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지게놀이'의 마을 신풍면 선학리

350년 이상된 선학리 느티나무.

어린시절 모깃불에 감자도 굽고, 옥수수도 구워 꺼내놓고 평상에 누워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들을 때면 상상의 세계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 때 별은 밤하늘을 가득히 수를 놓았고,나의 별은 늘 내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무서운 옛날이야기는 어찌나 무섭던지 지금의 납량특집 영화보다 더 오싹했다. 

그 시간 이후로는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이 꺼려졌다.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결국 형제들을 깨워서 화장실 앞에서 보초를 세우고 나서야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선학리 노인들이 정자나무 선유정 아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37호인 ‘지게놀이’로 유명한 공주시 신풍면 선학리(仙鶴里) 동네 입구에는 350년 이상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다.

이 마을 노인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연신 피워내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임헌항(82) 할아버지의 설명에 의하면 ‘선학리’라는 지명은 ‘오선대(五仙垈)’의 ‘선’과 ‘학동(鶴洞)’의 ‘학’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오선대는 다섯 산봉우리가 신선 같다고 해서 부여된 이름이고, 학동은 묘를 이장하면서 학이 날아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선학리의 총 면적은 463ha로, 이중 산(山)이 402ha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산촌(山村)마을이다.

번창할 때는 120여戶까지 살았으나 현재 가구 수는 73호, 약 18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오원교(75)씨의 말에 따르면 선학리는 예전에 의동(儀洞)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이후 ‘보신리’ 또는 ‘버시니’로 불리었다고 한다.

팔봉산으로 오르는 임도(버실고개).

현재는 없어진 자연 마을로 봉현리로 넘어가는 서낭당 고개(버실고개) 아래 위치해 있었으며, ‘보신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임진란, 동학란과 6.25전쟁 당시 피난지였다는 것이다.

마을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6.25전쟁 당시에도 피난 온 사람들은 물론,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까지 단 한사람도 죽지 않고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 선학리에는 자연 단위 마을인 학동(鶴洞), 중뜸, 요골, 오선대뜸, 갱변뜸, 음달뜸 등이 실개천을 중심으로 나누어져 있다.

선학리 주변으로는 팔봉산, 밧구봉, 선바위, 갈뫼봉 등이 둘러싸고 있으며, 크지 않은 산에 골짜기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싸리꽃이 흐드리지게 피어있다.

팔봉산에는 중메큰골, 잦나무골, 한박골, 뒷골, 불당골, 굿골, 산제당골(절골), 왕가시골, 새암달, 작은새암달, 차맥갱이, 석덜, 매창새골, 지듬고개, 성황당갓골 등이 있다.

벗구봉에는 최털네모양골, 부엉이골, 회조믄골, 수박골, 좁싸리골, 자빠진골, 때박골, 송지정골, 으딩이골, 갑진이묵박골, 노루롱골 등이 있다.

선바위는 큰빈들골, 배나무골, 바른골, 갈뫼봉은 용골, 안골, 대랑골, 진골 등이 있다.

고즈넉한 선학저수지 수면위로 팔봉산 자락이 비추인다.

이와 같이 골짜기 이름이 많은 것은 생계의 일정 부분을 산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운반도구였던 ‘지게’가 자연적인 놀이문화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을에는 쌀바위(절바위)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매일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바위틈에서 나왔다고 한다.

임재경(75) 할아버지의 얘기에 의하면 팔봉산 중턱에 위치한 ‘보광사’라는 암자에는 老스님이 한 분 살았는데, 암자 앞에 있는 바위틈에서 매일매일 쌀이 나왔다는 것이다.

바위틈으로 쌀이 흘러 나왔다는 쌀바위(절바위).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오자 스님은 손님공양을 위해 부지깽이로 구멍을 쑤셔 쌀을 더나오게 하려다 그만 부지깽이가 부러지는 바람에 구멍이 막혀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또 젊은 새색시가 떨어져 죽었다는 ‘색시바위’ 바로 아래에는 아직도 무덤이 있으며, 장사가 나오는 바람에 바위가 부셔졌다는 ‘장수바위’, 요강을 닮아서 붙여진 요강바위 등 바위에 얽힌 갖가지 설화는 흥미진진하다.

마을 전통 놀이로는 ‘지게놀이’, 공(球)을 작대기로 치며 놀던 ‘장치기’, ‘윷놀이’ 등이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 팔봉산 산제당과 마을 어귀 장승 앞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37호인 ‘선학리지게놀이’

‘지게놀이’는 임진왜란 당시부터 전승되어온 것으로 작대기 걸음마와 작대기 고누기, 지게 힘자랑은 물론 지게상여·지게풍장·지게발걷기·지게지네발걷기·지게꽃나비·지게작대기장단·지게호미끌기 놀이 등이 있다.

각각의 놀이에는 산간 서민들의 애환을 진솔하게 담은 만가, 나무꾼 타령, 논매는 소리 등이 함께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10여년前부터는 매년 4월경 한 자리에 모여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지게놀이’를 즐기고 있다.

소리꾼, 요령잡이, 지게꾼 등 50여명의 주민이 두루 참여하게 되는데, 최근 선학리도 젊은 사람들이 줄면서 전승기반이 흔들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머루, 다래, 산딸기 산과일이 지천이라는 팔봉산 임도를 따라 오르면 호젓한 저수지도 만나고, 단풍나무·싸리나무·전나무·미루나무·상수리나무·갈참나무며 다람쥐나 청설모 등 산짐승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팔봉산을 오르기 전 마을 끝자락에서 만난 연꽃.

가파른 길을 따라 산 중턱에 오르면 ‘보광사’라는 암자 앞에서 바위틈에서 쌀이 나왔다는 절바위(쌀바위)도 볼 수 있다.

이곳 ‘보광사’ 정심스님의 말을 빌리면 절바위의 구멍이 인근 장터에 까지 연결돼 있어 장터의 쌀이 꼭 한주먹씩 없어졌는데 그 쌀이 절바위 틈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또 절바위에서 목탁소리, 공양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산신령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노스님이 있던 당시에는 크게 번창했었으나, 소실되고 새로 지은 이후에는 기도도량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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