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古지도를 살펴보면서 아무래도 불자인지라 지도에 나와 있는 사찰의 이름에 눈길이 갑니다.사곡면으로는 마곡사가 나와 있고, 우성면으로는 영천사라는 이름이 나오며, 계룡면으로는 동학사와 갑사, 신원사, 보문사 등이 나옵니다.지금의 시내를 중심으로는 서쪽으로 서혈사가 나오고, 남쪽으로는 율사栗사가 있으며, 대통사 당간지주 자리에는 ‘대통교’라는 이름이 포정사 앞쪽으로 있습니다.공산성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지금도 있는 영은사가 나오고, 망월사라는 절 이름이 하나 있는 것으로 보아 성안에 두개의 사찰이 있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동국여지승람에는 서거정(徐居正)의 취원루기(聚遠樓記)에‘차현(車峴) 이남에서 산천의 맑은 기운이 충만하고 쌓여서 큰 고을을 이룬 것에는 오직 공주(公州)가 제일
재주가 많기로 유명한 원숭이를 잡을 때 사람들은 나무상자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채우고, 입구는 원숭이 손 하나가 겨우 드나들 정도의 구멍을 내놓는다고 합니다.사람들이 그리고 자리를 떠나 그 상자 주위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맛있는 견과류 냄새를 맡은 원숭이들이 몰려와 이 상자 안에 무슨 마술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탐색을 하다가 한 마리의 원숭이가 구멍에 손을 넣고 견과류를 움켜쥐면 그는 구멍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때 사람들이 다가가서 원숭이들이 도망을 친 자리에 홀로 남은 원숭이를 포획한다고 합니다. 손에 움켜쥔 견과류만 내려놓으면 만사가 오케인데, 그 집착심 하나 내려놓지 못하는 것으로 원숭이의 다음은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사람도 마찬가지입
제10회 고마나루 전국 향토 연극제가 10여일의 장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평소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일로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다가 오늘은 오후에 마곡사를 다녀 나오면서 저녁 무렵 금강변 한옥마을 공방촌에 들렀다가 공방촌 앞에 대규모 연극 무대가 설치된 것을 보고 폐막식 연극이라도 보고가자 하는 마음으로 눌러 앉았습니다.오늘 마지막 연극은 극단 문화영토 '판'이 공연한 ‘마마, 공주마마!’라고 하는 제목인데 내용은 이러합니다.번개가 치고, 으스름한 안개가 흩뿌리는 가운데 마마 상감마마를 외치며 소복을 한 여인들이 이리저리 무대를 헤집고 다닙니다.그러다가 마침내 대 여섯 명의 여인네들이 나와서 서로 누군지 모르는 처지에서 자기를 소개하다 보니 그들은 태종 이방원의 딸이고,
의승장 기허당 영규대사 순의실적비옛날 조선조 선조때 임진란의 참상을 어찌 형언하리요. 당시 왜구가 대거 침입하여 삼남이 연함 됨에 어가는 의주로 파천되고, 국가는 거의 위태롭게 되었다.이때 불문에서 의병을 일으킨 분들은 전국 사찰에 격문을 돌려 승병을 규합하고 지휘한 청허와 그리고 관동의 유정과 관서의 의엄과 호남의 뢰묵이었으며, 또 한분이 있었으니 이분이 바로 호서에서 거의한 기허영규대사이었다.대사의 성은 밀양박씨요, 이름은 영규이며, 호는 기허이니 공주 판치에서 출생하였는데 선세의 계보와 사적은 모두 미상이다.대사는 일찍이 계룡산에 입산 출가하였고, 후에 청허의 문하에서 불교의 진제를 전수하였으며, 또 서봉락가 등 제사에 머무른 바도 있었으나 갑사에서 가장 오래 주석하였다.대사는 청허의
계사년 팔월 보름 추석날 저녁 하늘을 보니 둥근 달님이 사람마다 가는 길을 밝게 비추는데 거기에는 좋고, 낮고, 예쁘고, 밉고가 없이 평등무차별하게 비추어주시는군요.이 같은 소식을 일러서 '만공 월면' 이라 하고 '심월 고원' 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우리 보는 눈으로는 달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듯 보이지만 저 달은 본디 줄고 늘지 않으니 다만 보는 이의 마음이 그렇게 본 것이고, 우리 보는 눈으로는 밝았다 어둡다 보여도 달은 본시 스스로 빛을 낸 것이 아니고 해로부터 받은 빛을 아낌없이 골고루 온 세간 누리에 나누고 있는‘월광보살’이시지요.그처럼 우리들 마음의 둥근 달도 부처님의 불광을 받아서 아낌없고 차별 없이 누리며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반산 보적스님의 게송이 이러합니다.
어느 큰절에서 부처님 전 사시마지 공양을 올리고 큰방에서 대중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합니다.큰방에는 한쪽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부처님 맞은편으로 문이 있는 곳은 ‘상판’이라 하고 ‘어간’이라 하여 절에 조실이나 어른스님들이 주로 앉습니다.부처님 바로 앞으로는 ‘하판’이라 하여 출가한지 얼마 안 되는 스님들이 앉아 공양을 합니다.발우를 펴고 밥과 찬을 나누는 ‘진지進旨’가 다 마쳐지고, 죽비로 공양 시작을 알리니 대중스님들은 조용히 공양을 하기 시작합니다.모두들 어시발우를 들고 밥을 한술 입에 넣고는 어시발우를 내려놓고 국이나 반찬 그릇을 들어올려 국을 먹거나 반찬을 먹는데 들고 놓음에 아무런 소리가 없이 공양이 진행됩니다.이때 어간에 앉은 노스님의 눈에 무언가 보이는데 맞은편에 모셔진 부처
새로 마곡사 주지 임명장을 받은 원경스님의 진산식이 오늘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별도의 행사 없이 ‘자비나눔행사’라는 이름으로 마곡사 교구의 스님들과 관내 11개 시군의 시장과 군수를 초청해 공양을 나누고, 소외된 주민을 위한 백미 10kg 2200포를 대광보전 앞에서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또 충청권의 불교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전서구노인복지관과 금강노인복지센터, 공주시 우성면에 위치한 죽림노인요양원에도 쌀 200포를 전달하기로 하였답니다.약간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임에도 원근각지에서 온 본?말사 스님들과 불자들이 이름 그대로 태화산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새로 주지의 소임을 맡게 된 원경스님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의 인사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은 이상 원만하게 종
직장에 출근하면서 잠깐 들러 각단에 삼배를 올리고 가는 보살이 “스님, 부처님 전에 떡 한말 올려주세요”라고 합니다.어제가 초하루여서 올렸으면 했는데. 이제라도 스님이 날을 택하여 올려 달라기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느냐?” 물으니 “스물 네살 된 제 딸이 이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그렇습니까? 참으로 축하하고, 축하할 일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지성으로 절에 와서 절을 하더니 그 공이 이제 나타났나 봅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아닙니다, 스님 본인이 열심히 한 까닭일겁니다.”“그래요, 본인도 물론 최선을 다했으니 원하는 일을 성취한 것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마가 일심으로 보내는 성원과 기도의 힘이 없었다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저는 그러면서 옛사람의 이야
‘충남 향토사 대회를 공주대에서 하는데 공주회원들이 적게 나와서 자리가 비면 사무국장이 얼굴을 못 들게 되고, 그리되면 금강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애교 있는 협박문을 보내온 덕분에 오후에는 ‘사람 하나 구제하자’는 심정(?)으로 공주대학교에 다녀왔는데 내용이 아주 유익합니다.충남 각시군마다 향토연구회가 하나씩 있고, 일 년에 한번은 다 같이 모여서 그동안 활동상황을 같이 보고하고 나누는 자리라 그 열기가 뜨겁습니다.오늘은 주로 충남 지역에 처음 들어온 외국인들의 활동과 삶을 조명하다보니 대부분 외국인 선교사나 목사 등에 대한 주제가 지역별로 이어집니다.아무래도 충남 공주는 충청남도 행정의 중심도시였던 만큼 선교사와 목사들의 활발한 전도가 눈에 띕니다.1880년도 이후부터 프랑스 미국 독일등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 出家詩) 天下叢林飯似山 천하총림반사산鉢盂到處任君餐 발우도처임군찬黃金白璧非爲貴 황금백벽비위귀惟有袈裟被最難 유유가사피최난 곳곳이 총림이요 도처에 밥이거늘발우 들고 가는곳에 밥 세그릇 걱정하리황금과 백옥만이 귀한줄 알지마소.가사장삼 얻어입기 무엇보다 어렵다네朕乃大地山河主 짐내대지산하주憂國憂民事轉煩 우국우민사전번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不及僧家半日閒 불급승가반일한 내 자신 이 국토의 주인노릇 하느라고나라와백성 걱정마음만 더욱시끄럽네.백년을 산다해도 사는날 삼만 육천풍진밖 이 산속의 반나절에 비교하리悔恨當初一念差 회한당초일념차黃袍換却紫袈裟 황포환각자가사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락제왕가 당초에 부
바닷가에서 배를 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아빠 바다의 끝은 어디예요?” “응, 바다의 끝은 저 멀리 수평선보다 멀리 있단다.”“그렇군요, 아버지 바다의 끝에 가려면 정말로 한없는 시간이 필요하겠군요.”아들에게 그렇게 대답해놓고 배가 떠나간 곳을 향해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에 자기들이 떠났던 선착장의 해안가가 보입니다.아버지는 이내 다시 말을 바꾸어 말합니다. “아들아 내가 수평선 저 너머라고 일러준 것은 올바른 답이 아닐 수 있겠구나. 조금 전 우리가 떠나온 자리가 바다의 끝 이란다.”하고 다시 일러주고 나서야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려는 말의 뜻을 이해합니다.우리가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도달하려 하는 곳은 기실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처서를 지나면서 비가 오시는 바람에 더위가 한풀 꺾인 듯한 모습입니다.‘처서가 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이 있으니 분명 무더위는 서서히 밀려가는 모양인데 더위를 피해서 후유하고 한숨 돌리다보면 ‘추위’라는 녀석이 동장군의 기세를 하고 엄습해옵니다.더위도 덜하고, 추위도 없는 지역에 살면 그것도 행복이라 하겠지만, 추위와 더위를 겪으며 곡식이 익어가고 맛이 들 듯이 사람에게도 더위와 추위 못지않게 살면서 겪는 역경과 고난은 그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낮으로는 어제부터 보일러 교체작업과 함께 누수가 되는 세면장과 일부 부품을 고치는 작업을 노련한 기술자가 와서 다 마치고 가면서 “내일 와서 문제가 없는지 시험해보겠습니다” 합니다.치아가 고장이 나면 치과의사를 찾아가고, 뱃속에
원효대사가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옷을 짓는 데는 작은 바늘이면 족한 것이니 길다란 창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요, 비를 피하려 하는 데는 우산 하나면 되는 것이니 하늘을 가릴 큰 가리개는 필요치 않다.그러므로 작고 하찮다고 업신여기지 말 것이니 타고 난 바 생김새에 따라서 용도만 맞출수 있으면 모두가 다 값진 보배가 아닐 수 없다."이는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바로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오늘날 우리는 마음과 두 손에 크나큰 보배를 들고 서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그 크나큰 보배란 무엇인가하면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도리를 이르는 말이니 불가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그것이요, 유가에서는 삼강과 오륜의 가르침이 그것이며, 서양종교에서
칠월보름 우란분절에 여러 불자들이 도량에 들고 나셨어도 들고 난 자리가 없습니다.많이 오시면 많이 오신대로, 조금 덜 오시면 덜 오시는 대로 공양을 준비하시는 보살님들의 손길이 바쁘지만, 내게는 날마다 좋은 날 하루뿐입니다.와도 온 바 없이 오시고, 가셔도 가신바 없이 가실 줄 아시니 오늘 만나뵌 모든 불자님들이 부처님이십니다.마음으로는 “불자님들께서 구하고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시라”고 간절히 축원하지만, 세상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뜻대로 되는 것이 오히려 안 되는 경우요, 안되는 경우가 도리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으니 그저 님께 맡겨두고 우리는 열심히 정진하고, 기도하며 살아갈 따름입니다.새옹의 말 이야기에서 보듯 변방의 늙으신 노인 한분의 마음 씀씀이가 순한 경계를 만나도 크게 좋아
광복절입니다. 1910년 한일 강제 합병 이후 우리민족이 당하였다고 알려진 고통과 수탈 및 그 모진 일제의 무단정치 압제와 폭력 속에서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국민을 계몽하고 다니며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선열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불행은 올 때 연이어 온다’는 말이 있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이고 다시 조국분단의 비극이 생겨 동족상잔의 아픔이 3천리 강토를 휩쓸고 간 후에 그 얼마나 큰 혼란과 격동기의 시기가 지나갔는지는 감히 미루어 짐작할 뿐 헤아리기 어려운 일입니다.오늘은 비록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나,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불교인을 대표해 만해 한용운스님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으니 다들 아시는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만해스님의 행적을 조금 더듬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진하는 미국 전시에 가게 됐다고 합니다.한동안 국보의 해외 반출에 대하여 부정적인 측면에서 반출을 불허하기로 한 문화재청이었는데, 문화관광부장관까지 나서서 반출을 하도록 요구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의 끊임없는 요청에 결국은 수락하였다 합니다.국보가 해외 전시장에 반출되는 경우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2년여 이상 나가있게 되는데 한국의 미륵반가사유상은 그동안 여덟 번에 걸쳐서 3,000일을 외국에 나가 있다 돌아왔으므로 훼손이나, 손궤의 위험으로부터 나라의 국보를 지킨다는 의미로 문화재청이 “더 이상의 해외 반출은 안 된다” 하면서 문화재보호법에는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또는 중요민속 문화재는 국외로 수출하거나 반출할 수 없다”는 조항을 내세
공자(孔子)가 말씀하시되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면서 좁고 더러운(누추한) 집에 살게 되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속에 능히 머무르면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회여!”*子曰(자왈) 賢哉(현재)라 回也(회야)여一簞食(일단사)와 一瓢飮(일표음)으로在陋巷(재누항)을 人不堪其憂(인불감기우)어늘回也(회야)는 不改其樂(불개기락)하니賢哉(현재)라 回也(회야)여!*- 출전 논어, 옹야(雍也) -공자님에게는 제자가 3,000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에 열 분의 제자가 훌륭하였다 전하는데 그중에 제일은 ‘안회’라는 아주 젊은 제자였답니다.안회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한광주리의 밥에 물 한 그릇으로 누추하고 비루한 곳에 살면서도
절에 전해오는 말 가운데 ‘일일부작 일일불식 (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말 그대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뜻으로 저 유명한 백장청규를 만드신 백장회해스님의 말씀입니다.대체로 백장스님 이전까지의 불교의 생활상은 탁발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이 절집에 가풍이었다면, 백장스님 대에 이르러서 ‘스스로 일하고, 일한만큼 먹으라’하는 의미로 저와 같은 말이 나온 것입니다.백장스님은 수많은 대중들이 우러르는 어른스님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후학들을 위해 들려주는 몇 마디 말씀이 마쳐지면 호미를 들고 나가 밭에 앉아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낮에 업을 삼습니다.그렇게 신도 단월들의 보시에 의해 살지 않고 스스로 농사짓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을 해 나가니 일부 대중들 사이에서는 조금
불경 가운데 ‘백유경’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백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인간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고자 하는 경전입니다.그 내용 가운데 특히 욕심을 경계하는 글로 떡 하나를 두고 다투다가 큰 봉변을 당하는 두 사람의 부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평소에는 금슬이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은 이상하게도 먹을 것을 앞에 놓고는 식탐이 강하여 생각지도 않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습니다.원래 절에서는 공양은 ‘평등공양’이라는 말이 있지만, 두 사람은 그것과는 관계없이 무언가 먹을 것이 생겨서 우연찮게 상대가 하나라도 더 먹었다가는 아주 야단법석이 나서 한동안 냉전관계가 지속됩니다.어느 날 이웃집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다고 인사차 가져온 떡 한 접시가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마침
집에 데리고 사는 여자종들이 서로 다투고는 하나가 황희 정승에게 쪼르르 달려가 “쟤가 틀리고, 내가 맞다”며 정승이 한 말씀 해 달라 하였답니다.그러자 황희는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하고는 맞장구를 쳐주는 것으로 종은 기분 좋게 돌아갑니다.잠시 후에 상대 여종이 와서 역시나 자기주장이 여차 저차 하여 옳음을 주장하니 황희는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 하고 맞장구를 쳐서 기분 좋게 돌아가게 합니다.그러자 옆에 있던 황희 정승의 부인이 “대감은 어찌 대답이 그러하십니까? 둘이서 다투었다면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어야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길 것 아닙니까?”하고 은근한 말로 대감을 책망하니 “그래요 듣고 보니 부인의 말이 맞습니다”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