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계룡지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위로는 계룡산의 연천봉, 삼불봉이 마을을 자신의 품에 안고 있는 마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마을이 바로 계룡면 하대리이다.
북쪽은 중장리, 동쪽은 양화리, 남쪽은 금대리, 서쪽은 월암리에 접해 있는 이 마을은 백제 때는 웅천에, 신라 때는 웅주에, 고려 때는 공주목에, 조선시대엔 공주군에 속했다.
조선시대 말엽엔 공주군 익구곡면의 지역으로 대장 아래쪽에 위치하며 대장 또는 하대장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산리, 신대리, 신구리, 구암리, 벽계리. 상현리, 중현리, 하현리, 옥동, 석계리, 점촌을 병합하여 하대리라 하고 계룡면에 편입됐다.
71가구 130명이 살고 있는 이곳의 주민들은 거의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마을 전임 이장인 김석기씨(57)는 “우리 마을은 경로사상이 투철하고 효행이 남다르다”고 말하고 농촌사회의 고령화로 인한 농촌일손 부족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농번기에 서로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각 마을 유래와 명칭을 보면 - 감바위: 마을 뒷산에 검은 바위가 있다 해서 검은 바위 또는 현암이라 불렀는데, 검바위가 되었다가 감바위로 변해서 부르는 바위다.
마릿골: 조선시대 익구곡면의 면사무소가 있었던 마을인데 이 지역에서 으뜸인 마을이라 하여 머릿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마릿골이라 부른다고 전해지나 실제 주민들은 마룻골(宗谷洞)로 부리고 있다.
방아다리, 지교: 이 곳 지형이 방아다리처럼 생겼다 해서 마을을 방아다리, 지교라고 하나 지금은 방아달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배바위: 바위의 생김생김이 배처럼 생겨서 배바위라고 불렀는데 이 곳은 계룡지에 묻혔다. 보목, 보황, 포목, 서당골: 이 곳에 흐르는 물은 막은 보의 목이 되는 곳에 마을이 있다 하여 보목, 보황, 또는 포목이라 부르며 또한 옛날에 이 마을엔 서점이 있었다 해서 서당골이라고도 부른다.
석계: 마을에 있는 냇물에 돌이 많다 해서 석계라 부른다.
내대(內垈), 안말: 마을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내대, 또는 안말이라 부른다.
점촌, 점말: 옛날에 옹기점이 있었다 해서 점말 또는 점촌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신대장: 마을이 대장 마을 부근에 새로 생겼다 해서 신대장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덕대골: 예전에 덕대가 있어서 덕대골이라 부른다. 부도골: 부도단지가 있어서 부도골이라 부른다.
되재: 넘기가 힘든 고개라 하여 되재라 한다.
서당동: 예전에 성황당이 있었다 한다. 치마바위: 바위가 치마처럼 생겼다 한다.
은골: 명당이 숨어 있다고 한다.
범바위: 부락 뒷 편으로 범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검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범바위라고 부르며, 이 바위를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마을을 상현(서당동), 중앙은 중현(고임정) 남쪽으로 하현(감바위)라고 부른다.
원터: 이 마을의 뒷산에 옛날 고려장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고린장 마을이라고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의 협의에 의하여 현재는 고임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 뒤: 원터의 뒤편에 있다하여 동뒤 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집 한 채만 있었는데, 계룡 저수지가 생기면서 이 마을로 사람들이 이전해 왔다.
하대리에는 수령이 530년 된 느티나무(둥그나무)가 있다. 일제시대에 같은 종의 나무가 6~7그루나 있었지만 일본인들이 모두 가져가고 지금 남은 나무는 당시 가장 못난 나무라서 가져가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해마다 칠월칠석 일에는 전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마을주민들의 평안을 위하여 이 나무에 제를 올리는 '칠석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