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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제에로오제
2017년 11월 27일 (월) 07:08:32 성낙희 stopksk@hanmail.net
   
 

낡은 것에는 편안함이 있다. 그 것이 주는 오랜 경륜과 깊이를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껏 미국식의 현대 문명, 생활양식을 학습하며 당연히 그러한 것을 구가하며 살아왔다. 새것, 전통이 배제된 기술문명의 이기만을 취하며 그것이 가장 세련되고 우리가 취해야 할 당위적인 일로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안에서는 그것만으로 만족되지 않는 허전함과 낯섬, 불안함 같은 것이 항상 잔존했었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할 때나, 일상에서도 오랜 것들을 접할 때마다 경외로운 충격과 함께 알 수 없는 만족감이 심부에서 흘러넘쳤다.

플라톤의‘향수’는 오랜 것, 원류에 가 닿으려는 귀소본능을 이름이다. 살벌한 디지털문명(나에게는) 속을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향수는 저항할 길 없이 마음과 뇌리를 엄습해 온다.

우리 모두는 노스탤지어를 앓을 수밖에 없다. 미국 문화의 뿌리이며 현대 문명의 토양이라고 할 만한 유럽으로의 여행은 어쩌면 시간의 문제일 뿐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특히 고전적인 것에 심취된 사람들은 더욱. 과연 구라파적인 것과‘유럽의 정신’이란 무엇을 이름일까?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 젊은 날의 내 영혼을 사로잡은 전혜린에 경도되어 그 문학적 자취를 더듬고자 독일로 향했다.

독일의 봄은 참으로 더디게 왔다. 5월인데도 비가 오고 추운 날을 계속 보내야했다. 가지고 간 옷들이 무척이나 얇게 느껴졌다. 그 속에서 막막하고 우울했다. 방에 틀어박혀 독일과 유럽의 면면이나 그녀의 유학생활이 가감 없이 쓰여 진‘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또 읽었다.

그녀가 공부했던 뮌헨 대학가의 풍경들은 그 책에 쓰여 진 그대로였다. 키가 큰 포플러 나무가 장중하게 줄 지어 서있는 레오폴드 거리의 풍경도, 넓디넓은 영국 정원, 그 가운데 그녀가 수많은 꿈과 사연을 매장시킨 호수,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백조들도 여전하였다.

그녀가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관조하며 고독을 느꼈듯 나 역시 오래도록 그것들을 바라다보았다. 그 날 나 역시 매우 고독하고 막막하였다. 아무 것에도 자신이 없었다.

넓디넓은 영국정원을 걸어 나와 너무 낡아서 애드가 앨런 포우의 어셔가를 연상시킨다 했던 그녀의 거주지였을 법한 주택들도 살펴보았다.

이제는 상전벽해 깨끗한 리모델링 현대주택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걷다보니 배고 고프고 다리도 아파 세련되고 깨끗해 보이는 하얀 색 외관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어쩌면 그 옛날의 전혜린도 그렇게 ‘제에로오제’를 찾았을 것이다.

나는 약간 어색해 하며 혹은 비싼 곳이 아닐까 하는 낮은 마음이 되어 레오폴드에서부터 쏘다닌 비 맞은 생쥐 꼴을 해서 넓적하고 편해 보이는 올리브색 쇼퍼에 앉았다.

그들이 다른 자리에 가 앉으라고 하면 옮길 참이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깐깐해 보이는 외모들과는 달리 아무 말도 재촉도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러 살랏과 샌드위치를 시켰다.

그리고는 버릇처럼 와이파이 패스워드를 물었다. 패스워드를 핸드폰에 입력하고는 고국의 소식을 마치 햇살처럼 공기처럼 받아들였다. 가족, 친구, 지인들…. 그네들은 지금 너무 멀리 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값을 치루고 제에로오제(seerose) 식당의 위치를 물었다. 친절하게 문밖에 나와 손을 뻗어가며 가르쳐주던 남자 종업원 덕에 많이 헤매지 않고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전혜린이 느꼈던 감정도 이런 것 이었겠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진정 차갑고 축축한 슈바빙의 날씨에 한 줄기 햇살 같은 온기를. 그것이 셔츠를 푼 것처럼 헐렁한 뮌헨만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자유의 일면임을 의심치 않는다.

나치 시대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유로운 사상과 비판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뮌헨 대학 총장이었던 후버가 총살을 당해야 했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자유를 팔아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아랫도리가 서늘해지는 매서운 정신의 발원지, 뮌헨 그리고 슈바빙! 그 올곧은 신념과 자유로운 삶은 전체 독일을 살리고 전 유럽을 깨어있게 하는 빛과 소금이 아닐까.

비록 찾아간 제에로오제는 이탈리아 식당으로 바뀌었고, 책에서 가르쳐 준 케스트너니 링겔넛츠니 토마스 만의 소행의 낙서 자국은 하얀 석고칠과 검은 프레임 속의 사진들 아래로 묻혀 버렸지만,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나는 ‘아름다운 장미’를 보았으니까. 진정한 제에로오제는 언제나 마음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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