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002)

하도 여러 차례 얘기를 해서 더는 얘기하기가 민망할 정도가 된 시입니다.

이 시는 내가 초등학교 교장 시절 아이들과 풀꽃그림 그리기 공부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해준 말을 그대로 옮겨서 쓴 입말 중심의 시입니다.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고 구조도 단순하고 길이까지 짧아서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시입니다. 어쩌다 내가 이런 작품을 다 썼을까! 아예 이제는 나를 보고 ‘풀꽃시인’이라고 대놓고 불러줍니다.

남녀노소 온 국민이 좋아하는 작품이니 국민시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지요. 실제로 나를 보겠다고 강연 초청을 해주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 시 한 편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시의 본문 글자 수가 24자. 원래는 3연 5행의 시인데 교보문고에서 광화문 글판으로 가져다 쓸 때 세 줄로 펼쳐서 이제는 아예 세 줄짜리 시로 행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를 통해 많은 위로와 축복과 용기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강한 임팩트(감동)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얼마나 많은 분야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가져다 사용하는지 모릅니다.

영화, 드라마, 글판, 칼럼, 서예작품, 캘리그라피, 광고, 시비. 그 쓰임이 극대화된 형편입니다. 이 시를 기념하여 공주에는 ‘공주풀꽃문학관’과 ‘풀꽃문학상’이 생겼으며,  ‘풀꽃’이란 이름으로 동화집이 나오고, 시선집도 나왔습니다.

한 편의 시가 받는 영광으로는 더 이상의 것을 말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내가 그동안 써온 많은 시편들은 내가 세상을 사모하여 세상한테 보내는 호소요 고백이요, 러브레터요,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시원스런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온 답장이 바로 「풀꽃」 시입니다. 70 나이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시인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 「풀꽃」이 나의 대표작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동안은 「대숲 아래서」를 대표작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숲 아래서」는 데뷔작입니다. 오래 글을 써온 시인에게 데뷔작이 대표작이 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데뷔 이후의 시인의 모든 작품은 헛수고로 돌아가는 일이 되고 맙니다. 한평생의 도로(徒勞). 아, 이 얼마나 두려운 사건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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