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들의 숲-3

밤은 깊어만 갔다. 넝마도사는 이제 일어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마한의 대거리에 심술기가 발동해서일까? 넝마도사가 갑자기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어떡하지? 돈이 한 푼도 없는데.”

고마한의 두 눈동자가 한껏 커졌다.

“뭐라고요!? 돈이 한 푼도 없다고요?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넝마도사가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긴? 나는 넝마잖아. 제자인 네가 부담해야지. 네놈이 훨씬 비싼 것도 먹었고.”

“뭐라고요? 저도 땡전 한 푼 없다고요!”

어쩔 줄 모르는 제자를 한동안 느긋하게 지켜보던 넝마도사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주인을 불렀다. 곧 늙수그레한 주인이 나타나자 넝마도사가 시침을 뚝 떼고 말했다.

“주인장, 나, 넝마도사요.”

주인이 넝마도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넝마긴 넝만데, 도사? 하여튼 나를 왜 불렀소?”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주인에게 넝마도사가 수작을 걸었다.

“주인장, 내 주인장을 큰 부자로 만들어 주리다.”

주인이 뜨악하게 받았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욕심을 더 냈다간 천벌을 받죠.”

“하지만 자식 다섯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려면 충분치 않을 것이오. 근데 장남의 등짝에 혹시 막대기 하나가 보이지 않소?”

주인은 깜짝 놀랐다. 큰 아들의 등판에 막대기 하나가 꼿꼿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떻게 안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 막대기 하나는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바로 숫자 1을 뜻하는 것이오. 내, 무식하지만 하나의 예언을 하겠소.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성지인 이곳 공주에 고마 순례길이 생길 것이오. 장장 200 리에 이르는 넓은 둘레길이지. 그 길에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오. 나라 밖 사람들도 엄청 붐빌 테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말이오. 그리고 그 숫자 1은 세계적인 고마 순례길의 1호 음식점을 주인장의 장남이 차지한다는 뜻이오. 그럼 어떻게 될까?”

주인의 입이 함박 만하게 벌어졌다.

“아이고 도사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넝마도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나에게 고마워할 건 없소. 여기 있는 이 사람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넝마도사는 앞에 앉아 있는 고마한을 가리켰다. 고마한은 넝마도사의 수작에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넝마도사가 또다시 마법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이 고마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젊은이에게 말입니까?”

“그렇소. 이 청년은 앞으로 공주 시장을 세 번이나 지낼 사람이오. 고마 순례길을 완성할 사람이지. 이 청년이 주인장의 장남에게 고마 순례길 1호점을 내줄 것이오.”

주인이 고마한에게 껌뻑 죽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몇 번이나 깊숙이 숙였다. 그때 넝마도사가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장, 여기 밥값이 모두 얼마요?”

주인이 설설 기듯이 그 말을 받았다.

“아이구, 도사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밥값이라뇨? 앞으로 두 분은 이 식당의 평생 무료 고객입니다. 언제든 환영하겠습니다.”

넝마도사와 고마한은 음식점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고마를 나섰다. 별들이 유난히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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