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이인면에 ‘만수리’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 흙이나, 차돌맹이는 대부분 빛깔이 붉은데, 거기에는 이러한 사연이 전한다 합니다.

백제시대에 늙으신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 처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인지라 그 아비는 짚신을 삼아 팔아 근근이 두 부녀의 목숨을 연명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여 눈이 어두워지고 기력이 쇠하니 어린 딸이 나서서 동네 빨래며 농사를 돕고 한줌 곡식을 얻어다 아버지를 봉양합니다.

아비를 위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동네서는 효녀로 알려지고, 예쁨을 받는데 그만 늙은 아버지가 병이 들어 버립니다.

병든 아버지를 살려 보고자 갖은 방법을 다 하고 노력하던 중에 절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데 꿈에 스님이 나타나 갸륵한 효심에 약초를 일러주리라 하고 장소를 일러줍니다. 정말로 그 약초를 구하여 아버지가 드시고 병이 나으니 어린 딸은 너무나 고맙고 기쁩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린 딸은 어느 해인가 동지가 가까워졌을 때 넉넉한 집에 일을 해 주고 팥죽 한 그릇을 수고의 대가로 받게 되자 저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을 고이 싸서 급히 발걸음을 집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던 처자는 그만 고갯마루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야속하게도 팥죽은 다시 거둘 수 없게 땅속으로 흘러들고, 새알심조차 흙과 버무려져서 도저히 아버지께 가져다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어린 딸은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그 자리에 엎어져서 펑펑 울다가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여 아버지께 말하니 애비는 “팥죽을 먹은 것보다 더 좋구나. 너의 간절한 효심이 우리 부녀를 보우하사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 하고 어린 딸을 위로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만수리의 흙과 바위는 팥죽의 물 빛깔을 닮은 붉은 색이 되었다 하니 어린 딸의 효심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만수리 토지신과 대지를 물들였나 봅니다.

지금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만수리의 흙과 차돌맹이들이 붉은 것은 백제시대 효심어린 처자의 간절한 마음이 그와 같이 된 것이라고 한다 전하니 이 역시 우리 공주의 효자로 알려진 신기리 상덕과 국고개 이복의 효심에 못지않은 미담으로 널리 알려 마땅하다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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