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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악기’ 풀피리 전승, 보존해야”
풀피리 전도사로 나선 김승배 풀피리보존회장
2017년 01월 08일 (일) 20:48:57 김광섭 기자 stopksk@hanmail.net

   
▲김승배 풀피리보존회장이 특급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참으로 가슴이 따뜻한 남자. 풀피리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승배 풀피리 명인을 대할 때 마다 다가오는 느낌이다. 시골스럽지 않은 외모를 지녔으면서도, 촌사람의 넉넉한 마음을 지닌 사람. 어려운 이웃을 결코 남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그가 풀피리를 연주하는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30년 넘게 색소폰연주, 전자오르간 연주, 톱 연주까지 하고 있는 내게 그가 연주하는 풀피리 소리는 악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충격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생각하는 악기는 금관, 목관, 타 악기 모두 단단한 형태를 지닌 고형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사소한 바람에도 하늘하늘 흔들거리는 풀잎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런데 그 가냘픈 몸매의 풀잎이 어찌나 청아하고, 애절하고, 강한 소리를 내는 지 나의 귀를 의심케 했다. 게다가 톤이며, 텅잉, 바이브레이션, 음정이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한방 된통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김승배 풀피리명인이 2012년 4월 15일 공주예술제에서 풀피리를 연주하고 있다.

그가 풀피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초등학교 3~4학년 때. “방학을 맞아 시골 할머니 댁에 갔어요. 뒤꼍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어떤 소리를 내셨어요. 어린 시절, 나에게 그 소리가 구성지고 멋있게 들려서 스윽 보니까, 할머니께서 감나무와 봉숭아 잎사귀를 입에 대고 불고 계셨어요. 소리가 처량하고 구슬프고 그래서 할머니께 ‘그것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더니 할머니께서는 당황하시며 잎사귀들을 급히 감추셨지요. 그때만 해도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연주 하는 사람들을 ‘딴따라’라 하여 천시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할머니께서 그러셨던 거지요.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불으시던 풀피리 소리가 하나의 ‘시나위’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나위는 내면의 즉흥적 가락으로, 무속적 신앙에서 비롯한 노래예요. 옛날 사람들은 농사나, 일을 할 때에 시나위조의 노래를 부르며 노동과 삶의 고단함을 달래곤 했죠.
하여튼 그해 여름 방학에 나는 할머니를 조르고 졸라 부는 방법을 배우고 지천에 널려있는 아카시아 잎을 비롯해 각종 풀잎을 따다 불고 또 따다 불었습니다. 입술이 터지고, 굳고, 또 터지기를 몇 번씩 반복할 정도로 지독하게 열심히 불었어요. 방학이 끝나갈 쯤, 어설프게나마 몇 곡의 동요를 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배운 풀피리는 그에게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KBS 아침마당에 나가서 풀피리를 연주하자 지인들의 격려전화로 순간 전화통이 마비됐다.

그리고 싱가포르 ‘멀라이언’이라는 사자상 앞에서 아리랑을 연주하자 주위에 있던 원주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앙코르”를 외쳤고, 이 때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를 연주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또한 지난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시 진압군 대위로 전남대학교에서 대치를 하고 있던 그가 풀피리로 ‘얼굴’을 연주하자 진압군, 시민군 모두 ‘얼굴’을 합창했다.

그는 당시 발포명령을 거부했다.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하는 군인에게 있어 그러한 결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로 인해 헌병대에서 어려움을 겼어야 했다. 이것이 내가 그를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서럽고, 안타깝고 어려운 일인지를 나는 잘 안다.

지금도 그는 5월 18일이 되면 광주를 찾고 있으며 당시 “김승배 같은 군인이 있어 우리가 군인들을 용서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2015년 8월 17일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에서 열린 공주학광장에서 악학궤범에 나와 있는 풀피리관련 기록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사업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풀피리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풀피리에 애정을 갖고 풀피리의 전승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하는 것은 풀피리가 백제의 악기라는 것 때문이다.

다리하나 건설하는 것보다, 건물하나 더 짓는 것보다 우리의 조상들의 한(恨)과, 맥(脈)과, 전통과, 역사, 정서가 서려있는 백제의 소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

“풀피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악기입니다. 언어와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도 풀피리는 원시인들의 각종 신호와 사냥에 사용됐습니다.

『삼국사기』에 풀피리는 고구려와 ‘백제의 악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선 성종 임금시대에 발간된 악서인 『악학궤범』에는 ‘초적’, ‘초금’이라는 명칭으로 풀피리가 우리나라 전통 향악기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 임금이 초적을 부는데, 그 소리가 너무 처연하고 비장하여 따라 우는 궁녀들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문학작품 속에서도 풀피리는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에서도, 정지용 시인의 ‘고향’ 이란 시에서도 풀피리가 등장합니다. 풀피리는 백성으로부터 임금에 이르기까지 연주 되었던 유일한 우리의 악기입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고증된 백제의 악기인 풀피리를 백제의 후예인 우리가 보존, 계승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는 요즈음 백제의 악기인 풀피리를 어린이들에게 전수하느라 무척 바쁘다. (주)상곡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김승배 명인은 두 개의 사업장을 오가면서 사업을 해야 하는 바쁜 와중에도 유구초등학교, 마곡 초등학교, 중동 초등학교 등 고향의 초등학교를 방문해 풀피리 강의를 펼치고 있다.

   
▲2014년 9월 13일 세계구석기축제 개막식에서 풀피리연주를 하고 있다.

또한 여러 대학과 단체, 공기업에 가서 풀피리 소개 및 연주를 하고 있다. 그는 세계구석기축제 개막식, 공주예술제, 희망콘서트,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국제 심포지엄, 공주문예회관, 세종문예회관 등에서 풀피리를 연주했다.

아울러 풀피리 관련 동호회를 공주로 초청해 공주한옥마을에서 1박 2일 동안의 풀피리 모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꿈은 풀피리 전승관을 세우는 일. “풀피리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임에도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풀피리를 아이들의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백제의 악기인 풀피리가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풀피리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지금도 풀피리를 불고 싶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단체나 학생이 있으면 가능하다면 시간을 내어 어디든 찾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풀피리는 ‘백제의 악기’입니다. 백제의 악기를 백제의 후예들이 연주하지 않는 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저는 저로 인해 자손만대까지 백제의 소리가 이어지기를 염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도 풀피리의 전승과 보존을 위한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라는 그.

   
▲2014년 10월 5일 열린 제60회 백제문화제 폐막식에서 풀피리를 연주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의 열정에 감복했다. 그래서 나도 풀피리연주에 도전할 생각이다. 이미 여러 서양악기는 연주하고 있으면서 정작 백제의 후예가 ‘백제의 악기’인 풀피리를 연주하지 못한다는 것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진다. 쉽진 않겠지만, 가슴이 따뜻한 김승배 풀피리 명인과 감히 동행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동행의 대열에 모든 백제의 후예들도 동참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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