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나태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2006)

 

내가 사랑시를 많이 쓰는 시인이니까 대뜸 이 시를 보고서도 내가 어떤 여성을 사모하여 이런 시를 썼을 것이라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 시는 어떤 남성을 대상으로 쓰여진 시입니다. 그것도 하나도 망설임 없이 쓱 써서 그에게 이메일로 보내준 글을 나중에 정리한 것입니다.

회갑을 넘기고 62세 교직정년의 나이쯤 해서 좀은 생활의 무리가 되더라도 시 전집을 내고 싶었습니다. 이곳저곳 출판사를 알아보던 중 고요아침이란 출판사와 얘기가 되어 전집 출간을 하기로 하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교정을 열 차례 이상 보았습니다. 그래도 오자가 나오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고요아침출판사에는 김창일이란 이름의 직원이 있었습니다. 편집장 직책으로 나의 전집을 전적으로 편집하고 제작하고 있었지요. 여러 차례 그와 이메일과 전화를 주고받고 일을 하다가 마음으로 가까워졌고 그를 통해 여러 가지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시 전집을 만들면서 나의 시를 읽었는데 여러 번 컴퓨터에 코를 박고 흐느껴 운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병상련의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가슴 속에서도 울컥,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곧장 컴퓨터를 열어 그의 주소 아래 문장을 적어나갔습니다. 그 문장이 바로 이 시입니다.

언제든 선물은 공짜로 받는 물건이고 귀한 물건, 소중한 그 무엇입니다. 호되게 병을 앓거나 고난을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루하루 우리가 받는 지상의 날들이 선물입니다. 생명이 그 무엇과 도 비길 수 없는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내 앞에 있는 당신, 가끔 말을 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당신이 나에게 그럴 수 없이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진작 이것을 깨달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과 콧노래 한 구절이 나에게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 된다고 그랬습니다.

결코 그것은 슈퍼마켓이나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벽장이나 다락, 책상 속에 깊숙이 넣어둔 보물도 아니지요.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에게 이미 있는 것들입니다. 그걸 아낄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색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서로가 주고받아야 할 일입니다.

선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기쁨이 부족해서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불행감을 맛봅니다. 우리가 불행해지는 건 자업자득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될 때 우리들의 세상은 하루하루 아름다운 세상이 열리고 천국에서 사는 날들이 약속될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사람은 살아서 이미 천국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가끔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
세상과 시인을 마주 세워놓고 볼 때, 시는 그들 사이를 놓인 징검다리이고 서로에게 선물입니다. 세상 입장에서는 시가 시인으로부터 받는 선물이고 시인 입장에서는 또 시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좋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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