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체(愚工體)’의 주인공 서예가 우공(愚工) 이일권

붓이 춤을 춘다. 주인의 마음을 따라서 때로는 날렵하게, 때로는 육중하게. 하얀 화선지를 무대삼아 검은 먹을 가슴에 품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춤을 주는 모습이 경이롭다. 하얀 무대 위 검은 무희의 향연. 그 향연의 주인공이 부럽다.

대만에 있는 고궁박물관을 갔을 때 왕희지의 글씨를 보고 감탄을 하면서 글씨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내가 써 놓고도 나중에 내가 알아보기조차 어려운 악필을 자랑하는(?) 나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는.

▲우공 이일권이 특급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선친께서 한학(漢學)을 하셨기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시나브로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선친께서는 늘 저에게 학자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당부하셨지요. 저는 운동을 좋아해 한 때 유도를 했었지만, 선친의 뜻을 받들어 학자의 길을 걷기로 정하고, 의경을 제대한 후 앞으로 30년의 글공부, 글씨쓰기 계획을 세워 정진했습니다.

제 계획은 3년에 한 번 씩 총 10번의 전시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27년 동안 아홉 번의 전시회를 마쳤습니다. 이제 한 번의 전시회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시회를 하는 동안 선친께서 저의 뒷바라지를 해 주시느라 많이 애써 주셨는데, 이제는 제 아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를 한번 하고자 하면 시구, 문구들이 머리를 둥둥 떠다녀서 머리가 꽉 찬 느낌입니다. 머릿속이 온통 전시회 생각 뿐 이지요. 밥을 먹다 말고 젓가락으로도 글씨를 쓰고, 낚시터에 가서도 호수에 글씨를 쓰는 연습을 할 정도입니다.”

▲우공 이일권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던가.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치지 않고서는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진리(?)를 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미치고자 해서가 아닌, 스스로 좋아서 미치는 사람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꽤나 부럽다. 거기에다가 재주까지 많은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얄밉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러한 재주도 그냥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을 통해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천재라서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렸던 줄 알고 있었던 추사 김정희는 70평생 동안 벼루를 10개나 구멍을 냈고, 1,000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공의 서실에 걸려 있는 붓들

추사 김정희의 “책 5,000권을 읽어서 그 문자를 가슴에 담은 뒤 붓을 들어야 글이 자연스럽고, 서취가 높아진다”는 글을 읽고 난 낯짝이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기에 바빴다. 끈기의 부족. 연습의 부족, 노력의 부족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서로 연관성이 있어서일까? 서예가인 우공 이일권은 서각가로도, 시인으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공은 지난 2011년 ‘심수전’에서 벼락 맞은 대추나무인 벽조목(霹棗木)에 동물, 꽃 등을 음각한 작품을 선보이는 등 서각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우공의 전각작품들

2013년 문예사조 5월호에 ‘뿌리’ 가 실리면서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계룡산 일출, 금강靑波, 마곡사 신록, 갑사 단풍, 공산성, 곰나루, 창벽, 연미산, 무령왕릉, 석장리 등 공주신십경(公州新十景)을 직접 읊은 시와 그림, 글씨를 담은 병풍을 전시해 글씨, 글, 그림, 서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5월 공주문화원에서 열린 우공의 전시회 ‘심수전’에 출품된 벽조목 작품들

“그동안 제가 한 일이 나를 사랑한 것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서예인 으로서 내 고장을 지켰고, 외지로 심사를 다니면서 공주의 서예 인재들을 많이 키웠습니다. 그래서 서예전에서 많은 입상을 이끌어 냈지요.

공주 십경, 공산성, 공주교대, 경찰서, 시청, 임류각, 보훈공원, 북중학교, 금성여고 등 공주의 여기저기에 쓰여 있는 저의 글씨가 100여 곳이 넘습니다.”

앞으로 남은 한 번의 전시회에서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공주, 부여, 익산에 있는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을 전각하고, 시를 지을 계획이다. 그는 이를 위해 서울 송파구청, 부여군청, 익산시청에 전화해 백제흔적을 전각으로 남기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부여군청, 익산시청으로부터 “자료를 제공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내년 1월부터 서예 전문잡지인 ‘묵가(墨家)’에 공산성 관련 시 작품을 연재하기로 했다.

“저의 열 번째 전시회는 내년 2018 올해의 관광도시선정에 부응해 우리 고장을 더 알리고, 후진 양성을 위해 진력할 계획입니다. 개인전은 그렇게 10회로 마무리 하고, 이후 시간은 공주에 대한 글, 시를 표현하는 큰 작품을 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의 권유로 나도 모르게 글씨를 시작해 20세 중후반에 갈 길을 결정하고, 30세 에 화곡선생과 책 열권을 내기고 약속하고 살아 왔는데, 결코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표를 세웠으면 인생을 걸어야 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많이 도움을 주셔서 아홉 번의 전시회를 하고 나니 그제야 “다음 전시가 기대된다”며 알아주기 시작하더군요.

자신이 서체를 갖기 위해서는 글씨를 엄청나게 많이 써야 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글씨를 쓰다보면 저절로 서체가 터져 나옵니다.

서예가란 모름지기 글씨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서예가의 뜻에 맞게 글씨로 표현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시나,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처럼 글씨도 사람의 마음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글씨로도 강약, 높낮이 등을 통해 사랑의 감정, 슬픈 감정, 기쁜 감정, 역동성 등 다양한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뜻하는 바에 맞게 글씨를 쓰면 보는 이들도 그러한 감정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공만의 필체를 가졌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우공체’를 만들었을 때 한글 분야의 맥과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한문은 표의문자(表意文字)라서 화선지 위에서 놀게 해야 하지만,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은 소리에 맞게 표현해야 합니다.

부산에 수업을 하러 갔는데 한 어르신 수강생께서 “내 나이 70이 넘도록 여러 스승을 모시고 배웠는데, 그중 우공이 가장 어린 스승”이라며 “우공의 붓이 살아서 춤을 추니 우공에게 빠지게 된다. 죽을 때 손이 아까워서 어쩌느냐. 존경 한다”고 과찬을 하시더군요. 지금 제가 가고 있는 이 길을 열심히 가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아, 내가 작은 흔적을 남겼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곧게 글씨 쓰고, 살아 온 서예가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저는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글, 글씨와 놀며 지냅니다. 낚시를 하면서도 글을 잊지 않으려 논어 등을 외우고 물위에 글을 씁니다. 물위가 바로 화선지가 되는 것이지요.

그 화선지 위에 시 한수 쓰고, 낙관을 찍으면서 내 인생의 참맛을 알고 즐기고 사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도 내년에 자신 있게 선보일 그의 열 번째 전시회를 기대하며 그와 함께 공주에 사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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