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극치/ 나태주

 

황홀, 눈부심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함
좋아서 까무러칠 것 같음
어쨌든 좋아서 죽겠음

해 뜨는 것이 황홀이고
해 지는 것이 황홀이고
새 우는 것 꽃 피는 것 황홀이고
강물이 꼬리를 흔들며 바다에
이르는 것 황홀이다

그렇지, 무엇보다
바다 울렁임, 일파만파, 그곳의 노을,
빠져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황홀이다

아니다, 내 앞에
웃고 있는 네가 황홀, 황홀의 극치다

도대체 너는 어디서 온 거냐?
어떻게 온 거냐?
왜 온 거냐?
천 년 전 약속이나 이루려는 듯. (2010)

‘황홀’과 ‘극치’란 말은 서로 만나기 어려운 말입니다. 특히 극치란 말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취나 경지’나 ‘극단’, ‘끝’을 가리키는 말로서 일상어가 아닐 뿐더러 내용 또한 구석진 단어입니다. 한 때 ‘장락무극(長樂無極)’이란 말을 좋아했습니다. 이 말 또한 특별한 사자성어로 ‘긴 기쁨이 오래 끝까지 간다’는 뜻일 겁니다.

‘황홀’이란 또 무슨 뜻입니까?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함’을 가리킨다는 것이 사전적 설명인데 이 두 말을 조합했더니 그 두 말의 조합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나옵니다.

그 느낌을 따라 무작정 떠오르는 풍경과 언어들을 써본 것이 이 시의 앞부분입니다. 말하자면 언어 뜻풀이나 설명 같은 것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3연까지가 황홀과 그 극치, 그러니까 끝까지 닿은 황홀의 상태를 내 나름대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4연에 와서 과감하게 반전을 시도합니다. 반전이란 반대로 돌아섬입니다. 일종의 부정이요 유턴인데 매우 급하면서도 빠른 유턴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연이나 풍광을 통해 황홀과 극치를 말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잘 안 되니까 인간 쪽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정작 이 시의 핵심은 후반부에 있습니다. 급하게 치솟아 올라갔던 감흥이 빠르게 내려앉으면서 다스림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너’를 만난 것에 대한 감격을 ‘천 년 전 약속’으로 극대화시킵니다. 가슴에 먹먹한 느낌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사랑의 환희이기도 합니다. 시를 읽다 보면 시를 쓰던 때의 감격이 다시금 살아나는 듯해서 가슴이 뜁니다. 아,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시는 고요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 충분한 일렁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상승하고 고조되는 부분에서 따라서 출렁임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죽어있는 존재가 아니고 살아서 숨 쉬는 존재입니다. 생명체입니다. 비밀의 화원이고 하나의 왕국이거나 그 나라이거나 그런 아름다운 울타리를 지니고 있는 독립적인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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