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보자

공주는 지금의 공주시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한 도시였다. 정치, 경제,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

안타깝게도 위정자들의 무능력, 당리당략, 사리사욕, 잘못된 판단지금은 다소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 불행한 역사는 몇몇 위정자들이 만들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이 받는다.

역사는 이어달리기와 같다. 앞의 주자가 뒤쳐져 들어왔지만, 후의 주자가 잘 뛰면 앞설 수 있다. 공주는 지금부터라도 이를 악물고 앞선 주자들을 제치고 나가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아직 수부도시 시민으로서의 자긍심과 인프라, 인물 등의 저력이 남아 있다.

일제치하 공주에서의 만세운동은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신상면 유구리, 공주읍내, 정안면 석송리, 장기면 대산리, 장기면 대교리, 우성면 동천리, 주외면 용당리(지금의 웅진동), 목동면 이인리, 계룡면 경천리, 반포면 상신리 등 10개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때 총 86명이 검거되고, 1명이 사망, 13명이 부상했다.

 매년 4월 1일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서는 3.1만세운동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석송리 만세광장은 공주장날이었던 1919년 4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이날 유림 이기한선생을 선두로 농기구 등으로 무장한 농민들은 정안면 광정리 일본 주재소를 부수고, 일본인 집에 불을 지르며 일본헌병과 격돌했다. 이때 이병림 선생 등은 현장에서 순국하고 25명이 체포됐다.

 그로부터 63년이 지난 1982년 3월 1일 드디어 이곳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 33-2번지에 공주3.1독립만세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이곳 만세 광장과 만세 둑 일원에서는 매년 4월 1일을 기해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 2010년 4월 1일 오전 정안 석송만세광장에서 열린 석송3.1만세운동 제91주년 기념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공주에서의 만세운동을 지원한 곳은 2011년 6월 20일 등록문화재 제472호로 지정된 공주제일교회였다.

이 교회는 수원이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첫 감리교회로, 1892년 미감리회는 서울 이남 지역을 수원·공주구역으로 정해 공주를 충청도 선교 거점으로 확보하고자 했고, 1893년에는 전도인 유치겸을 두 번이나 공주에 보냈다.

1896년에 수원·공주구역 관리자로 임명받은 스크랜톤(W. B. Scranton) 선교사가 공주지역의 선교여행을 시작하였고, 1898년 가을에 수원·공주구역 관리자로 임명받았던 스웨러(W. C. Swearer) 선교사가 1899년 미감리회 연회록 임명기에 공주지역의 선교 내용을 보고하였다.

스웨러 선교사는 스테드맨 선교사의 철수 이후 공주에서 사역할 조사를 구하여 1902년 가을 김동현 전도사를 파송하여 관찰부(현 반죽동) 앞에 집을 사서 주재하며 전도 활동을 펼치도록 하여 공주제일교회를 개척토록 했다.

또한 1903년 원산에서 활동하고 있던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과 이용주 전도사가 와서 하리동(현 옥룡동)에 초가 2동을 구입하고 전도활동을 펼쳤는데, 초가 하나는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하나는 진료소 및 교육시설로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선교사역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교인으로는 김상문, 유월나, 베리백가, 백정운 부부 등이었다.

공주의 선교사업은 1904년 샤프 선교사 부부가 공주에 오면서 더욱 활성화 되었다. 1904년 남편 샤프(Robert Arther Sharp)는 윤성렬을 교사로 하여 명선학당(영명남학교)를 설립했고, 그의 아내 샤프(史愛利施, Mrs. Alice H. Sharp)는 허조셉 전도부인을 교사로 하여 두 명의 학생을 가지고 명선여학당(영명여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선교사 샤프가 순회전도여행을 하던 중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1906년 선교사 우리암(William Earl Cranton Williams)이 공주로 와서 영명학교(永明學校, 영명고등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했다.

샤프 여사는 유관순 열사를 수양딸로 삼아 영명학교에 입학시켰고 또 3·1만세운동도 지원했다. 공주제일교회는 충청지역 3.1만세운동의 진원지였다.

이러한 진원지에서 3.1만세운동을 소재로 한 상황극이 펼쳐졌다. 지난 5월 19일부터 20일 까지 진행된 문화재 야행에서 뜨거운 피를 물려받은 그 후손들이 ‘유관순과 3.1만세운동’을 소재로 한 상황극을 펼쳤다. 이 상황극은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기획했다.

당시 배우들은 땅바닥에 쓰러져 나라의 독립을 외치며 절규했고, 관객들은 눈물을 흘려가며 함께 울분을 삼켰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우리고장의 처절한 항쟁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 바로 공주시 원도심에 있다.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이러한 재현행사를 제민천에서도 하게 될 경우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어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지수걸(1999), 「한국의 근대와 공주사람들」, 공주문화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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