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남
전홍남

지난 8월 18일 짬을 내 원주 아카데미 극장을 다녀왔다. 원주 아카데미를 찾아가기로 작심한 것은 소설 호서극장의 김홍정 작가가 출연한 토크 콘서트 때문이었다.

그는 호서극장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가운데 원주에서 머무는 동안 자세히 보았다는 공주 호서극장의 일생(一生)을 똑 닮은 원주아카데미 극장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른 점은 원주의 그곳은 작년부터 재생(再生)의 움직임이 있고, 여기 호서극장은 아직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방치된 듯 덩그러니 남아있다”고 말했다.

공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서극장과, 아카데미극장, 중앙극장에 대한 추억을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당시 이 극장들은 영화는 물론이고 음악회, 시 낭송회, 새마을 촉진대회, 궐기대회, 연극 등 다양하게 이용됐던 공간이다.

과거 공간 활용 면에서는 공주의 극장이나, 원주의 극장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만큼 한수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보다 좀 일찍 재생사업에 눈을 뜬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찾아간 것이었다.

원주아카데미극장. 폐관 후 14년간 문을 닫고 있지만, 원주영상미디어센터를 통해 재생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주시는 극장 소유자와 극장 및 주변 토지 매매 협약을 했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월요일이었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어서 휴관이었다. 하지만, 마침 지방의 모 대학 학생들의 단체 견학이 예약되어 있었다. 덕분에 학생견학이 종료된 후 단독으로 극장안내를 받는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됐고, 원주 영상미디어센터 변해원 사무국장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변해원 사무국장에 따르면 원주의 극장은 총 4곳이 성업했다고 한다. 1956년 원주극장이 최초로 개관했고, 1962년 시공관, 1963년 아카데미극장, 1967년에는 문화극장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당시의 극장은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학생은 물론 중·노년 모두에게 인기 있는 여가공간이자, 좋은 데이트 장소였다.

주전부리를 사기 위해 늘 북새통이던 매점부터, 무표정한 매표소 직원, 표 검사하는 무섭게 생긴 기도, 행여나 영화가 시작할까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까지. 이렇다 할 여가문화를 즐기지 못했던 당시 여가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극장이었다.

원주 아카데미 극장의 내부 모습. 비교적 보존이 양호해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새마을운동 촉진대회 등 많은 행사가 열리는 중요한 장소였다.

이후 1980~1990년대는 유명한 영화들이 줄이어 상영됐고, 가끔 시낭송대회, 음악회 등이 열리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극장은 선거철이면 단골 유세장으로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40여 년 간 원주시민과 함께 성장해 온 극장은 지난 2005년 복합영화관(롯데시네마)이 입점하면서 침체를 거듭하다가 1년 뒤인 2006년에는 시공관, 원주극장, 문화극장이 문을 닫았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변해원 사무국장이 극장 내에 설치된 수족관. 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자 원주시에 단 하나 남은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려는 시민들의 열망이 일어났다. 원주아카데미극장 철거소식이 나온 이후 뜻있는 지역주민들은 “마지막 남은 아카데미극장만큼은 보존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로 지난 2016년 지역 문화예술인과 도시재생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돼 시장 상인 ,문화기획자, 시의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포럼을 열었다.

당시 원주시민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참여자 88%가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을 찬성했다.

이처럼 원주시민들의 보존에 대한 공감대가 확인되자마자 곳곳에서 기다렸다는 듯 아카데미극장 활용방안들이 봇물처럼 흘러 나왔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와 원주도시재생연구회는 이러한 시민의 열망을 등에 업고 2016년 7월 아카데미극장과 얽힌 사연, 사진, 영화포스터 등을 수집해 ‘아카데미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과거 아카데미극장을 다시 만나는 ‘아카데미로의 초대’는 타임머신처럼 순식간에 시간을 되돌려 1970년대로 시민들을 안내했다.

그 시절 극장 상영일지와 매표소에서 표를 찍어주던 도장, 필름 영사에 사용한 제논램프가 로비 한 가득 전시됐다. 그리고 당시 영화관을 운영하던 사장의 가족이 기거하던 살림집까지 개방했다. 덕분에 이제는 나름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아낼 만큼 충분한 가치를 가지게 됐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지만, 예약된 대학생단체 관람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원주시역사박물관도 아카데미극장 보존에 힘을 보탰다. 원주시역사박물관은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근대역사 문화 공간 재생활성화 사업에 공모해 아카데미극장을 도시재생의 핵심 콘텐츠로 선정, 주변 일대를 원주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원주시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카데미극장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이에 따라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요구 또한 확산됐다.

이후 지역사회가 똘똘 뭉쳐 소유주를 설득한 끝에 아카데미극장은 지난해 철거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원주시는 지난달 아카데미극장 소유자와 극장 및 주변 토지 매매 협약을 추진했다. 협약내용에는 올해 문화재청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소유주는 등록문화재 지정에 동의하고,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과 인접한 주차장을 매입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원주시민의 바람인 ‘극장 보존’은 문화재청 공모에 선정이 돼야만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영상관이 하나뿐인 마지막 단관극장인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원주시민들의 추억과 미래를 담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원주아카데미극장을 보면서도,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변해원 사무국장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필자의 머릿속에는 공주의 호서극장과 아카데미 극장이 오버 랩 되고 있었다.

우리지역의 호서극장 또한 오랜 시간 문을 닫고 있어 공주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또한 호서극장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갇혀있는 느낌이어서 무척 답답한 느낌이다.

공주시에서도 최근 호석극장의 활용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잘 간직하면서 추억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안으로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랄까? 원주 아카데미극장 재생 사업을 모델로 삼아 공주의 호서극장도 심폐소생을 통한 신선한 바람이 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호서극장에 갇혀 있는 추억들이 언제쯤이면 되살아날 수 있을까.

공주시민과 학생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호서극장 전경.
공주시민과 학생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호서극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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