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나태주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2008)

역시 병원에서의 경험이 바탕에 깔린 시입니다. 아내는 젊어서 수술을 여러 차례 했지만 그래도 뚝심이 있고 인내심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의 병원생활이 무작정 늘어지고 곁에서 병간호하는 일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 끝내 간호하던 사람이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장장 6개월입니다. 그 6개월을 오로지 병실의 침대도 아니고 환자의 침대 아래에 놓인 쪽침상에서 자고 먹고 견뎌야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요. 환자는 관리되는 대상이라지만 이 사람은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무방비 상태지요. 끝내 아내가 병이 나고 만 것입니다. 불면증, 감기, 몸살, 두통, 변비, 소화불량. 아주 종합병원과 같은 몸이 되었지요.

그래, 하는 수 없이 딸아이가 사는 동네병원에라도 가서 링거주사라도 맞고 오자고 그래서 아내가 하루나 이틀 병상 옆을 비우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헌데 이게 원일입니까. 아내가 병실을 비우기만 하면 나의 염증수치(CRP)가 대번에 올라가는 것이에요. 17 정도로 내려갔는데 혈액검사를 해보면 22 정도로 껑쭝 뛰어올라가는 거예요. 두렵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했어요. 그 때 나는 알게 되었지요. 육체의 질병이란 것은 단지 육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분히 정신세계의 문제라고.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에게 말하듯이 떼를 쓰며 쓴 글이 위의 글이에요.「너무 그러지 마시어요」가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라면 「부탁」은 인간에게 드리는 호소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눈빛 안에서만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예전에 아이들을 키울 때 보면 어린 아기들은 빈 방에서 혼자 놀더라도 어디선가 엄마의 기척이나 음성이 들리기만 하면 안심하는 걸 보았지요. 그렇습니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아기가 엄마를 찾고 의지하는 심정으로 쓰여진 시입니다.

나에게 그 모진 질병의 날과 고초의 순간이 없었으면 어찌 이런 글이 나의 글이 되었겠어요. 그러고 보면 고난이 유익이고 축복이라는 말을 어리짐작으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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