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개걸 판사는 지난 15년간의 판사 생활을 되돌아보았다. 부끄러움이 없는 공직생활이었다. 그는 법률을 추상같이 적용하여 범법자들로부터 이 사회를 지키는데 갖은 노력을 다해왔다.

그는 재물손괴사건 둘의 기록을 보고 또 보았다. 검사의 구형량은 비교적 무난했다. 하지만 넝마도사라고 하는 늙은이에게 벌금형을 선고하여 그대로 석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그 늙은이는 벌금을 낼 의사도, 능력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늙은이에게서 보이는 반사회적 기운의 싹을 이 기회에 싹둑 잘라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공직자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뭐? 평생 넝마 하나만을 걸쳐왔다고? 자본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공주의 역사가 잘못 됐다는 이유로 도서관의 책 3권을 공공연히 찢어발겼다고? 역사에 대한 반역이다. 판사인 나를 보고 후레자식이라고? 신성한 법정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내가 그를 석방할 것이라고? 도사를 빙자한 예언으로 법과 사회제도를 맘껏 우롱하고 있다. 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또 하나의 재물손괴범도 가혹한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는 대학을 나와 10년이 넘도록 백수건달로 지내왔다. 아마 그놈은 허구한 날 빈둥빈둥 먹고 놀았을 것이다. 밥벌레로도 모자라 어느새 이 사회의 독버섯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선량한 사람들의 애꿎은 자동차를 쇠파이프로 마구 부수질 않나?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에게 주먹을 마구 휘두르질 않나? 정녕 위험한 놈이다.

더구나 나, 도개걸은 그에게 기회를 한 번 주었었다. 내 예언과 넝마의 예언 중 양자택일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무엄하게도 그는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했다. 예언의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 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엉터리 도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둘은 사제지간이다. 이 악질적인 둘을 이 사회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회의 암적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재물손괴범에 대한 형의 선고가 있는 날, 도개걸 판사는 잘 자고 잘 먹은 다음 기분 좋게 법원청사로 출근했다. 그날따라 봄날의 향기까지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법정 개정 10시 전까지 집무실에서 차 한 잔의 향기와 두 악질범에 대한 형량을 번갈아가며 음미했다.

10시 정각, 법의를 근엄하게 차려 입은 도개걸 판사가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서기 박틀비는 불안감을 느꼈다. 판사의 근엄한 표정과는 달리 피고인 둘은 너무나 태평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그들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선고될 형량이 가져올 무섭도록 불안한 공기가 서기 박틀비를 한없이 긴장케 했다.

도개걸 판사는 판결의 이유를 먼저 설명했다. 두 피고인이 온전히 법정에서 걸어 나갈 수는 없어보였다. 그때 마른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일기 시작했다. 법정의 유리창을 통해 심상치 않은 빛과 소리가 전달되었다. 갑자기 판결을 선고하는 판사의 입이 어둠과 빛을 동시에 뿜어내면서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곰의 포효를 연상시키는 야릇한 짐승의 소리처럼 들렸다.

“피고인들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뜻밖의 선고가 끝나고 피고인들은 교도관을 따라 교도소로 돌아갔다. 그들은 곧 석방될 것이었다.

한편 도개걸 판사는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법정에서 정신이 다 빠져나간 표정으로 서기 박틀비로부터 믿기지 않는 상황 설명을 여러 차례에 걸쳐 듣고 있었다. 판사의 판결 초고에는 — 피고인1, 피고인2, 모두 징역 3년의 실형 — 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판사는 두 피고인에게 거의 무죄판결이나 다름없는 선고유예의 판결을 내린 것이었다. 말하자면 판결주문이 판사의 내심의 의사와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판사의 입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엄청난 판결 사고였다.

도개걸 판사는 이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서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넝마도사의 다음 예언이 떠올라 도개걸 판사는 마냥 불안한 느낌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