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月 7日 대설 (음10.20). 이 때쯤이면 저는 멋진 아버지의 물고구마의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따뜻해져옵니다.

호밀 농사를 잘 지으셨던 선친께서는 토광에 가을 고구마를 보관하기 위해 호밀짚으로 참 과학적이고 근사하게 저장고를 만드셨지요.

쓰지 않는 골방에 겨우내 양식이며 간식거리인 기다란 물고구마. 그 시절에는 고구마가 큰 상품거리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모두의 간식이며, 새참 거리였기 때문이지요.

이때쯤이면 김장에서 남은 겉절이가 질펀한 단물을 마치 갱엿처럼 몸에 두른 가마솥에서의 물고구마를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짧고 근사한 행사는 또 있었습니다. 선친이 좋아하셨던 커피는 마치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행사처럼 행해졌지요.

고동색 유리병의 동서 프리마, 그리고 맥스웰 커피. 어린 저는 “맛을 고소하게 해 달라”며 커피 비율의 5배를 프림으로 채워주시도록 졸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부친의 눈빛에는 왜정 때의 젊은 시절 꿈을 찾아 갔었던 일본 생활 중의 추억이 살짝 드러나곤 했었지요.

그 시절에는 그 눈빛을 읽지 못했지만, 지금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물고구마 그리고 커피. 오늘은 그 시간이 가족들의 풍성한 겨울을 시작하는 달빛이 고운, 보름달 같은 근사한 저녁 파티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기억 속에 그 토광의 큰 호밀짚은 고구마 저장고를 자주 드나들며 입술이 까맣도록 생고구마를 먹었던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오늘은 두 팔을 벌려 가슴속으로 호밀짚을 안아봅니다. 부족해서 꼭 필요로 했었던 것들이 우리가 찾던 행복의 끝 점에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배고픈 시절의 행복인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키가 작아 보이지 않는 고구마를 꺼내기 위해 까치발로 손을 더듬으며, 눈을 깜빡거리며, 신경을 집중해 고구마를 집으려 했던 그때 그 모습은 아마도 자연에서 예술가의 몸짓에 가까운 인간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키가 큰 거친 호밀짚이 팔 안에 들어왔고, 호밀짚이 꺾어지도록 생고구마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손의 모습을 연상하며, 오늘도 커다란 팔의 움직임을 통해 깊은 호흡 안에서 아버지와 가족의 추억이 담겨있는 커다란 호밀짚을 가슴으로 안아봅니다.

아주 천천히, 왼손과 오른손의 움직임을 가슴으로 느끼며, 깊은 호흡과 함께…. 이런 몸짓과 깊은 호흡을 동작치유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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