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석가탄신일(음력 4월8일)이면 나는 언제나 특별한 날로 정해 산사를 찾는다. 난 카톨릭신자이지만, 그날만은 왠지 스님의 설법도 듣고 싶고, 산사의 정취에 흠뻑 빠지고 싶기도 해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절의 나무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 맛난 쑥 절편, 간장 미역국, 비빔밥은 생각만으로도 이미 뭔가 편안하다. 마치 잠깐이라도 속세를 떠나 비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다문화가족 문화예술 교육이 주말에 잡혀있어 그 맛난 떡과 비빔밥을 먹지 못한 2019년이 되어버렸다.

지난 14일 시간을 내어 가끔 찾아뵙는 스님께 전화를 드려 차공양이라도 부탁했더니 쾌히 승낙하시어 딸아이와 함께 청양 장곡사로 향했다.

스님은 차와 함께 ‘현전일념(現前一念)’과 “평범한 가운데 잘살고자 한다면 쉽게, 바르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내가 예술치유를 전공한 것을 아시기에 ‘표현’이라는 단어를 쓰신 것 같다.

또한 보통 때에는 말씀을 잘 안하시는 스님이 차를 마시며 툭 던진 이 말씀은 아마도 미련한 내게 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시는 듯 했다.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정작 실천이 초등생 수준에서 머물게 되는 것이다.

스님은 “공부하는 마음으로 양보하고 배려하다 보면 보이는 곳에서는 손해가 나는 듯하지만, 결국 상쾌해지고, 자신에게도 보상의 힘이 생기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느 날 문창호지를 바르다 다치시어 병원에 오랫동안 계셨는데 공부하다 죽으려고 출가를 생각했지, 창호지를 바르다가 죽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하시면서 그때 절실함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쭉정이는 시련이 닥치면 그냥 주저앉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시련이나, 어려운 역경이 오면 그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나 지혜의 눈을 뜬다. 이것이 새로움의 가능성이고, 그 사람의 진면목”이라고 하셨다.

스님과의 만남이후 조금은 나태해질 뻔한 나의 삶에 나사를 조이는 듯 눈동자에 힘을 주게 되었다.

딸과 함께 청양에서 공주를 오는 길에 풍기는 아카시아 향을 향해 합장하며 인사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세상만사는 모든 변하지만, 그 변화가운데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며, 그 힘을 기르는 것이 건강한 표현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41번째 동작치유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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