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손괴

넝마도사는 본격적으로 문제의 사내를 캐내기 시작했다. 사내가 경찰의 조사를 마치고 감방으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어이, 재물손괴 동지. 그래, 자넨 뭘 때려 부수었나?”

넝마도사의 물음에 그는 넝마도사를 힐끗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영감은 뭘 때려 부수었소?”

“나? 난 때려 부수지는 않았어. 도서관의 책 3권을 찢어발겼을 뿐이지.”

사내는 의외라는 듯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넝마도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통쾌했지. 모두 백제의 역사에 관한 책이야. 특히 공주의 역사가 영 잘못 돼 있거든. 다가올 이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예비하기 위해 내가 퍼포먼스를 좀 펼쳤지.”

사내의 반격이 있었다.

“공주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면 이 나라의 역사가 새로워지는가요?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한데요.”

사내의 질문 역시 넝마도사를 취조하던 검사의 질문과 같았다. 넝마도사는 일단 대답을 피해가기로 했다. 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건 일단 호기심 상자에 넣어두자고. 곧 알게 될 테니. 그래, 자넨 무엇을 파손했는가?”

사내는 그제야 이야기할 기분이 드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며칠 사이에 재물손괴범끼리의 묘한 동료의식이 생겼는지도 몰랐다.

“나는 자동차를 때려 부수었소. 정신을 차려보니 길가에 주차한 승용차 3대가 모조리 박살나 있었소. 달려온 짭새도 후려갈겨버렸고요.”

사내의 말대로라면 그에겐 1+1, 즉 재물손괴죄에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될 것이다. 이 경우 공무집행방해죄가 재물손괴죄보다 더 중히 다루어질지 모른다. 그런데 사내의 설명이 어딘가 명쾌하지 못했다. 고의이긴 하지만 일종의 흥분상태에서 저지른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라니. 환각상태에서 그랬나?”

“글쎄요. 그날은 내가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았어요. 부여행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공주에 들어서면서 이상했어요. 그간 쌓인 울분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나를 휘감고 돌며 도통 놓아주지 않더라고요. 결국 솟아오르는 울분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당장 울분을 풀어야 하겠더라고요.

나는 마치 누가 시키기라도 하듯 어둑어둑한 공주 터미널에 무작정 내렸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쇠파이프로 인근 길가에 주차해 있던 승용차를 마구 때려 부수었죠. 곧 달려온 짭새에게도 주먹을 한 방 날렸고요.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넝마도사는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이지 않는 이의 손길을 느꼈다. 그도 보이지 않는 이의 안내를 받아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넝마도사는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고마한입니다.”

“고마한이라고?”

“그렇습니다.”

넝마도사는 전율을 느꼈다. 이름 석 자에서도 청년이 고마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넝마도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래, 쌓인 울분이 뭔가?”

청년은 잠시 숨을 골랐다. 새삼 달아오르는 울분을 삭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 나이 서른다섯입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아직도 백수입니다. 대학에서 사학(史學)을 전공했는데 졸업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만 내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열등감과 무기력증은 나를 잔뜩 거칠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공주에 들어서면서 나 보다는 지옥 같은 이 사회에 대한 분노가 더 솟구치더라고요. 입사시험이든 공무원시험이든 보통 100대1의 경쟁사회, 대학을 나온 청년 실업자가 300만이 넘는 사회, 겨우 꿰찬 비정규직마저 한없이 혹사당하는 사회, 앞날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어 결혼마저 포기하는 사회, 행복지수는 형편없이 낮고 자살률은 급격히 치솟는 사회, ‘헬조선’을 외칠 만큼 구역질나는 각종 사회현상이 저를 끝없이 화나게 하더라고요.

순간 그러한 사회에 일격을 가하고 싶었죠. 정말 모르겠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났는지 말이에요. 정신없이 버스에서 뛰쳐나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죠. 그땐 자동차가 일그러진 자본주의와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요물로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도 통쾌합니다.”

청년의 말에 넝마도사도 묘한 통쾌감을 느꼈다. 청년은 탈출하고 싶은, 지옥 같은 이 사회에 멋지게 한방 날린 것이었다. 넝마도사가 말했다.

“그렇게 통쾌한가?”

“그럼요. 청춘들이 나처럼 이제 다 늙어버렸어요. 청춘이 질식하는 사회에 절망의 기운만이 팽배해 있죠. 모두 이 사회를 지옥이라 생각하죠.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그런 사회에 대해 한 방 날렸으니 얼마나 통쾌하겠어요?

“그렇군. 근데 감옥에서 오래 썩을 텐데?”

“밖은 우리에겐 지옥이에요. 지옥보다는 감옥이 낫죠.”

“그런가? 지옥에서 탈출하여 감옥으로 온 셈이군. 아무튼 청춘들을 대표하여 멋진 퍼포먼스를 펼쳤어.

그러니 우리는 묘한 동지일세. 나는 잘못된 역사에 대해, 자네는 잘못된 사회에 대해 찬란한 퍼포먼스를 펼쳤으니까 말이야. 그야말로 통쾌한 행위예술이야. 하하하.”

넝마도사의 너털웃음에 청년도 감방이 떠나가도록 웃어젖혔다. 넝마도사의 말대로 정녕 자신의 행위가 지옥 같은 이 사회를 향한 일종의 퍼포먼스였을까? 그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득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넝마도사라고요?”

“그러네. 평생 넝마 하나만 걸치고 다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군.”

“평생 넝마 하나만을 걸쳤다고요? 영감님이야말로 잘못된 역사뿐만 아니라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 대해서도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셈이군요. 정녕 살아 있는, 치열하고 현란한 행위예술입니다.”

“그런가? 하하하.”

두 재물손괴범은 장소에 아랑곳없이 마냥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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