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 팔월 보름 추석날 저녁 하늘을 보니 둥근 달님이 사람마다 가는 길을 밝게 비추는데 거기에는 좋고, 낮고, 예쁘고, 밉고가 없이 평등무차별하게 비추어주시는군요.이 같은 소식을 일러서 '만공 월면' 이라 하고 '심월 고원' 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우리 보는 눈으로는 달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듯 보이지만 저 달은 본디 줄고 늘지 않으니 다만 보는 이의 마음이 그렇게 본 것이고, 우리 보는 눈으로는 밝았다 어둡다 보여도 달은 본시 스스로 빛을 낸 것이 아니고 해로부터 받은 빛을 아낌없이 골고루 온 세간 누리에 나누고 있는‘월광보살’이시지요.그처럼 우리들 마음의 둥근 달도 부처님의 불광을 받아서 아낌없고 차별 없이 누리며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반산 보적스님의 게송이 이러합니다.
어느 큰절에서 부처님 전 사시마지 공양을 올리고 큰방에서 대중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합니다.큰방에는 한쪽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부처님 맞은편으로 문이 있는 곳은 ‘상판’이라 하고 ‘어간’이라 하여 절에 조실이나 어른스님들이 주로 앉습니다.부처님 바로 앞으로는 ‘하판’이라 하여 출가한지 얼마 안 되는 스님들이 앉아 공양을 합니다.발우를 펴고 밥과 찬을 나누는 ‘진지進旨’가 다 마쳐지고, 죽비로 공양 시작을 알리니 대중스님들은 조용히 공양을 하기 시작합니다.모두들 어시발우를 들고 밥을 한술 입에 넣고는 어시발우를 내려놓고 국이나 반찬 그릇을 들어올려 국을 먹거나 반찬을 먹는데 들고 놓음에 아무런 소리가 없이 공양이 진행됩니다.이때 어간에 앉은 노스님의 눈에 무언가 보이는데 맞은편에 모셔진 부처
영어 ‘If’는 우리말로‘만약’이라는 뜻의 단어다. 한문으로는‘萬若’이라고 쓴다. 그 뜻은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에’ 또는 ‘있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사전에 적혀있다.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철학자 스피노자는‘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사람이 살면서 한두 번쯤은 써먹어 봤을 법한 절대긍정의 의지를 담은 명언이다. 이는 지구의 종말이 눈앞에 닥치더라도 희망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만약’이라는 가정은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상당한 의미의 차이를 가져온다. 과거에 두었을 때는 후회를 동반한 매우 회의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그 당시 어떻게 했더라면’지금의 처지보다 상당히 좋게 바뀌었
새로 마곡사 주지 임명장을 받은 원경스님의 진산식이 오늘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별도의 행사 없이 ‘자비나눔행사’라는 이름으로 마곡사 교구의 스님들과 관내 11개 시군의 시장과 군수를 초청해 공양을 나누고, 소외된 주민을 위한 백미 10kg 2200포를 대광보전 앞에서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또 충청권의 불교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전서구노인복지관과 금강노인복지센터, 공주시 우성면에 위치한 죽림노인요양원에도 쌀 200포를 전달하기로 하였답니다.약간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임에도 원근각지에서 온 본?말사 스님들과 불자들이 이름 그대로 태화산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새로 주지의 소임을 맡게 된 원경스님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의 인사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은 이상 원만하게 종
직장에 출근하면서 잠깐 들러 각단에 삼배를 올리고 가는 보살이 “스님, 부처님 전에 떡 한말 올려주세요”라고 합니다.어제가 초하루여서 올렸으면 했는데. 이제라도 스님이 날을 택하여 올려 달라기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느냐?” 물으니 “스물 네살 된 제 딸이 이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그렇습니까? 참으로 축하하고, 축하할 일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지성으로 절에 와서 절을 하더니 그 공이 이제 나타났나 봅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아닙니다, 스님 본인이 열심히 한 까닭일겁니다.”“그래요, 본인도 물론 최선을 다했으니 원하는 일을 성취한 것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마가 일심으로 보내는 성원과 기도의 힘이 없었다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저는 그러면서 옛사람의 이야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 出家詩) 天下叢林飯似山 천하총림반사산鉢盂到處任君餐 발우도처임군찬黃金白璧非爲貴 황금백벽비위귀惟有袈裟被最難 유유가사피최난 곳곳이 총림이요 도처에 밥이거늘발우 들고 가는곳에 밥 세그릇 걱정하리황금과 백옥만이 귀한줄 알지마소.가사장삼 얻어입기 무엇보다 어렵다네朕乃大地山河主 짐내대지산하주憂國憂民事轉煩 우국우민사전번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不及僧家半日閒 불급승가반일한 내 자신 이 국토의 주인노릇 하느라고나라와백성 걱정마음만 더욱시끄럽네.백년을 산다해도 사는날 삼만 육천풍진밖 이 산속의 반나절에 비교하리悔恨當初一念差 회한당초일념차黃袍換却紫袈裟 황포환각자가사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락제왕가 당초에 부
어느 스님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꽃에 취해 절로 돌아가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산적들이 스님을 상대로 "가지고 있는 보물을 내놓으라" 소리를 칩니다.이에 스님이 "내게 세상에 보기 드문 보물이 있는데, 그것을 줄테니 가져가겠느냐?" 하고 말하자, 산적떼들의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오늘 크게 한껀 하겠구나" 싶었던 산적들이 "어서 그 보물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치니 "스님은 내게 있는 보물이란 다름아닌 '불법'이다. 너희들이 가져갈수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가거라"하고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말합니다.도적들은 "정말로 불법이라는 보물이 있다면 얼른 빼앗아갈 생각만 하였지 스님이 말하는 불법이라는것이 무엇인지는 생각도 않습니다.스님은 "그래 불법이 어디에 있느냐면 말이지" 하고
바닷가에서 배를 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아빠 바다의 끝은 어디예요?” “응, 바다의 끝은 저 멀리 수평선보다 멀리 있단다.”“그렇군요, 아버지 바다의 끝에 가려면 정말로 한없는 시간이 필요하겠군요.”아들에게 그렇게 대답해놓고 배가 떠나간 곳을 향해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에 자기들이 떠났던 선착장의 해안가가 보입니다.아버지는 이내 다시 말을 바꾸어 말합니다. “아들아 내가 수평선 저 너머라고 일러준 것은 올바른 답이 아닐 수 있겠구나. 조금 전 우리가 떠나온 자리가 바다의 끝 이란다.”하고 다시 일러주고 나서야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려는 말의 뜻을 이해합니다.우리가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도달하려 하는 곳은 기실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처서를 지나면서 비가 오시는 바람에 더위가 한풀 꺾인 듯한 모습입니다.‘처서가 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이 있으니 분명 무더위는 서서히 밀려가는 모양인데 더위를 피해서 후유하고 한숨 돌리다보면 ‘추위’라는 녀석이 동장군의 기세를 하고 엄습해옵니다.더위도 덜하고, 추위도 없는 지역에 살면 그것도 행복이라 하겠지만, 추위와 더위를 겪으며 곡식이 익어가고 맛이 들 듯이 사람에게도 더위와 추위 못지않게 살면서 겪는 역경과 고난은 그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낮으로는 어제부터 보일러 교체작업과 함께 누수가 되는 세면장과 일부 부품을 고치는 작업을 노련한 기술자가 와서 다 마치고 가면서 “내일 와서 문제가 없는지 시험해보겠습니다” 합니다.치아가 고장이 나면 치과의사를 찾아가고, 뱃속에
광복절입니다. 1910년 한일 강제 합병 이후 우리민족이 당하였다고 알려진 고통과 수탈 및 그 모진 일제의 무단정치 압제와 폭력 속에서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국민을 계몽하고 다니며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선열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불행은 올 때 연이어 온다’는 말이 있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이고 다시 조국분단의 비극이 생겨 동족상잔의 아픔이 3천리 강토를 휩쓸고 간 후에 그 얼마나 큰 혼란과 격동기의 시기가 지나갔는지는 감히 미루어 짐작할 뿐 헤아리기 어려운 일입니다.오늘은 비록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나,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불교인을 대표해 만해 한용운스님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으니 다들 아시는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만해스님의 행적을 조금 더듬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진하는 미국 전시에 가게 됐다고 합니다.한동안 국보의 해외 반출에 대하여 부정적인 측면에서 반출을 불허하기로 한 문화재청이었는데, 문화관광부장관까지 나서서 반출을 하도록 요구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의 끊임없는 요청에 결국은 수락하였다 합니다.국보가 해외 전시장에 반출되는 경우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2년여 이상 나가있게 되는데 한국의 미륵반가사유상은 그동안 여덟 번에 걸쳐서 3,000일을 외국에 나가 있다 돌아왔으므로 훼손이나, 손궤의 위험으로부터 나라의 국보를 지킨다는 의미로 문화재청이 “더 이상의 해외 반출은 안 된다” 하면서 문화재보호법에는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또는 중요민속 문화재는 국외로 수출하거나 반출할 수 없다”는 조항을 내세
공자(孔子)가 말씀하시되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면서 좁고 더러운(누추한) 집에 살게 되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속에 능히 머무르면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회여!”*子曰(자왈) 賢哉(현재)라 回也(회야)여一簞食(일단사)와 一瓢飮(일표음)으로在陋巷(재누항)을 人不堪其憂(인불감기우)어늘回也(회야)는 不改其樂(불개기락)하니賢哉(현재)라 回也(회야)여!*- 출전 논어, 옹야(雍也) -공자님에게는 제자가 3,000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에 열 분의 제자가 훌륭하였다 전하는데 그중에 제일은 ‘안회’라는 아주 젊은 제자였답니다.안회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한광주리의 밥에 물 한 그릇으로 누추하고 비루한 곳에 살면서도
절에 전해오는 말 가운데 ‘일일부작 일일불식 (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말 그대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뜻으로 저 유명한 백장청규를 만드신 백장회해스님의 말씀입니다.대체로 백장스님 이전까지의 불교의 생활상은 탁발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이 절집에 가풍이었다면, 백장스님 대에 이르러서 ‘스스로 일하고, 일한만큼 먹으라’하는 의미로 저와 같은 말이 나온 것입니다.백장스님은 수많은 대중들이 우러르는 어른스님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후학들을 위해 들려주는 몇 마디 말씀이 마쳐지면 호미를 들고 나가 밭에 앉아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낮에 업을 삼습니다.그렇게 신도 단월들의 보시에 의해 살지 않고 스스로 농사짓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을 해 나가니 일부 대중들 사이에서는 조금
불경 가운데 ‘백유경’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백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인간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고자 하는 경전입니다.그 내용 가운데 특히 욕심을 경계하는 글로 떡 하나를 두고 다투다가 큰 봉변을 당하는 두 사람의 부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평소에는 금슬이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은 이상하게도 먹을 것을 앞에 놓고는 식탐이 강하여 생각지도 않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습니다.원래 절에서는 공양은 ‘평등공양’이라는 말이 있지만, 두 사람은 그것과는 관계없이 무언가 먹을 것이 생겨서 우연찮게 상대가 하나라도 더 먹었다가는 아주 야단법석이 나서 한동안 냉전관계가 지속됩니다.어느 날 이웃집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다고 인사차 가져온 떡 한 접시가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마침
집에 데리고 사는 여자종들이 서로 다투고는 하나가 황희 정승에게 쪼르르 달려가 “쟤가 틀리고, 내가 맞다”며 정승이 한 말씀 해 달라 하였답니다.그러자 황희는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하고는 맞장구를 쳐주는 것으로 종은 기분 좋게 돌아갑니다.잠시 후에 상대 여종이 와서 역시나 자기주장이 여차 저차 하여 옳음을 주장하니 황희는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 하고 맞장구를 쳐서 기분 좋게 돌아가게 합니다.그러자 옆에 있던 황희 정승의 부인이 “대감은 어찌 대답이 그러하십니까? 둘이서 다투었다면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어야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길 것 아닙니까?”하고 은근한 말로 대감을 책망하니 “그래요 듣고 보니 부인의 말이 맞습니다”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
?공주시 신풍면에서 유구읍 방면으로 2~3킬로미터를 가다 보면 우측으로 ‘동원리 석탑’이라는 안내판이 나옵니다.약 1킬로미터를 동원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회관이 있는 근처에 작은 냇물을 건너 우측으로 보면 민가들이 있고, 비닐하우스들이 있으며, 그 사이로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삼층 석탑이 나옵니다. 안내판에는 ‘주위에 사찰이 있었다’는 말은 없고, ‘풍수상 질병을 막기 위해 현감이 탑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주위를 발굴하다 보면 분명 사지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미암사는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와 견동리 경계에 위치한 산 팔부능선에 있었으며, 바위에서 절에 머무는 사람의 숫자에 맞춰 쌀이 나와서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욕심을 일으켜 쌀 바위 구멍을 파내는 바람에 그나마 나오던 쌀이 끊어졌다 합니다.청림사지 아래 사시는 이완희노인은 자신의 외할머니가 딸만 여럿 두었을 때 득남기도를 미암사에 올려서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 길에다가 제물을 차리고 예를 올리던 차에 촛불이 재가 있는 곳으로 넘어지게 되고, 그날 밤 꿈을 꾸니 흰 재를 뒤집어쓴 동자하나가 보이고 그길로 태기가 있어서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이완희 노인의 외삼촌이 되는 그분은 후에 자손을 여럿 두어서 대를 이어갔다고 하는군요.견동리 아래 푯말에서 대학리
? 청림사는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에 있습니다.“청림사는 과거에는 규모가 대단히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마을 분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근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법당과 요사가 전부입니다워낙 시골에 위치하다보니 신자들은 별로 많지 않고 잠시 정양을 위해 머무는 스님들이 교대로 계시다가 떠나곤 하는 절입니다.삼층탑과 탑 앞에 부도가 한기 보이는데 그 부도는 마을 분들이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옮겨 모신 것이고, 앞에 초석은 부도의 주인공인 스님의 행장을 적었던 비석의 기단부로 보입니다만 애석하게도 비석이 없어졌습니다.과거에 주위에 부도 군이 많이 있었지만 일제 때 보를 막는다는 미명 아래 부도를 부숴서 사용하는 바람에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
요즘은 얼굴을 고치는것은 물론이고, 몸매까지도 바꿔보려고 거액을 투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하는 말을 뉴스에서 종종 듣습니다.올여름 방학에도 이미 접수가 완료되었고, 한국의 성형기술이 유명해지니 세계 각국으로부터 미인이 되고자 성형관광을 오는 이들도 많아진다 합니다.사실 ‘신언서판’이라는 말에서 보듯 일단은 몸이 바르고 나서 말과 글과 판단력이 있으면 어디서나 인정받는 경향이 많다보니 얼굴을 고쳐서라도 인상을 좋게 하려는 시도가 무리는 아니다 싶습니다.그렇게 바꾸어 보는 것이 나쁘다 할 수는 없겠지만, 한참 만에 보는 자기 가족이나 친지조차 몰라 볼만큼 확 달라져 버리면 이로 인한 혼란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그렇지만 얼굴을 바꾸고 몸매를 보정하여 지내다 보면 그 마음가짐도 또한 달라져서 하는
옛날 행세깨나 하는 집에는 첩실을 두는 것이 큰 허물이 아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허 정승’이라는 이도 벼슬을 하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첩실을 하나 얻었는데, 첩실이 하는 양이 너무나 곱고, 예뻐서 등청을 하였다가 돌아오면 그곳부터 먼저 찾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어느 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첩실에게 등청을 하면서 “금방 다녀 오마” 하고 나갔다 돌아오니 언제나 반갑게 맞이하던 첩이 보이지 않습니다.이게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싶어서 급히 아랫사람들을 불러 물으니 아씨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이도 없고, 언제 없어졌는지조차 아무도 모른다는 대답입니다.“내가 나간 뒤에 누가 집에 다녀간 적이 없느냐?”물으니 하인이 “오늘 나뭇간에 숯을 들였습니다.”라고 하는 대답을 듣습니다.그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