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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궁전의 화려함, 백조의 호수에 빠진 넋
조동길 교수의 러시아 여행기-3
2017년 07월 10일 (월) 09:07:00 조동길 dkcho@kongju.ac.kr

여행 일정이야 당연히 여행사 계획대로 따라야 하겠지만, 아무리 문학 기행 상품 여행이라고 해도 먼 러시아까지 와서 문학 자취만 찾아다니는 것은 너무 무미건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사에서도 문학 관련 유적뿐 아니라 몇몇 유명 관광지를 스케줄에 넣어 놓았다.

아름다운 건축이나 미술, 조각, 음악을 비롯해서 뛰어난 경관 등도 결국은 문학과 한 울타리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으니 그런 것들을 탐방하는 일 또한 문학 기행과 전혀 무관한 일은 아닐 터, 오늘은 그 일환으로 이 도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의 상징 여름 궁전과 세계 3대 성당의 하나로 알려진 미려(美麗)한 성 이삭 성당을 찾기로 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났는데 우리 시간으로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다.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난 뒤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일행 중 한 분이 카톡으로 연락을 해서 호텔 광장으로 나가 보니 땅이 넓은 나라답게 광활한 면적의 광장이 펼쳐져 있고, 누군가의 동상이 높다랗게 서 있었다. 러시아 글자를 모르니 그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여름인데도 날씨가 싸늘하여 바람결은 꽤 춥게 느껴졌다.

   
 

맑고 찬 공기로 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와 일행을 기다려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세계 어느 나라 호텔이나 조식 메뉴는 거의 비슷하다. 죽 한 공기와 삶은 계란 한 알, 빵 한 개, 과일 몇 조각으로 아침 한 끼를 때웠다.

다시 방으로 올라와 간편한 차림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로비로 내려와 대기했다가 9시에 호텔을 출발했다.

가이드는 별 차도가 없는지 여전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며 힘이 없는 표정이다. 일행 중 여성분들이 나서서 약도 챙겨 주고, 따뜻한 물도 따라 주고, 마치 집 떠난 자식 생각하듯 챙겨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버스는 바다 위로 신설된 외곽 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나갔다. 내년 러시아 월드컵 축구 대회를 앞두고 도심 교통난을 덜기 위해 유료 도로로 건설된 것이라 한다.

실제 우리가 이 도시를 방문하는 동안 월드컵 예행연습 성격의 컨페더레이션 컵 경기가 열리고 있어서 시내 도로가 엄청난 체증을 빚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대부분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어 도로 확장이나 신설 공사는 거의 하기 어렵다고 한다.

몸이 아파 애처로워 보이는 가이드는 의무감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몇 가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러시아 제2의 도시로 공식 인구는 5백만이나 실제로는 8백만 정도 될 것이고,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렸었고, 러시아 관광 성수기는 5월부터 9월이며 나머지 기간은 혹한으로 가이드들도 일이 없어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러시아 관광객의 약 90%가 집중되고, 또 그 가운데 약 90%는 이 도시를 찾는다고 하니 이 도시의 문화적 가치와 수준을 짐작해 볼만하다.

이 나라의 국민소득은 1만 불 정도이지만 국가에서 난방비나 식품비의 상당 부분(70내지 80%)을 보조해 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만 5천 불을 넘을 것이고, 백야 축제는 6월 12일부터 열리며, 네바 강에 있는 12개의 개폐식 다리는 대형 배가 통과하기 위해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열린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사이 우리 버스는 30여 킬로를 달려 여름 궁전에 도착했다.

   
 

여름 궁전은 표트르 대제가 건립한 것으로 표트르의 궁전, 혹은 페테르고프, 페트로도브레츠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표트르 대제가 1712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725년까지 네덜란드 바로크 양식으로 건립했다.

   
 

전체 면적은 100 헥타르가 넘으며 대궁전과 소궁전, 위, 아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름다운 조각상과 가로수 길, 크고 작은 분수 140여 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궁전을 찾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궁전은 핀란드 만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다까지 운하로 연결하여 배로 들어올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이 궁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래 정원에 있는 대분수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분수를 만들자면 자연히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한 수압 차이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분수는 ‘삼손의 분수’라고도 불리는데, 분수의 모양이 성경에 나오는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찢는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입에서 물줄기가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따르면 삼손은 러시아를, 사자는 스웨덴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이 분수는 오전 11시에 웅장한 음악과 함께 물을 내뿜기 시작하는데, 그 높이가 16미터에 이른다. 물론 겨울에는 분수 가동이 중단된다.

이 분수 말고도 그 주변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분수가 가동되어 물줄기를 하늘로 내뿜고 있는 조화로운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우리 일행은 분수에서 바다까지 연결된 운하를 따라 걸어갔다가 되돌아왔는데, 엄청난 세기의 바람이 불어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도로 주변에는 울창한 숲과 거목들이 바람에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인종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물결처럼 흘러 다녔다. 그 안쪽에 피어 있는 라일락 꽃 향기는 거친 바람을 거슬러 코를 자극했다.

   
 

다시 분수 쪽으로 와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분수 주변에 서 있는 희랍 신화 속의 황금색이 입혀진 멋진 포즈의 조각상들을 감상했다. 파랗게 돋아난 예쁜 잔디와 잘 어울리는 파스텔 톤의 대궁전 건물을 바라보니 가히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라 할만하다.

   
 

그러고 보니 이 궁전을 포함하여 이 도시의 건물들은 자극적이지 않은 외부 색깔로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특징이 있었다.

궁전 내부를 들어가려면 별도로 입장권을 사야 한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들더라도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다른 일행과 따로 행동할 수 없으니 대세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넓은 궁전을 극히 일부만 돌아보고 그 아름다움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으나 다음 일정을 위해 안타까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점심은 니콜라이 궁전이란 곳에서 먹었다. 니콜라이라는 귀족이 살던 건물을 세를 얻어 식당으로 개조하여 영업하는 곳인데, 옛 궁전답게 입구부터 정원이 화려했고, 안에 들어가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붉은 색 카펫이 깔려 있어 귀빈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가니 높다란 천정에는 화려한 전등이 매달려 있고, 벽에는 대형 액자 그림이 걸려 있었으며, 견고한 원형 식탁에 의자 또한 정교한 조각이 되어 있어 값이 많이 나가는 골동품 같았다.

손님을 위해 예복을 차려입은 음악가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고 있었는데, 곡목은 알 수 없었으나 그윽한 분위기를 돋우는 정취가 느껴졌다.

전채(前菜)와 수프, 그리고 구운 고기와 디저트로 구성된 메뉴를 코스 별로 서비스해 주어 옛 귀족들처럼 우아하게 점심을 먹었다.

   
 

나중에 들으니 한 사람 음식 값이 우리 돈으로 7-8만 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돈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성 이삭 성당을 찾았다. 먼저 광장에 내려 니콜라이 1세 청동 기마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도로를 건너 성당으로 들어갔다.

이 성당은 1818년 공사를 시작하여 40년의 공사 끝에 1858년에 완공되었다. 이삭이라는 성당 이름은 구약 성서의 이삭이 아니고 러시아 정교회 성인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이삭의 날이 5월 30일인데, 마침 표트르 대제의 생일도 같은 날이어서 결국은 이 황제를 위한 성당으로 건립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 성당을 일명 ‘표트르 대제 성당’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당은 늪지대 위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지반을 튼튼하게 하려고 자작나무 말뚝을 2만 4천개나 박았다고 한다.

또한 무게 백 톤의 견고한 70여 개의 화강암 기둥들, 황금 100킬로로 장식했다는 거대한 돔, 백 미터 높이에 이르는 지붕 등 젊은 프랑스 건축가 몽뻬란트의 희대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건물이 완공되고 나서 바로 죽었다고 하니 아마 성당 건축에 온 에너지를 소모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꺼번에 1만 4천 명이 동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거대한 이 성당은 겨울 궁전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말라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랜드 마크 역할의 건축물이기도 했다.

성당 내부에는 공사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형물이 있는데, 이를 통해 50만 명을 동원한 지난(至難)한 공사 과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여러 유명 화가들을 불러 모아 벽에 백 여 점의 성화(聖畫)를 그렸고, 또 성경과 성인을 그린 캔버스 작품들도 수십 점이 있어 이들의 지극한 신앙심과 더불어 예술적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성당 내 일부 시설은 사회주의 시절 폐기되었던 종교 용도로 서서히 부활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성당 안에는 기도를 올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신자들을 볼 수 있었다.

따로 입장료를 내면 전망대에 올라가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일정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든 사람이 많아 높은 곳을 걸어 올라가는 게 힘들어 포기하기로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저녁에 민속 공연과 발레 공연 중 하나를 선택하는 옵션에 대해 설왕설래 끝에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일행 열여섯 분 중 이미 그 공연을 보신 본 두 분을 빼고 나머지 열 네 명이 동의했다. 관람료는 170 유로, 미화로는 190달러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20 만 원이 넘는 금액이지만 A급 출연진이 공연하는 것이라니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찌 그런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눈이라고 호강 좀 하자는 생각에서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다.

그 다음 원래 계획으로는 ‘피의 성당’을 보기로 되어 있었으나 축구 경기와 곧 있을 졸업식 축제 준비로 도로 곳곳을 통제하여 버스가 움직이지를 못하니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곳의 졸업식은 초중고를 합해 한 번만 열리는데, 우등생은 붉은색의 졸업장을 받고 크렘린으로 초청을 받는 영예를 누린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생을 위해 거리 곳곳에서 음악 공연을 비롯해서 여러 행사로 축하를 해 주는데, 특히 화려한 폭죽놀이가 유명하다고 한다. 결국 막힌 도로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 후 계획을 변경하여 까잔 성당을 관람하기로 했다.

까잔 성당은 이 도시 4대 성당의 하나로 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장군과 군인들을 위해 건립된 성당이다. ‘까잔’이란 말은 성모 마리아 발현 기적과 연관이 있는 말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모방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 외관은 마치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 비슷하게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회색 기둥으로 되어 있다.

   
 

그 규모가 거대하고 웅장하여 카메라 한 화면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출정하여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전쟁에 참여했다가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는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곳곳에 관련자들의 그림과 장군의 묘소, 기도할 수 있는 시설, 약간의 성금을 내고 초를 사서 불을 밝힐 수 있는 곳, 그런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성당 바로 옆으로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어 그 위로 유유히 유람선이 오가고 있었고, 성당 앞 정원에는 보랏빛 라일락이 짙은 향기를 흩날리고 있었다.

강 위로 놓인 다리 위로는 자동차와 사람이 가득히 지나고 있었고, 그 너머 멀리 지붕이 유난히 반짝이는 아름다운 건물이 보였는데, 그게 바로 가지 못한 ‘피의 성당’이라고 했다.

일정에 있는 대로 기념품 가게에 들러 일행 중에 일부는 몇 가지 물건을 샀고, 나는 아무 것도 사 오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따라 구경도 하지 않았다.

한국 음식을 한다는 식당에 들러 좀 이른 저녁을 먹었는데, 나온 음식이 한국식도 아니고 현지 식도 아닌 어정쩡한 맛이어서 그다지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고려인의 후예들이 하는 식당이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한식을 하는 식당은 값이 훨씬 더 나간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옷을 갈아입고 발레 공연을 보러 나섰다. 이런 공연을 관람할 때는 대개 정장을 하고 가는 게 예의라는데, 여행객인 나는 당연히 정장 준비가 되지 않아 운동화를 구두로 갈아 신고, 재킷을 걸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8시가 공연 시작인데 일행 중에 착각하신 분이 있어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급히 서둘렀어도 8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입장을 할 수 있었다.

‘백조의 호수’는 1875년 베기차프가 쓴 대본에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전 4막의 작품으로 초연은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으나 이후 여러 차례의 공연을 통해 점차 완성도가 높아져 지금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러시아에는 저 유명한 볼쇼이를 비롯한 수많은 발레 공연단이 있어 이 작품을 공연하고 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도 50개가 넘는 극장이 있어 급이 다른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고 한다. 당연히 수준이 높은 공연단의 입장료는 비싸고, 또 오래 전에 예매를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관람한 발레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5층으로 이루어진 수직의 객석과 홀의 객석을 포함하여 수백의 객석을 갖춘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우리는 맨 앞줄 좌석을 배정받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바로 뒷자리에서 작품을 감상했다. 생음악 연주에 맞춰 발레리나들이 연기를 했는데, 사람의 몸과 동작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극치의 아름다움, 특히 백조로 분장한 여성 출연자들이 연속으로 턴하는 장면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왕자와 백조의 사랑, 흑조의 음모,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전4막의 동화적 줄거리는 평범하여 그리 특이한 게 아니었지만 그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출연자들의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가로서의 혼이 느껴져 진한 감동과 함께 황홀감을 주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호텔방에 돌아와서도 그 여운과 잔상이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렸다.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어도, 몇몇 장면은 여전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끝내 꿈속에서조차 백조의 호수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말았다. 이런 기회가 또 다시 나에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그 감동의 힘이 내 창작의 열정으로 변환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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