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늘/ 나태주

아이한테 물었다

이담에 나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대답 대신 아이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2011)

실은 이 작품은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찬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편도나무」란 글을 패러디해서 써본 글입니다.

편도나무/ 니코스 카잔차키스

어느 날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하였네
간절히
온 마음과 기쁨
그리고 믿음으로

편도나무여
나에게 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그러자 편도나무는 활짝
꽃을 피웠네.

그러나 전혀 소재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마치 예쁜 새처럼 지절거리고 고운 꽃처럼 피어있던 처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나는 자주 내 마음속의 느낌을 얘기하고 그 아이의 반응을 보곤 했습니다.

‘이담에 나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차라리 이건 협박성 발언입니다. 그런 말에 어린 처녀아이가 무어라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아무런 응답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내 맘대로 그 다음의 말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대답 대신 아이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때로 이렇게 거짓말쟁이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래서 새로운 한 세상이 우리 앞에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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