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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과 성왕의 부활을 꿈꾸며
김미경의 공주 스토리텔링(126)
2017년 07월 23일 (일) 20:26:08 김미경 haeya08@daum.net
   
▲ 김미경(스토리텔링 작가/원광대대학원 문화콘텐츠전공 교수)

2017년 9월 28일(목)부터 10월 5일(목)까지는 제63회 “백제문화제”가 공주와 부여 일대에서 개최된다.

나는 지난 6월 20일, “백제문화제”의 “세계화를 위한 아이디어 제안 공모”의 평가위원으로 11팀이나 심사하느라 오전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장 8시간 동안이나 “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가 자리한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백제문화단지내)”에 머물렀다.

날씨가 너무 더워 집에 돌아오니 땀띠가 났다. 사실, 하루 종일 브리핑을 듣느라 고생 좀 했다. 그러나 무척 보람된 하루였다.

찬란한 “백제문화”가 아직도 이곳 공주와 부여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새삼 깨달게 된 하루였다.

그러면서 내가 작년 “백제문화제” 때 시나리오를 쓴 “웅진성 퍼레이드”의 “웅진동” 프로그램인 “강력한 국가, 백제의 힘 - 부활하는 무령왕의 기상!“이라는 공연이 생각났다.

자꾸 “백제문화제”의 공연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미마지”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그리고 역대 “백제문화제”에서 가장 많이 공연으로 선보인 작품의 주인공이 “미마지”이다.

이는 612년 그러니까 백제 무왕 13년에 “미마지”라는 예능인이 일본에 “백제 기악무”를 전달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 『일본서기』의 다른 기록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백제의 훌륭한 예능인들이 이미 백제 성왕 때도 일본으로 파견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 “백제문화제”의 공연을 백제 무왕 때의 인물인 “미마지”에만 집중하지 말고 백제 무령왕과 백제 성왕을 등장시키는 진정한 “백제궁중기악” 공연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내가 2016년 10월 1일, 기획한 공연처럼 “백제 무령왕과 성왕” 부자(父子)가 주인공이 되는 “백제궁중기악” 스토리텔링이 나와 주어야 한다.

이는 “공주” 중심의 “백제궁중기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즉 백제시대 지금의 공주를 중심으로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웅진시대 최고의 인물인 “무령왕과 성왕”을 “스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령왕과 성왕” 부자의 “스타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공주”가 중심이 되었던 진정한 웅진시대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그래야만 진정으로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과 “공산성” 같은 공주의 자랑스러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도 그 존재 의식이 확연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나는 매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공주시 창조도시과 “세계유산팀”에서 발주한 “백제궁중기악 연원 및 활용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2016년 10월 1일, 공주 시내에서 열렸던“웅진성 퍼레이드”에서 웅진동 프로그램인“강력한 국가,백제의 힘 - 부활하는 무령왕의 기상!”공연 모습

<백제궁중기악 연원 및 활용방안 연구용역: 책임연구자 김미경>

“백제궁중기악”에 대해 왜, 본고가 “미마지” 보다 더 소급해야 한다고 하는지 권오성의 다음의 분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제음악에 관한 일본의 가장 오래된 문헌에 의하면 백제는 성왕(聖王) 때인 554년(일본 흠명천황 15)에 보냈다. 그와 함께 악인(樂人) 시덕 삼근(施德三斤)·계덕 기마차(季德己麻次)·계덕 진노(進奴)·대덕 진타(對德進陀)를 일본에 보내었다. 그리고 그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중에서 ‘代前番’, ‘代’, ‘代之’란 말은 모두 554년(흠명천황 15)에 백제의 성왕이 처음으로 음악인들을 일본에 보낸 것이 아니라 그 전번에 보낸 음악인들과 교대시켜 보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교대시켜준 이유가 교대기한이 끝났기 때문이란 것을 그 다음의 기록중 당상대년월(當相代年月)이란 글로 알 수 있다. 이와같이 백제의 음악인들이 이미 554년 이전부터 교대로 일본에 건너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백제의 음악인들이 악생(樂生)이 아니고 악사(樂師)였다는 점이 분명하다. 그 악사 4인이 횡적·군후·막목 및 춤을 각각 가르쳤을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백제악사들이 가르쳤던 음악은 춤을 수반한 까닭에 고취와 같은 의식음악이 아니라 궁중에서 연행된 잔치 음악(宴饗音樂)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악사들이 일본의 악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는지, 혹은 일본에 있었던 백제의 악공들에게 가르쳤던 것인지는 미상이다. 어쨌든 일본에 전해진 삼한악(三韓樂) 중에서 백제의 악무가 554년 이전부터 가장 먼저 일본에 전해졌고, 백제 본국에서 정기적으로 교대하여 일본에 파견된 백제악사에 의하여 6세기에는 일본에 있던 백제인 학생에게 전습되었고, 백제적(百濟笛-橫笛)·백제금(百濟琴-군후)·막목(莫目)과 같은 중국계의 악기가 아닌 한국의 악기를 가르쳤으며, 그 음악도 백제본국(百濟本國) 여러 지방의 풍속무(風俗舞)이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 전해진 “백제궁중기악”에 대한 기록은 백제 “무왕” 때인 612년 보다 60여년이나 더 앞선 백제 “성왕” 때인 554년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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