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박물관을 나와 한국인이 경영한다는 호텔과 음식점이 있는 곳에 가서 자작나무가 길러낸다는 차가 버섯을 잠시 구경한 후 곧 공항으로 이동하여 오랜 기다림 끝에 출국 수속을 하고 7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우리 시각으로는 밤 한 시인데 내일 아침 10시 좀 지나 도착한다고 한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책도 좀 읽고, 영화도 보고,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보고, 승무원이 날라다 주는 밥도 먹고, 화장실에도 한 번 다녀오고,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낸 끝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금세 입국 수속을 마치고 가방을 찾아 밖으로 나와 11시쯤 버스에 타니 집에 다 온 것 같다. 달게 잠을 자고 있는 동안 공주에 도착하여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여행을 출발했던 둔치로 가서 해산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 밖에서 일하고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듯,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듯, 모든 여행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우리 인생 또한 그럴지니 어느 시인이 말했듯 잠깐의 소풍,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짧은 여행이 우리 삶이리라.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행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누가 돈을 주며 강제로 가라고 하면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4박 6일의 이번 러시아 문학 기행은 내 여행 역사에서 특이한 여행으로 남을 것 같다. 같이 다녀온 사람도 그렇거니와 보고 듣고 온 것도 다른 여행 때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누군가는 이 도시를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고 했다. 러시아 사람들의 유럽에 대한 일방적 애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을 닮은 이 도시를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다. 또한 그들은 외관만 유럽을 닮게 건설한 것이 아니라 말도, 생활도 유럽 사람을 닮으려 애썼다.

이렇게 유럽이 되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을 구현해 낸 게 바로 이 도시고, 여기에 그들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유럽을 따라잡으려는 건축과 예술과 학문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그들은 이 창으로 유럽을 바라보고 동시에 유럽을 수용했다.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닐 현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푸시킨은 이 도시를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라고 했다. 도시 건설에 동원된 서민 노동자들의 죽음과 희생, 그리고 집권층의 수탈과 횡포를 비꼬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도시를 꿈의 실현체로 자부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대가 없는 희생의 산물일 뿐이었다. 이런 양면성을 가진 도시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이 도시에는 고골, 푸시킨,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으로 도시의 개조나 건물의 증개축이 금지되어 백 수십 년 전의 도시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덕분이다.

그들이 작품 속에 묘사했던 도로, 다리, 건물 등이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마치 그 시대로 되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이 도시를 빛나고 향기롭게 하는 아름다운 왕궁이나 화려한 대성당,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는 명화, 최고의 미관을 선사하는 운하와 강, 백야의 석양, 황홀한 야경 등도 빼 놓지 말고 보아야 하겠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찾기 어려운 러시아의 뛰어난 작가들이 남긴 이 도시의 문학의 자취를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맛있는 과일의 예쁜 겉만 보고 정작 속살은 먹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모스크바, 긴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자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 러시아의 심장이면서 영혼이 깃들어 있는 도시다.

이 도시에는 러시아의 역사를 집약해 보여주는 박물관, 역대 황제들의 궁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 민중 혁명의 성스러운 현장, 도심을 흐르는 아름다운 강, 넉넉하고 울창한 자작나무 숲 등이 있어 도시를 더욱 풍성하고 윤택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이 도시에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푸시킨, 고리키 등 수많은 문학가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그들을 기념하는 박물관, 기념관, 동상, 거리, 극장, 작품 관련 유적들이 이 도시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특히 이 도시에는 고리키문학대학이 있어 많은 문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데, 작가의 이름을 딴 긴 역사의 대학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 사람들이 문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리키가 문학에 재능 있는 노동자, 농민을 교육시킬 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1933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그 동안 수많은 문인과 창작 교육 지도자를 배출해 냈다.

러시아는 압도적 1순위로 면적이 넓어 2, 3 순위인 캐나다와 미국을 합한 것보다 약간 좁은 크기다. 그런데도 인구는 1억 5천만 정도에 불과하고, 석유와 가스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혹한의 날씨만 제외하면 자연의 혜택을 크게 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넓고 큰 나라를 불과 며칠 돌아보고, 그것도 달랑 두 도시만 돌아보고 이 나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어떻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무모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산 자기 조국이나 지역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래 거주하고 바라본다고 해서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30여 년 전만 해도 가기 어려웠던 땅 러시아, 그곳을 지금은 비자 없이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며칠 동안 두 도시의 러시아 문학 흔적과 자취를 찾아 돌아보았다. 문학을 공부하며 한때 심취했던 러시아 문학의 현장은 아직도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좀 더 계획을 면밀히 세우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차분히 돌아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이 문학 기행은 러시아 문학을 다시 생각하고 되돌아보며 현재의 내 문학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 문학은 무겁고 깊다. 요즘 사람들은 문학도 가볍고 얄팍한 것만 좋아한다. 골치 아프고 난해한 작품은 아무리 권해도 잘 읽지 않는다.

또한 시대가 핫미디어 전성시대라 문학과 같은 쿨 미디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무거운 문학, 깊은 문학은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인류를 도덕적으로 성장시키고, 또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이런 문학은 사라질 수도 없고, 사라져서도 안 된다. 난해하고 무겁고 깊은 러시아 문학이 그 나라 사람뿐 이니라 인류에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시아 문학 기행을 통해 새삼 다시 확인한 이런 내용을 강조하며 어지러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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