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따듯한 붉은 흙 부뚜막의 이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추운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봄 냄새가 솔솔 풍겨올 때 저의 선친은 아카시아 나무를 하러 가셨지요.

우수(雨水)가 지나 산 너머 세제골에서 땔감으로 베어온 아카시아 나무 속살에는 불규칙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 아카시아나무를 아궁이에 땔 때면 푸짐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아카시아 나무는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 한줄기 물을 가지로 끌어 올리느라 한참인 때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물줄기가 촉촉하기까지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아카시아 나무는 아궁이에서 푸짐하게 소리를 냈던 것이었습니다.

선친께서는 그 때 칡뿌리도 캐 오셨습니다. 알이 벤 칡을 손가락 길이만큼 톱으로 여러 개 썰어 가족들의 주전부리로 주셨지요.

알이 벤 칡뿌리의 맛은 쓰고도 달았습니다. 비록 씁쓸했지만, 깔끔함이 어떤 맛인지를 알게 해 준 기준이 된 저의 첫 번째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서둘러 봄바람을 불러오려합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생각이 오늘의 저의 소소한 행복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봄바람은 이렇게 촌스러운 사람을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려 그리 많은 느낌을 있게 해 주었나 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재산이고, 감사한 일인지 이제야 알게 됩니다. 지금 아무리 양념으로 범벅을 해도 예전의 그 가미되지 않은 깔끔한 맛을 찾을 수 없으니, 그 옛날이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맛을, 그 느낌을 그때 못 보았다면 아마도 깔끔한 맛의 기준이 어떤 맛인지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 삶도 깔끔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노후 계획이고, 바람입니다.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삶, 가미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삶, 황토 부뚜막 같은 삶.

지글거리며 타오르던 붉은 아카시아 불 아궁이 앞에서 알이 벤 칡뿌리를 꼭꼭 씹어 더 이상은 물이 나오지 않고 껌처럼 될 때처럼 더는 행복을 찾지 않아도 되는 그 맛을 행복의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때의 일상의 기억 속의 그림으로 오늘 전 봄과 함께 마음의 농사를 시작하려합니다. 아주 단순한 삶의 농사를….

저는 그런 삶이 서른여섯 번 째 동작치유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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