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乘馬라는 운동을 시작한 지도, 9년이 다 되어간다.

말馬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연구 때문이었다. 28세의 이순신은 무과武科시험장에서 낙마落馬를 하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고, 결국 낙방하고 말았다.

말을 어떻게 다뤘기에 낙마를 했을까? 그때, 이순신의 심사心思는 어떠했을까?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낙방의 정신적 충격과 육신의 상처로 번민했을 이순신의 마음을 좀더 지근至近거리에서 이해하고 느껴보고자 말을 친구로 삼게 되었다.

현재는 승마용 부츠에다 박차拍車를 달고 마장馬場 밖으로 말을 데리고 나와 외승外乘을 하는 수준이지만, 초보자 시절에는 덩치 큰 말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승마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공주승마협회 회원들과 승마기술을 전수해 준 공주대 대기과학과의 소선섭 교수님께서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다른 승마클럽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지만, 과거 마장에서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과 감사하는 마음만큼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동안 필자는 승마교본을 비롯한 국내외 말 관련 책들과 잡지, 그리고 ‘황야의 무법자’와 같은 유형의 서부극과 ‘호스 휘스퍼’ 같은 영화를 통해 말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넓혀왔다.

또 말 전문가들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그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데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말도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말은 마력(馬力; 물건을 움직이는 힘을 헤아리는 단위로서 1초 동안에 75킬로그램의 물체를 1미터 움직이는 힘을 의미한다.)이라는 단어가 시사해 주듯이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의외로 겁이 많은 동물이다.

또 그들은 기수騎手의 말 다루는 기술수준이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꿰뚫어 볼 줄 아는 매우 영리한 동물이다.

가령, 중급수준 이상의 기수가 말에 오르면 그 녀석들은 바짝 긴장을 하고, 기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수가 박차를 이용하여 말의 옆구리에 통증이 따르는 압박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겁먹은 초보자가 말에 오르면, 그 녀석들은 곧바로 기수의 컨트롤 능력 부재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처음에 승마를 배우는 사람들이 혼비백산魂飛魄散 하는 것도 말의 그런 습성에 기인한다.

또 ‘당근과 채찍’이라는 용어가 승마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단언할 만큼, 말은 당근을 무척 좋아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말을 유인할 때나 애정을 표시하고 싶은 경우, 당근을 이용하면 효과가 만점이고 그 녀석들도 당근을 자주 주며 친근하게 대해주는 기수에게 호감을 갖고 잘 따른다.

이것을 보면, 사람이든 말이든 지네들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세상사世上事의 보편적인 현상 같다.

한편, 채찍을 싫어하는 것도 모든 말의 공통점이다. 아니, ‘무서워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말들 가운데는 채찍을 들거나 보여주기만 해도 무조건 도망을 치거나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도 있다. 그런 녀석은 대부분은 마장 주인이나 기수들에게 채찍으로 많이 얻어맞았거나 학대를 당했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또 그런 말은 승마 도중에 갑작스런 발작 증세나 난동을 부려 기수를 당황하게 하거나 예측불허의 낙마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런 말은 초보자용으로 부적합하다.

메살라가 유다 벤허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필자가 말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실전경험을 쌓아가면서 늘 관심 있게 지켜본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벤허(Ben-Hur, 1959년 작품)’라는 영화다. 세인世人들로부터 불후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그 영화의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充滿하면, 어떠한 역경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종교적 메시지였다.

그러나 말 전문가를 꿈꾸는 필자에게는 ‘벤허’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즉 거친 호흡을 하며 사력死力을 다해 달리는 말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속에서 유다 벤허와 메살라의 숙명적인 대전차경주와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승리의 비결이 압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쉼 없이 내리치는 가혹한 채찍질과 준마駿馬급의 흑마黑馬들, 그리고 살기殺氣서린 톱날로 중무장한 전차戰車를 갖고서도 메살라(스테판 보이드가 역을 맡았다.)는 유다 벤허(찰톤 헤스톤이 역을 맡았다.)와의 대전차경주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메살라는 부상의 후유증으로 끝내 죽음을 맞는다. 모든 조건에서 유다 벤허보다 유리했던 메살라가 참패를 당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월리엄 와일러 감독의 각본이 유다 벤허와 메살라의 운명을 그렇게 엇갈리도록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영화상의 픽션이 아니라 현실에서 대전차경주를 했더라도 유다 벤허가 메살라를 이겼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말을 다루는 인간적인 자세에서 유다 벤허가 메살라보다 한 수 위였기 때문이다.

메살라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앞둔 전날 밤, 유다 벤허는 조용히 마구간을 찾아가 자신의 전차를 이끌 네 마리의 백마白馬들과 일일이 포옹하면서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 당일 날, 유다 벤허는 채찍을 사용하는 대신 열정과 애정을 담은 함성으로 백마들의 질주를 독려했다.

흑백黑白의 칼라가 선악善惡을 구분하듯, 선善의 화신이었던 유다 벤허의 격려를 받고 혼신을 다해 달린 백마들이 악惡의 상징인 메살라의 채찍에 겁을 먹고 달린 흑마들을 보기 좋게 이긴 것이다.

유다 벤허와 네 마리의 백마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리더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각 조직의 리더들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조직관리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고 있으며, 교육계의 리더들 또한 ‘체벌體罰불가피론’을 심정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필자는 리더들의 그런 시각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이것은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몸소 경험하고 터득한 필자 나름대로의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하는 얘기다.

조직 구성원이 어떤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그가 불성실한 근무자세(태만 포함)나 악의惡意를 품고 한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면, 그를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만약 리더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처벌이나 좌천을 예상했던 당사자는 조직의 발전과 리더에 대한 충성을 위해 심기일전心機一轉할 것이다.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또 학생들이 일탈행위逸脫行爲를 했더라도 교육자가 적어도 세 번까지 아량과 인내심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따뜻한 충고까지 곁들여준다면, 그들 역시 선생님의 깊은 사랑과 관심에 머리를 숙이고 더 이상의 나쁜 짓을 자제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학교에서는 더 이상 ‘참을 인忍’자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 결과 일선 교육현장은 교사의 체벌과 학생의 ‘112 범죄신고’가 공존共存하는 갈등의 전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리더들이 알아야 할 ‘罪’자의 진정한 의미

‘죄(’허물이 있다.’는 뜻이다.)’를 한자로 표현하면, ‘罪’가 된다. 그런데 ‘罪’는 ‘四(넉 사) + 非(아닐 비)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비슷한 유형의 실수를 네 번 하면, 아니 된다. 즉 허물(죄)이 된다.’는 뜻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세 번까지의 잘못은 허물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된다. 필자가 “학생들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적어도 세 번까지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말馬의 세계에서 일류 조련사는 조마색(調馬索; 일종의 끈으로서 긴 끈의 한쪽은 말의 재갈에 달고, 다른 한쪽은 조련사의 손으로 컨트롤하면서 말에게 원형 훈련을 시킬 때 주로 사용한다.)과 휘파람만으로 사나운 말을 얌전한 말로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또 채찍과 고성高聲으로 위협만 하면서 말을 조련하는 사람은 이류 조련사, 그리고 물리적인 학대나 가혹한 채찍질로 말을 길들이는 사람은 삼류 조련사로 간주한다.

그와 마찬가지 논리로 엄벌嚴罰을 통해 조직이나 부하직원을 관리하려는 리더나 체벌로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교육자 역시 일류 리더로서의 자질이 결여된 사람들이다.

또 그런 사람들이 국가 경영, 민간기업 경영, 학교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한, ‘한국 사회의 밝은 미래는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갈가리 찢겨져 있다. 전교조와 교원단체총연합회 그리고 자유교원노조간의 상호 반목,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서울특별시와 충청도의 지역갈등(신행정수도의 건설문제가 화근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대립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남북통일도, 국민소득 3만 불(“분배의 정의를 충족시킬 경우에 한해, 경제성장은 그 본래의 의미를 회복한다.”는 고 정운영 박사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상의 선진 사회건설도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간절하게 희구希求하는 것은 사회구성원간에 상호 화해와 격려를 통해, 그동안 복잡 미묘하게 꼬였던 매듭을 풀고 모두가 하나 되는 국민대통합을 도모할 수 있는 위대한 리더의 출현이다.

따라서 필자는 유다 벤허처럼 신神에 대한 경외감과 따뜻한 인간애를 가지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가치 충돌을 아우르면서 ‘원칙’과 ‘정의’를 올곧게 세워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든 열렬히 지지해 줄 생각이다.

필자와 학연·지연·혈연·종교연이 완전히 다를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때, 실수와 실패를 중시하는 기업경영의 선진화와 체벌 없는 교단혁신이 가능할 것 같기에.

참고로, 필자는 선생님들(어찌 보면, 그분들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 불과하다.)로부터 청소용 걸레 자루로 매를 맞고 인간적인 무시를 당하면서 고교시절을 보낸 슬픈 기억들이 많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그것이 그리 큰 잘못(필자는 스스로 산업화 시대의 획일화 논리가 맹위를 떨쳤던, 그 당시 학교 교육의 피해자였다고 확신한다.)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훈육주임 선생님들은 신병훈련소의 성난 조교처럼 단 하나의 잣대로 청소년기의 다양한 생각과 꿈, 그리고 톡톡 튀는 행동을 철저하게 짓눌렀다.

필자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잃지 않고 잘 간수해온 덕분에 창의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 , , , 등 다수가 있다. 조만간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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