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동길 (소설가, 공주대 명예교수)

얼마 전 특별한 출판기념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유구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신 8순의 경암 선생 자서전 출판 기념회였다. 내가 그 분을 처음 뵌 것은 공주시에서 지원하는 어르신 자서전 쓰기 사업의 일환으로 글쓰기 기초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고 나갔을 때였다.

대학에서 정년퇴임 한 후 내 나름으로는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그 강의 요청을 수락했었는데, 실제 가서 보니 강의를 들으러 오신 열 분 남짓한 어르신들은 모두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연세 차이도 많이 나고, 교육을 받으신 정도도 다르고, 현재 사시는 모습도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했다.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어느 정도 수준이 일치해야 진행하기가 쉬운데, 이처럼 다양한 분들에게 어떻게 만족할 수 있도록 강의를 해야 할 것인지 난감하기도 했다.

우선 서로 소개를 하고 난 후 자유롭게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말씀해 달라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예측한 대로 글을 써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분들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으셨다. 그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쓰기와 말하기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손자나 젊은 사람들에게 지나온 과거 체험을 얘기하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라는 것과,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욕심을 갖지 말라는 말씀을 드렸다.

몇 시간의 기본적인 얘기 끝에 각자 본인의 체험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 근대사의 핵심적인 사건들과 결합된 절절한 체험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어떤 얘기는 눈물겹기도 하고, 또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 얘기들을 서툴지만 글로 옮기도록 했다. 어설프고 엉성한 글들은 추후 교정과 수정을 거치면 될 터였다.

경암 선생의 글은 숨김이나 과장 없이 솔직하고 담백했다. 그 어떤 꾸밈이나 기교도 없었지만 순수한 그 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경암 선생의 글은 그 후 도우미들의 일부 첨삭을 거쳐 시청의 지원으로 다른 분들의 글과 함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런데 그 후 경암 선생이 연락을 주셨다. 시청에서 낸 책은 분량의 제한으로 원래 생각하셨던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어 아쉽다며 따로 책을 내고 싶다 하셨다. 그래서 새로 원고를 작성할 테니 한 번 봐 달라는 말씀이셨다. 흔쾌하게 승낙을 했는데, 몇 달 뒤 원고를 들고 찾아오셨다.

본인의 일대기는 물론 직접 쓰신 시, 수필, 그리고 고향의 전통 농사와 자제 교육을 위해 잠시 거처하셨던 온양에서의 근교 농사 이야기 등이 담겨 있었다. 그 원고를 내용에 따라 다시 분류하고, 제목을 새로 붙이는 등 체제를 정리하여 드렸다.

그 원고가 두 권의 책으로 묶여 간행되었고, 출판기념회가 열리게 되어 거기 초대를 받아 축사를 하게 되었다. 여섯 분의 자제를 비롯한 가족들과 친인척분들, 동네 어르신들, 지인들, 시장을 비롯한 공직자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축하 기념회가 열렸다.

나도 그 자서전이 가진 의미를 성실 근면한 가르침의 교본이라는 점과, 이런 개인사의 기록이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요지로 축사 말씀을 드렸다.

내가 감히 그 분의 삶에 대해 어떻다고 평가하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다. 다만 요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화려하게 열리는 출판기념회와는 달리 경암 이문호 선생의 자서전 출판기념회는 배우고 얻는 게 많았던 자리라는 것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숙부께서 지어주셨다는 호처럼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경암 선생이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