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열리는 축제의 25%는 10월에 열린다. 전국 지자체에서 10월에 축제가 열리지 않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이 수많은 것들 중에서 옥석을 가리기도, 차이를 구별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사람들의 선호는 다양해지지만, 축제는 단조로워 지고 있다. 다양성이 소거되었다. 현대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욕구들은 점차 고차원화 되어가지만, 아이디어의 범위는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벽에 균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한계와 경계는 무너질 것이다.

공주풀꽃문학제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축제가 시작되기에는 표면적인 조건이 좋지 않았다. 전국의 축제가 몰려있는 가을에 공주라는 소도시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축제의 주제 역시 마이너다. 문학 그것도 시.

최근 출판 소비 지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에서 스스로 비주류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는 두 개의 키가 있다. 시인 나태주와 그의 시이다.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의 탄생 이후 시인들의 시인에서 사람들의 시인으로 전환되었다. 오랫동안 추구해온 시에 대한 그의 열정이 사람들의 아픔, 사랑 그리고 연민의 심지가 되었다. 급격하게 변해가는 시대에서 소외되고 있는 대부분의 개인들을 달래주고 있다. 바로 비주류 문학 시로.

시는 한 사람에게 백 번 넘게 읽히는 글이다. 그리고 그 어떤 제약도 없다. 인류보편적인 감정을 서로 다른 문자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나태주 시인은 이곳에서 그의 시로 그것을 증명하였다.

문학제에서 나태주 시인은 두 명의 손님을 초청하였다. 손님들은 서로 다른 국적과 다른 외형과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오직 나태주 시인의 시를 통해 사랑을 얻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무형의 것이 유형의 물리적 공간으로 이끌려왔다.

가깝게는 수백 킬로 옆 중국으로, 또 하나는 수 천 킬로 떨어진 아프리카까지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이날 우리는 그 답장을 볼 수 있었다.

두 여성은 화려한 색으로 손님들을 마주했다. 중국오성홍기처럼 붉은 치파오를 입은 취환회장은 한국이 좋아 한국 사람이 된 문화외교관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에 매료되어 스스로 나태주 사절단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나태주의 시가 가진 매력을 널리 알리고자 그의 시를 꾸준히 중국어로 번안하고 있었다. 나태주의 시로부터 얻은 감동에 대한 그녀만의 답장인 것이다. 다른 언어로 쓰인 그의 시가 점차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핑크색 히잡을 두른 샤히라 양의 대답은 사람들의 근원적인 감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과 질문은 다음과 같다.

“풀꽃을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요?” 나태주 시인이 물었다.

“처음 풀꽃을 읽었을 때 그게 무슨 뜻인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저는 너무 슬펐어요. 그러한 감정이 드는 이유도 몰랐어요. 하지만 몇 번 다시 읽었을 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제가 저런 말을 듣고 싶었나봐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슬플 때 이런 말을 듣고 싶을 지도 몰라요.” 그녀가 답했다.

“이제 풀꽃을 읽으면 시는 꽃이 되고 저는 나비가 된 것처럼 느껴져요.”

[사진]공주풀꽃문학제의 토크쇼. 왼쪽부터 샤히라 양, 취환 회장, 나태주 시인

많은 사람들이 푸른 가을하늘보다 더 푸른 모습으로 그 자리에 함께했다.

나태주의 시는 스스로 한계와 경계를 없애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이 볼까 무서워 마음 속 아주 높게 저마다의 담벼락을 세우고 있다.

그 안에는 대숲 아래서 흘리던 투명한 눈물이 있고,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로 가득 차 있다. 우리도 이제 그의 시처럼 허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너도 그렇듯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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