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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묵, “교회와 목회를 위해 목숨을 건다”
<인터뷰> 꿈의교회 안희묵 대표목사
2017년 08월 28일 (월) 06:59:03 김광섭 기자 stopksk@hanmail.net
   
▲ 글로리 채플

꿈의 교회 (대표목사 안희묵)가 세종시 새롬동에 있는 글로리 채플 교회를 설립했다. 이는 공주 꿈의교회에서 출발, 대전 꿈의교회, 세종 꿈의교회에 이어 설립된 교회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처럼 꿈의 교회가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되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부러운 나머지 일부에서는 시기, 질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무엇이든 망하고, 흥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꿈의교회가 밖에서 보기에 초고속 성장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알아보기 위해 안희묵 대표목사를 2일 동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결국 그 답을 찾아냈다. 답은 ‘비전’과 ‘목숨을 건 도전’에 있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 것이고, 현명한 사람은 사촌이 어떻게 땅을 샀는지를 물어 자신도 땅을 살 것이다.

뜨거운 열정과 비전으로 다음 세대,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글로리채플교회를 설립해 주목을 받고 있는 꿈의교회 안희묵 대표목사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이하 일문일답.

   
▲ 안희묵 목사가 특급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Q. 한국교단에서 꿈의교회가 많은 관심을 받은 교회가 된 것 같습니다. 작은 중소도시에서 지금은 한국의 중심인 세종까지 어떻게 교회를 세우게 되셨는데, 지금까지의 목회스토리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A. 꿈의교회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꿈의교회는 올해로 121년의 역사를 지닌 침례교단의 어머니 교회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에서 목회 한다는 것에는 적잖은 부담이 따릅니다.

처음 공주 교회를 담임하면서 중소도시에 희망이 되는 교회가 되며, 지역사회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 성도들이 행복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제 비전이었습니다. 첫 부임했을 당시 성도들과 함께 교회 성장과 부흥을 위해 밤마다 기도회를 열고 간절하고, 치열하게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장이 쉽지가 않더군요. 성도 300명을 넘는 것이 당시 간절한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목회하던 가운데 교회 부지의 일부가 공주시 소방도로에 편입이 되면서 교회건축이냐, 아니면 학교 강당을 빌려 사용할 것인지 놓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웅진동 부지를 매입해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7월 웅진동에 건축된 교회에 입당하고 성도들과 함께 “우리가 믿음으로 꿈을 꾸면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을 갖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 둘씩 이루어졌습니다. 2004년에는 “좋은 교회를 넘어 위대한 교회로”라는 타이틀로 ‘2014 비전’을 선포하고, 새로운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에 대한 거룩한 비전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 던 중 2006년 세종시 인근 금암리 임야를 구입하게 됐고, 이곳에 교회 및 실버센터,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센터를 건축하려는 계획을 했었습니다. 실제로 법적인 허용 범위 안에서 임야 일부를 개발하고, 준비하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대전에서 공주로 예배 출석하던 성도들(33명)의 요청으로 대전꿈의교회가 2008년 11월에 설립되어졌고, 현재는 13년간 함께 사역하던 정임엘 목사님이 제2대 담임목사가 되어 교회학교 포함 500여명이 모이는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종시에 교회 설립을 위해 기도해왔던 금암리에 교회 건축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첫 마을에 있는 세종시 종교 부지를 구입하게 되었고, 금암리 부지는 교육문화센터와 대안학교를 위한 부지로 사용하기로 교회 회의를 통해 결정했습니다.(그러나 2016년 금암리 부지는 세종시로부터 공공시설 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부지로 수용되어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세종시 첫 마을 입주가 시작되던 2012년 4월15일 세종시 첫마을 상가를 빌려 카페를 만들어 주중에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고 주일에는 카페를 닫고 예배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카페교회 설립 비용은 공주 장로님들과 목자들의 헌신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카페에서 교회를 시작 할 때 리더로 헌신한 2가정과 함께 예배를 시작했는데 한 동안 새 신자가 없습니다. 그러다 새벽기도에 나오셨다가 등록한 한 가정으로 시작해 오늘의 꿈의 교회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구입했던 세종시 한솔동 종교 부지에 교회를 건축하고 2013년 12월 22일 주일 입당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부흥하게 되었는데 공주, 대전, 세종에 있는 세 군데 교회를 다니면 혼자 목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 멀티교회를 선포하고 각각 독립된 교회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한 곳에서 대형 교회가 되는 것보다 멀티교회로 함께 협력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좋은 대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Q. 목사님께서는 ‘멀티교회’라는 새로운 개념의 교회를 추구하고 계신데 ‘멀티교회’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의 교회인지요? 그리고 이에 대해 일부 비판론자들은 “ ‘체인점식 교회’다, 소규모 교회들의 기회를 막는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개척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것 같습니다. 원래 공주 꿈의 교회에서는 공주와 세종 두 날개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대전 꿈의 교회가 세워졌고 세 개 교회가 되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때까지는 멀티 캠퍼스 교회였습니다. 멀티 캠퍼스 교회는 말 그대로 “여러 곳에서 모이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지 교회에 대한 개념은 멀티캠퍼스 교회에 더욱 가깝습니다. 한 목회자가 여러 교회를 담임하면서 이끌고 부목사들을 세워 운영해가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꿈의 교회를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판하는 분들은 바로 이 부분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멀티사이트 캠퍼스 교회’ 보다 더 건강한 교회의 구조가 무엇일까 기도하며 고민하던 중 복음을 위해서는 한 비전과 사명을 갖고 있지만 각각의 도시에서 각 교회 별 특성을 살려 각자의 달란트에 맞게 사역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비전과 사명으로 함께하는 여러 교회’ 를 꿈꾸게 됐고, 이것을 ‘멀티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멀티교회는 재정과 행정 담임목사 등 교회 운영은 독립교회지만 꿈의 교회가 추구하는 교회 비전과 사명을 함께 공유하며 나아가는 교회 입니다.

제가 ‘대표목사’라고 하니까 기업의 대표처럼 모든 권한을 가진 대표로 생각하고, 각 교회 담임목사는 ‘바지사장’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모욕’입니다. 모든 권한이 각 교회 담임목사에게 있습니다. 저는 각 교회들이 한 비전과 사명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영적, 상징적인 대표일 뿐입니다.

그래서 대전은 13년간 함께 사역하던 정임엘 목사를 제 2대 담임목사로 세우고, 완전한 독립교회가 되었습니다. 대전 꿈의교회 재산도 넘기기로 결의했으나 증여세라는 예상치 못한 문제 때문에 유보하다가 대전 재산은 교단 재단에 귀속시키고 대전이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해서 진행 중입니다.

사실 대전을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멀티교회를 지향했던 것이 아니기에 행정적인 독립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2017년 글로리채플을 설립할 때는 처음부터 독립교회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15년간 사역한 김준태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우고 정착하도록 힘써 돕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공주와 세종에 담임목사로 되어 있습니다. 공주도 2016년 봄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세종만 담임 하겠다”고 했다가 장로님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담임목사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종, 공주 오가면서 설교하고, 교회를 돌보는 일이 너무 힘에 겹지만 공주는 함께 하는 배창효 목사가 많은 역할을 감당해 줘서 저의 짐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허락하신다면 공주도 조기 은퇴하고, 적당한 때 세종꿈의교회도 좋은 후임 목회자를 세운 뒤 고령화 시대 시니어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되겠지만요.

사실 멀티교회 방식은 한국에 거의 없는 모델이기에 ‘체인점식 교회’ ‘혹은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교회도 월드비전을 전적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월드비전이 지부를 낸다고 해서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장려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교회는 ‘멀티교회’입니다. 멀티교회는 한 곳에서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형화를 추구했다면 한 지역에 머물면서 건물적인 확장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각 지역에 건강한 교회를 세워 지역 사회를 섬기고, 시민들에게 참된 평안과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세우는 일은 오히려 장려되어야 하는 것이지, 막아야 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멀티교회는 “여러 교회가 하나의 비전과 사명으로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꿈의교회 공동체는 독립된 교회로 독자적으로 사역하되 비전과 사명을 위해 필요한 자원과 능력을 공유하며 함께 협력 할 것입니다.

Q. 꿈의 교회에서는 미 자립 교회들을 위한 지원들을 하고 계십니까?

A. 그동안 미 자립 교회들을 많이 후원했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에 몇 십 만원씩 지원하는 것을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각 교회의 선교 에너지를 모아 건강한 교회를 한 교회씩 세워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런 방식으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교회가 필요한 곳에 다른 도시라도 전략적으로 교회를 세워가는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집중력 있는 섬김과는 별도로 교단의 농어촌 선교회와 연계해 일 년에 100개 이상의 농어촌 미 자립 교회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기로 결정하고 시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농어촌 목회자들은 부사역자들이 없기 때문에 휴가를 가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목회자들을 위해서 지역교회의 목사님들이 쉼을 가질 수 있도록 2년 전부터 매년 ‘목회 연구비’ 제도를 갖고 6분의 목사님들을 선정해 200만원씩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늘려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목회자 자녀와 성도들의 자녀들 중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등록금등이 없어서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엘피스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물론 일반 시민 자녀들을 위해서도 그동안 공주시와 세종시 장학회에 매년 일천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공주대학교에는 행복한 동행 프로젝트를 통해 몇 년 전에는 2천5백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꿈이 한국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월드비전과 함께 잠비아에 카도바 지역에 꿈의 중등학교를 세웠습니다. 4년 전 월드비전을 통해서 잠비아 지역의 사정을 듣고 성도들과 함께 비전을 나누었는데, 한 권사님께서 일억5천만원을 헌금 해주시고, 성도들이 동참해주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일회적으로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300여명에 가까운 학생들의 매월 생활비를 성도들이 월드 비전을 통해 후원하고 있습니다.

꿈의교회는 지역사회의 미 자립 교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지만 나라와 열방을 초월해 섬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Q. 공주에 있던 꿈의 교회가 성장하고 건축한 것도 대단한 일인데 대전에 교회를 설립하고, 세종에 교회를 설립 한 뒤, 이번에는 세종시 새롬동에 있는 글로리 채플 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꿈의 교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이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기 질투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목회하시기에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는지 세상 사람들도 배워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A. 저는 교회와 목회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슬프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 슬픈 것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달리기를 해도 옆 사람을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은 우승하기 힘듭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합니다. 저는 주변 다른 교회 목사를 경쟁상대로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게으르고, 연약한 나를 이기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습니다. 저는 이걸 ‘탁월함’이라고 교역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절박함이 능력이고, 치열함이 열정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내가 감동이 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목회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큰 교회를 목표로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명의 성도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희망으로 살 수 있도록 섬길 수 있을지 노력했습니다.

성도들이 많지만, 성도들 모두의 생일에 전화로 축하해줍니다. 설교 한편을 준비해도 ‘오늘이 마지막 설교다’라는 심정으로 설교를 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치열함을 은혜로 바꾸셔서 오늘의 꿈의 교회가 되게 한 것 같습니다.

Q. ‘글로리 채플’이란 무엇이고, ‘글로리 채플’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A. 글로리채플은 처음부터 다음세대를 위한 독립된 교회를 목적으로 개척되었습니다. 세종시에서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대다수가 30대 후반임을 보면서 다음세대를 세우고 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정말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다음세대들을 위한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문화 선교 또한 너무나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세종시 새롬동에 세워진 글로리채플은 다음세대를 위한 전문 사역다음 세대를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일반 시민들은 “다 똑같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글로리채플에서는 전문적인 다음세대 사역을 준비해 처음부터 다음세대를 위해 준비된 김준태 목사를 담임으로 세우고 준비해왔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주변교회의 자녀들 또한 시간이 맞아 글로리채플로 보내신다면, 함께 양육하고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이는 장년들이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음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글로리채플은 처음부터 다음세대와 문화를 위한 교회로 계획되어 모든 공간 또한 이에 맞도록 인테리어 되었습니다. 주중에는 카페 브릿지를 통해 성도들의 교제 공간으로 제공하고, 기독교 서점 봄은 두란노와 연계해서 각종 성경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시민들에게 기독교 문회를 통한 힐링의 장소가 되도록 설립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중에 카페 브릿지는 믿지 않는 분들의 모임이나 각종 단체 등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빌려드리고 있습니다. 다음세대를 위해서 세워진 글로리채플은 앞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 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한 찬양예배가 진행될 계획입니다.

수요일과 주중 저녁시간에는 중‧고‧청년들을 위한 찬양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고, 주변의 어떤 교회라도 필요한 행사를 위해 제공할 것입니다.

Q.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교회를 부흥시켰는데, 그러한 비전이 ‘욕심’으로 비쳐져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매로 증명하고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 사욕과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면 욕심으로 비판받을 수 있지만, 사명과 비전을 위해 노력하는 걸 비판한다면 그건 제 몫이 아니라, 비판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목사들을 위한 생계 수단이나, 목사들의 직장이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일반 시민 중에는 교회를 목사들을 위한 종교 사업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기관이나 단체가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교회가 회개해야 됩니다.

세종 꿈의 교회를 개척할 때 남들이 번듯한 상가에서 시작할 때 저는 카페 하나를 간신히 임대해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두 달 동안 한명의 성도 없이 함께 개척을 시작한 두가정과 공주에서 도와주러온 몇 몇 분들과만 예배드렸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상가교회 목사님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하던 ‘목사님은 출발점이 다릅니다.’라고 이야기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 또한 다른 목사님들처럼 치열하게 기도하며, 한 명의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제가 개인적으로 전도한 사람이 50여명 가까이 됩니다. 조기 축구회에 나가서 전도하고, 상가에 가서 물건 사며 전도하고, 밥먹으러가서 전도했습니다.

Q.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한 지역에 한 교회, 한 분의 담임목사님이 계신 것이 정상 아닌가요? 공주에 있는 지역 교회가 어떻게 대전과 세종에 교회를 세울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분들은 꿈의 교회가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안 목사님이 욕심이 많다고 판단하는 분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교회를 단체나 기관으로 보지만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교회를 유지하거나, 교회를 통해 어떤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와 시민을 위해 기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성도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성도들은 큰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건강한 교회인지, 건강하지 못한 교회인지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은 거리가 멀어도 건강한 교회이면 시간이 걸려도 찾아갑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관점이 큰 교회 작은 교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교회가 건강함을 추구한다면 성도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함은 작은 교회 큰 교회로 구분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작은 교회임에도 건강한 교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다 보니 지역을 넘어 성도들이 공주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요청으로 인해 대전꿈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대전꿈의교회를 설립하고, 주변의 교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사하고, 대전꿈의교회 설립에 대해서 직접 양해도 구했습니다.

교회를 설립하는데 반대하는 데 딱 한분만 반대하셨습니다. 그분은 소위 말하는 큰 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오히려 작은 상가교회 목사님들은 “오셔서 목회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요청해서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분명 저에게는 거룩한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제가 은퇴하는 순간은 열정이 사라졌을 때”라고. 그런데 저는 이 거룩한 욕심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의 거룩한 욕심을 통해서 누군가가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저는 문어발식 교회라고 비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마지막 한 사람에게라도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Q. 대표목사’와 ‘담임목사’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좀 전에 말씀드렸는데요. ‘대표목사’라는 건 공주와 대전과 세종과 글로리 채플이 한 비전과 사명으로 함께 하는 비전과 사명의 대표라는 의미이지, 계열사 거느린 기업 대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대전과 글로리 채플 담임은 따로 있습니다. 아마 대표라는 개념이 교회에서 쓰는 개념은 아니어서 많이들 어색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들목교회(김형국대표목사), 수원원천침례교회(방수현 대표목사, 김요셉목사), 새누리교회(안집섭 대표목사) 등 공동체성을 띠고 있는 교회들은 각 교회에 담임목회자를 두고, 그 공동체를 대표하는 목사를 세워 ‘대표목사’라고 호칭합니다.

이는 멀티교회가 한 비전과 사명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 어떠한 일들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글로리 채플은 처음 개척되어 자립할 때까지 열심히 도울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한 젊은 남녀가 만나서 결혼해서 독립하지만 부모님은 자녀가 잘사는지, 어떻게 먹고 지내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글로리채플은 그런 과정입니다. 저 또한 리더십의 이양 과정이 무조건 한 교회를 개척하고 맡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리채플을 제가 돕는 것은 대전꿈의교회를 설립했을 때도 동일했습니다. 정임엘 목사가 잘 세워져 담임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되고 모든 성도들이 인정했을 때 저는 과감하게 대전을 독립시켰습니다.

그 이후 저는 2017년도 수요예배 특별 강사로 한번 간 것뿐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대전꿈의교회는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Q. 계속 교회를 세워 가시려면 돈도 많이 소요될 텐데 꿈의 교회는 부자들이 많은가요? 어떤 인터넷 기자는 안 목사님이 부동산 투기해서 교회를 세웠다고 비난하는 분도 있던데 교회를 세워가는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A. 공주 꿈의교회를 건축할 때 예상보다 많은 지출에 너무 힘들어 건축 현장에서 밤마다 몸부림치며 눈물로 기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십시일반 헌금은 했으나, 대출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공주 꿈의 교회 대출은 거의 대부분을 상환했습니다.

대전꿈의교회는 공주 성도들의 헌신된 헌금으로 상가 건물을 임대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매로 교회가 넘어가게 되는 상황이 되어 무리를 했지만 대출받아 현재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상가를 매입했습니다. 대전 꿈의교회가 안정적으로 성장해가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상환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세종꿈의교회는 공주와 대전 성도들이 헌금과 공주 꿈의교회를 담보해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건축비는 수협은행에서 PF방식으로 대출해줘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교회가 부흥되어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글로리 채플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다면 거의 대부분의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로님들을 비롯한 리더들이 빚진 자의 심정으로 글로리 채플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정해서 아직은 세종에 빚이 좀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수년 안에 다 상환할 계획입니다.

사실 세 번의 교회를 건축(설립) 하면서 저는 성도들에게 건축헌금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건축을 하면서도 작은 교회를 돕거나, 선교 하는 일을 거의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인 저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런 헌신 때문에 하나님이 더 크게 축복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세 번의 교회 건축과 멀티교회로의 전환을 통해 제 생각도 전환하였습니다. 비전 선교회를 설립해 각 교회의 주일 헌금 10%를 매주 선교헌금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선교헌금은 세 교회에서 파송된 위원들이 회의를 통해 교회를 개척하거나, 다양한 선교 사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로리 채플은 비전 선교회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한 첫 번째 열매입니다. 앞으로는 지역을 넘어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목사님들을 후원회 필요한 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믿지 않는 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무모한 일이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꿈을 꾸고 헌신한 성도들의 기도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절박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목회합니다.

Q. 안 목사님은 세운 교회들로부터 각각 다 따로 사례비를 받고 계신가요?

A. 전에 한 집사님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그때 자녀가 똑같은 질문을 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저의 사례는 공주에서만 지급했습니다. 대전과 세종에서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종에서만 받고 있고, 공주는 은퇴 후 연금만 준비해주고 있습니다. 대전에서는 설립에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례 등 어떠한 금전적인 것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제가 받은 사례비도 많은 부분을 다시 헌금하거나 다양한 나눔 활동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역을 재정위원회에 다 보고합니다. 목사가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목회가 됩니다. 교회에서는 제가 은퇴한 후에도 제 명의의 사택도 받지 않기로 선언했습니다. 사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목회자가 돈에 대해 정직하지 못하다면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헌신하고 섬겨야 교회는 성장합니다.

Q. 정말 사심 없이 교회를 세워가는 안 목사님의 열정이 놀랍습니다. 안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크리스천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 교회의 사명은 무엇이며, 목회 철학과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A. 꿈의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아도 목회할 각오가 되어 있냐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자신의 생계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목회자의 생계수단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큰 교회 목사이기에 이렇게 말한다고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도 큰 아이 우유 살 돈이 없어서 눈물 흘려 봤고, 유학시절 돈을 벌기 위해 페인트칠 알바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힘겨운 생활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목회철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처가 사명이 된 목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70세 정년을 포기하고 62세에 은퇴한 아버님의 정신을 본받아 교회를 위한 거룩한 소모품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정말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라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말한 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말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사역자들이 이 부분 때문에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좀 설렁설렁 살아야 부교역자들이 편한데 …. 그러나 저는 제 마음이 흔들릴 때 신학교 기숙사 현관에 있던 말을 늘 기억합니다. “생활 즉 목회”

그래서 제가 부사역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꿈의교회의 프로그램을 배우려 하지 말고, 담임목사의 생각과 철학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소위 말하는 성공된 목회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갔고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했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사역을 하지만 저는 해야 할 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꿈의 교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안 목사님이 그런 목회 철학을 갖고 목회할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3대가 목회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 목사님은 성장 배경과 환경은 어떠했는지요. 그리고 공주 꿈의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인 원로목사님으로부터 직을 이어받다보니 일부에서는 세습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세상 사람들 시각에서 보면 ‘세습’입니다. 그러나 꿈의교회 성도 입장에서는 ‘계승’입니다. 험난한 교회에 부임해 나름대로 교회를 성장시킨 원로목사님은 교회 성장이 답보 상태에 빠지자 62세에 조기 은퇴를 결심하셨습니다. 충분히 계속해서 목회를 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교회를 위한 결단을 하신 것입니다. 원로목사님 스스로가 목회자는 교회를 위한 거룩한 소모품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숨 걸고 목회하시는데 변하지 않는 성도들, 목숨 걸고 사랑했는데 손가락질하며 배신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목회에 대해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도들을 사랑하며 섬기고 눈물로 기도하는 원로목사님을 보면서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는 목회자의 삶의 모습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님들의 간절한 권고와 원로목사님의 간곡한 기도로 꿈의 교회 후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부임 초기에 세습에 대한 고민으로 공주에서의 목회를 그만두고 다른 교회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성도님께서 “세습은 능력 없는 목회자가 아버지의 힘을 빌려 목회하는 것이지만, 능력 있는 목회자가 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장시키는 것은 계승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거룩한 전통을 계승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 또한 무분별한 세습은 반대합니다. 그러나 계승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 부임당시 전통교회를 중소도시의 교회의 모델이 되는 건강한 교회로 부흥시켰습니다. 대전꿈의교회를 개척해 13년간 함께한 부목사에게 후임으로 물려주었습니다. 또한 세종꿈의교회를 개척해 세종시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글로리채플을 개척해서 15년간 함께한 부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우고 잘 독립할 수 있도록 힘써 돕고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목회한 것을 세습이라고 반대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세습을 장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웃음)

사실 세습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치열하게 목회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공주 꿈의교회를 사임하거나, 은퇴하는 순간 모든 논란을 끝나게 될 것입니다. 제발 공주에서 저를 빨리 은퇴하도록 성도들이 허락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Q. 지난해가 꿈의 교회 창립 120주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 목사님이 꿈의 교회 부임해 사역한 지난 20년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주십시오.

A. 20년의 목회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만 “치열함”이었습니다.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특기도 목회고 취미도 목회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저의 목회 인생 20년은 간단히 소개하자만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통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 부임한 꿈의교회는 121년 된 전통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예수 믿는다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양육훈련을 시작하였으며,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섬길 수 있는 사역 팀을 만들어 섬기도록 했습니다. 121년 동안 축적된 교회의 변화는 쉽지 않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걸음씩 변화를 시도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성도들의 삶이 변화를 가져왔으며 조금씩 교회는 변화되어 갔습니다.

두 번째 시기는 건강한 교회를 넘어 좋은 교회로의 성장이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깨달은 성도들을 교회에만 묶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나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제자의 삶을 살라고 했기에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꿈의 교회는 지역사회의 좋은 교회 이웃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공주시내 도심 청소, 제민천 청소, 드림하우스 프로젝트, 고등학교 장학금 전달, 소외계층 돕기, 김장김치 배달사업, 행복한 밥상, 자영업자 돕기 세미나 등 다양한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좋은 이웃교회로 거듭났습니다.

세 번째 시기는 좋은 교회를 넘어 위대한 교회로의 도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의 역할에서 교회를 섬기는 교회로 한 단계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꿈의교회가 지역을 넘어 대전과 세종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작은 교회와 농어촌 교회를 섬기는 사역에 더욱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농어촌 목회자 부부를 초청해 쉼을 제공하였고, 화재나 자연재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목회자, 수술비가 부족한 목회자등을 돕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나갔습니다. 특히 침례교단이 있기까지 노력한 원로목사님들을 정기적으로 돕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섬기는 사역은 한 지역교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난 10년 동안 침례신학대학교에 약 2억 6천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는 등 다음세대 지도자를 세우는 사역을 위해서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홍콩 신학교를 후원하며 글로벌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전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시기는 위대한 교회에서 새로운 교회로의 도약입니다.

꿈의교회 공동체는 지역과 교회를 섬기는 교회를 넘어 나라와 민족 세계 열방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 준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양한 선교활동을 통해서 몽골에 유치원을 세우고, 홍콩 신학교를 후원하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교회의 모판이 된 농어촌교회를 섬기는 사역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엘피스 장학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목회자 자녀들에게 무상으로 학비를 대출해주는 등 목회자에게 희망이 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월드비전과 함께하고 있는 우물파기 사업과 학교 세우기 사업은 이미 잠비아 카도바 지역에 꿈의 중학교가 설립됨으로 2000여명의 리더를 세우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꿈의교회 성도들과 함께 한 지역을 변화시키고 책임지는 교회가 되자는 비전아래 지금도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교회를 개척함을 통해서 복음의 건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Q. 그동안 꿈의 교회는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함께 하는 좋은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를 위한 봉사로는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앞으로 꿈의 교회 미래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사실 지금까지 꿈의교회는 다양한 이웃돕기 사역들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 때문에 외부에 많은 공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외부에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사역들을 진행했는데,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교회가 지역사회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꿈의교회는 매년 정기적으로 명절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서 소외계층 학생 지원 등으로 수 천 만원을 지원하였고, 박대성 장학금을 통해서는 매년 500만원씩 10년 동안 불우 고등학생들을 후원했습니다. 김정민 장로를 중심으로 해외 긴급구호 활동을 진행하였고, 농어촌 선교회를 후원하는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은퇴한 목회자들을 위한 연금 기금 5억원을 후원하여 은퇴한 목사님들을 지원하는 사역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역사회와 교회들을 섬기는 사역들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작은 교회를 섬기려는 마음을 가진 리더 부부를 기쁨으로 파송하고 축하해드렸습니다.

   
▲ 안희묵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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