꾼 차를 신차라며 출고가격 올리는 현대자동차를 그래도 사야 하겠느냐" 고 윽박질렀다. 현대차만 세번째 갈아타고 있다는 그는 "이제 현대차를 타는 것조차 부끄럽다" 며 거칠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처럼 이번 현대차 사태 해결을 놓고 국민대다수는 물론 언론과 관련기업, 정부부처에서 까지 실망스러워 하는것은 회사 경영진의 소신없는 경영철학때문이다.

당초 회사는 노조측이 성과금 차등지급을 이유로 걸어온 태클을,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의 기회로 삼고 원칙과 상식으로 배수의 진을 친듯 싶었다. 단호하고 당당하게 "나쁜 노사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이번만은 양보없이 원칙을 고수하겠다" 고 밝혔다.

그것도 정부와 언론, 시민과 소비자 다른 기업을 향한 다짐이자 약속이였다. 20여년 가까이를 현대자동차 분규사태를 목격해온 울산시민들로는 "이번만은 노조를 의식한 엄포성 다짐이 아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딴판이였고 의외인데다, 허망하기조차 했다.

정부와 각계각층의 지원은 물론 절대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고도, 그렇다면 왜 회사는 빼든 칼을 도로 접었을까? 우선경영쇄신에도 자신이 없는데다 기업총수마저 부정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중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업철회와 협상 조기타결을 미끼로 노조위원장과 뒷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고 돈받은 쪽만구속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도덕성으로만 따지자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는 조건으로 돈을 받은 쪽 못지않게 돈을 건넨 회사측도 치명상을 입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결국 최근 불거진 이같은 일련의 사태가 회사로 하여금 조기 상황종결 을 선언하지않을수 없게한 셈이다. 이러고도 현대자동차가 과연 국민기업이라 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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