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자의 동작치유 이야기-9

동지(冬至) 음력 11月5日. 24절기 중 22번째 절기. ‘애동지’란 음력으로 10일전을 말하며, 아이들에게 좋다는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팥떡을 먹는다.

“산 중의 겨울은 빨리 오고, 깊어. 이런 동짓날에는 새알이라도 많이 넣어 뻑뻑하게 해야 동지 맛이지”라는 아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가슴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사찰 처마 밑 풍경이 소리를 내고, 밤이 깊은 산 중의 석등은 밤새 눈길을 인도한다. 팥죽 사이로 둥둥 떠 있는 하얀 새알심이 마치 눈송이 같았다.

색과 그 모양, 그 자체가 궁합이고, 음양의 조화다. 어쩌면 그리 완벽할 수 있을까. 이맘때쯤이면 나는 나의 선친 생각에 깊게 빠져 있곤 한다.

선친은 사정으로 인해 일찍 교도관을 그만 두셨고, 무단히도 백수가 되지 않으시려는 부친의 역할은 땔감을 공수하는 것이었다.

당시 하숙생은 많았으나, 땔거리가 풍족하지 않아 선친께서는 세제골에서 가시나무를 리어카에 가득 실어 교동 집까지 실고 오셨다.

가끔 마중을 나가 보면 아버지는 지게다리를 배꼽에 대고, 언덕(지금의 교동초등학교 길)을 넘고 계셨는데, 리어카 위에 지게만이라도 내려놓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지게는 나무를 옮기기 위해 꼭 있어야만 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고, 아버님의 끌었던 리어카의 무게가 이제야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집에 도착하신 선친께서는 작은 도끼로 나무를 군불지피기에 편한 길이로 잘라 뒤꼍에 담 높이만큼 가득 쌓아 놓으셨고, 그것이 많이 집 주위에 돌려 쌓이면 봄이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나무들은 젖은 나무 임에도 화력이 무척 좋았다. 부뚜막 위 무쇠 솥이 달구어져 땀이 흐를 때쯤이면 나의 이마도 무쇠 솥 만큼이나 따뜻했다.

그 따스함이 큰 행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 온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나는 당시의 그 불빛과 온전히 마주하고 있었다.

불빛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카시아 나무가 타면서 내는 불빛을 보기 시작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지글지글, 뽀오~” 불규칙적인 거품 같은 모양의 소리. 한겨울 젖은 아카시아 나무가 타면서 나의 미래를 이야기 했던 것이었을까? 지금의 나를?

참 알 수 없는 묘한 추억의 모양, 빛, 소리, 하지만 이 모든 역동은 지금도 내 앞에서 진행 중이다.

엊그제 내린 많은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옛날 그 아카시아나무가 타면서 내던 불빛으로 나를 인도한다. 나는 그 불빛을 따라 하얀 눈 위를 달팽이 모양으로 천천히 걸어본다. 아주 천천히, 그 불빛을 따라….. 나는 그것을 동작치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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