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전개는 한 제국이 쇠망해 갈 무렵부터 시작된다. 2세기 중반에 즉위한 황제는 사리사욕에 눈이 먼 환관들의 술수에 넘어가 충신들을 멀리했던 무능한 황제였다.

이어서 나이어린 영제가 즉위한 이후, 환관들의 권력이 더욱 강해지게 되자 반대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정치권은 부패하게 되고, 악정으로 인한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져 각처에서 도적이 들끓어 사회기초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 왕조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이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민중들 사이에는 신흥종교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장각은 ‘태평도’라는 종교를 만들어 신기한 지폐와 물로 신자들의 병을 고쳐준다고 하면서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184년 전염병이 발생하자, 이것을 기회로 순식간에 신자를 확보하게 된 장각은 신도들로부터 신처럼 숭배받기 시작했다.

장각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자, 허황된 꿈을 꾸게 됐다. 결국 장각은 한 왕조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황건적이라고 불린 이유는 장각의 신자들이 황색 두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수가 무려 40~50만 명에 달했다.

황건적은 유비(劉備, 161년~223년)가 살고 있던 유주에도 침입하게 된다. 유비는 촉나라의 황제(제1대 황제, 221년∼223년)에 오른 인물로 지략이 뛰어난 편도 아니고, 무예가 출중하지도 않았으나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

비록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신발·돗자리를 팔아 생계를 잇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한 왕조의 혈통(前漢 경제의 皇子 중산정왕의 후손)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장차 천자가 될 인물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성인이 된 후에도 마음에 품고 있던 뜻은 높았으며, 시골생활 가운데서도 항상 천하를 생각하고 있었다.

15세 때 노식(盧植)에게 사사하여, 동문 공손찬(公孫瓚)과 교의를 맺었다. 그러나 학문을 즐겨하지 않고 호협(豪俠)들과 교유했으며, 장비와 결의형제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무리를 모아 토벌에 참가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그 뒤 공손찬에게 의탁해 원소(袁紹)와의 대전에서 공을 세웠다.

조조(曹操)와 서주목(徐州牧) 도겸(陶謙)과의 대전에서 도겸을 도왔다. 도겸이 죽자 서주목이 됐다.

196년 원술(袁術)로부터 공격을 받자 조조의 구원으로 원술을 물리치고, 진동장군의성정후(鎭東將軍宜城亭侯)에 임명돼 조조에게 의탁했다.

그러나 조조 모살계획에 참가했다가,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자 하비로 탈주했다. 원소, 조조의 관도대전(官渡對戰)에서 원소와 동맹하고, 이에 패하자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에게로 가서 객장(客將)이 됐다.

이 무렵 삼고초려로 제갈 양(諸葛亮)을 맞아들여 그의 계략으로 형주에서 기반을 구축하던 중, 유표가 죽고 그의 아들 유종(劉琮)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공격해왔다.

손권(孫權)과 동맹해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대파, 형주를 확보했다. 조조가 한중(漢中) 침입을 기도하자, 익주목(益州牧) 유장(劉璋)의 요청에 따라 명장 관우를 형주에 잔류시키고, 촉(蜀)에 들어가 유장을 항복시키고 촉을 수중에 넣었다.

그러나 형주의 영유문제를 놓고 손권과 대립, 명장 관우가 패사하고 형주는 손권이 영유하게 됐다.

이때 유비는 한중을 공격해 한중왕이 됐으며, 220년 조비(曹丕)가 한나라 헌제의 양위(讓位)를 받아 위(魏)의 황제가 되자, 221년 그도 제위에 올라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국호를 한(漢:蜀漢)이라 했다.

다음해 형주의 탈환과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공격했으나, 이릉(夷陵)의 싸움에서 대패해 백제성(白帝城)에서 후사를 제갈 양에게 위탁하고 병사했다.

이처럼 삼국지의 영웅들 중 한 사람인 유비는 뛰어난 지략가이거나 출중한 무예가도 아니면서 결국 황제에 오르게 되는데, 그 꿈을 실현시킨 최대의 요인은 유비의 품은 뜻이 높았음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유비의 ‘관대함’, ‘인덕’ 혹은 유능한 인물들을 제어할 수 있는 ‘카리스마’ 등을 출세와 성공의 비결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말을 바꿔보면, 유비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어수룩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성격은 여러 상황에서 출세와 성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항상 품고 있던 목표설정이 없었다면, 그가 실제로 황제에 등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유비의 원대하고 큰 목표가 보잘 것 없는 그를 황제로 만들었고, 그 꿈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상과 목표는 크고 높게 가지되,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매일매일 반복적인 자기암시(Mind Controll)뿐만 아니라, 장단기 실천계획(Road Map)도 세워야 자신의 꿈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쿠나이 토시히코의 ‘삼국지 리더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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