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령왕 동상

웅진백제에서 공주시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공주를 대표하는 왕은 무령왕이다.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斯摩, 斯麻)’ 또는 ‘융(隆)’으로, 1971년 공주 송산리 왕릉에서 발견된 지석(誌石)에 따르면 462년에 출생, 키는 8척이고 용모가 수려했으며, 성품은 인자하고 관대하였다고 한다.

무령왕은 506년 기근 때문에 백성들이 굶게 되자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했고, 510년 영을 내려서 제방을 구축했으며, 놀고먹는 사람들을 구제해 고향으로 돌려보내 농사를 짓게 했다고 한다.

무령왕은 또한 509년 임나(任那) 지역으로 도망을 가 3∼4세대이상 호적이 끊긴 자를 찾아내어 호적에 올리도록 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해 민심을 크게 얻었다고 기록돼 있다.

무령왕은 523년 5월 7일 62세를 일기로 승하, 2년 후인 525년(성왕 3) 8월 12일 공주 송산리에 안장됐으며, 시호는 무령(武寧)이다.”

고대 삼국가운데 유일하게 왕릉의 이름이 밝혀진 왕. 용모, 마음, 실력을 갖춘 왕. 이처럼 훌륭한 무령왕을 공주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기록에 있는 내용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데, 그 훌륭한 임금을 왜 무령왕릉에만 모셔두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제 무령왕을 왕릉에서 모셔와 공주시 곳곳에서 시민, 관광객들과 만나게 해야 한다. 민생을 살피기 위해 행차하는 무령왕을 공산성에서, 박물관에서, 제민천에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무령왕이 나타나 관광객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작은 선물이라도 증정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관심과 애정을 듬뿍 보여준다면, 이는 또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 SNS를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

관에서 이런 일에 앞장서 준다면 좋겠지만, 아이디어의 부족, 계획, 예산 등의 이유로 미루거나 못한다면, 민이 먼저 앞장을 서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미루다보면 서로의 탓만 하게 돼 불신의 씨앗만 키우게 될 우려가 있을뿐더러 공염불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 이제 그 일은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이 아니라, '지금'해야 한다.

차가운 ‘머리’가 아닌,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입’이 아닌, ‘손’과 ‘발’이 되어 공주시의 발전, 관광 진흥을 견인할 뜻있는 공주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