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일 송명석(영문학 박사, 세종교육연구소장)

유년 시절을 보낸 시골집 뒤켠엔 대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겨올 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잎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고 무서웠으나, 대나무 뿌리가 엉키고 설켜 우리 집을 여름철 홍수로부터

지켜주는 거라고 어른들께 들으면서 대나무 울타리는 참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나무가 갈대와 달리 곧고 강하게 자라는 것은 중간 중간에' 매듭'이 있기 때문이란다. 비 온 뒤에 여기저기서 쏙쑥 자란다하여'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대나무가 항상 성장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는 가뭄이 심하거나, 영양이 필요할 때는 매듭에 있는 성장 판을 닫고, 힘을 비축한 뒤 기회가 되면 다시 성장을 한다. 적절히 성장과 멈춤을 반복함으로써 마디마디 매듭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나무의 매듭은 단절되고, 막힌 것 같으나, 그 끝에서 정리 정돈이 되고, 새 가지가 자라난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네 삶에도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한해의 발자취를 그려보는 연말 성적표는 늘 부끄럽다.

현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분주하고, 앞만 보고 뛰는데 도무지 목표가 없다. 미래는 변화무쌍하여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목표 없는 명중은 없다.

한해를 시작할 때 어떤 목표를 세웠는가? 그 목표에 철두철미한 계획이 있었는가? 현실에서 치열한 실천은 있었던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평가까지 해보는 計,實,評이 있어야 한다. 여전히 힘들고 어려웠던 한해였다면 일단 멈추고 힘을 비축하자. 지나온 시간들을 매듭짓고, 다시금 도약을 하는 것이다.

마디가 곧은 대나무를 만들 듯 되풀이 되는 좌절과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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