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인 웅진백제로부터 강남 공주 시내를 관통하는 제민천은 공주시의 젓줄이라 할 수 있다.

충청의 젓줄 금강이 흐르고 그와 연결되는 지천 공주시의 제민내(川)는 지금 생태하천 공사 후 평안할까?

예전의 제민내(川)는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춤을 추는 미학적인 풍경의 낭만이 있었고, 시민과 함께 어우러지는 다정다감한 친구처럼 느낄 수 있었다.

또 어린아이들이 목욕을 하고, 작은 둠벙에서 헤엄치고 물장난하던 모습, 물고기를 잡고 어항을 놓는 생활풍경, 제민천 한 모퉁이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네들의 모습, 하천 변 뚝 방에 앉아 다소곳이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의 모습, 그야말로 시민과 함께하는 소중한 우리의 친구였다.

또한 백제문화의 얼이 흐르고 엎드려 목마름을 해소하던 맑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가슴 같은 따뜻함이 있었다.

이제 이러한 모습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생태하천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황토시멘트 산책로와 자전거로, 그리고 강한 철근 벽이 시민안전이라는 이름하에 금학동에서부터 금강까지 설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문화의 침투가 바꾸어 놓은 제민천은 유유히 흐를 뿐이다. 마치 백제의 아픈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라도 하는 듯, 그 아픔을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다. 이처럼 변모한 제민천을 매일같이 걷는 시민들, 그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질까….

생태하천이라는 제민내(川)는 생태문화의 특성이 남아 있기라도 할까, 무엇이 이토록 제민내(川)를 아프게 만들었을까, 왜 이 제민내(川)를 그냥 가꾸고 지키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는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국민의 혈세를 이처럼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이제 그 환경훼손의 아픔은 누가 지고 가는 것인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 줄 제민내(川)는 백제문화가 흐르는 하천으로 다시 복원되고, 생태적인 환경을 가진 옛 모습으로 언젠가는 다시 바꾸어야 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민내(川)를 이 중생은 최근 매일같이 저녁이면 걷기 낙원산책을 한다.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자연미술화가인 임모선생님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주변 백제시대의 절터인 대통사지 지역을 탐방한다.

어느 새 ‘낙원산책’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제민내(川)를 만난 지가 봄에서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로 접어들었다. 참으로 빠른 계절의 변화는 멀지 않아서 사계절의 생태계를 돌려 줄 것이다.

이처럼 공주에서 일상의 시간을 보내면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같이 제민내(川)를 찾는다.

옛 모습의 제민내(川)를 그리워하고 회상하며, 백제문화를 찾아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고 깨달음을 얻고자 몸부림을 쳐가며 함께하는 낙원산책가와 즐기려 한다.

하지만 백제시대의 문화콘텐츠를 체험하고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나 졸속으로 만든 제민내(川) 생태하천공사의 아쉬움이 짙은 가을하늘처럼 멀리 느껴진다. 이는 나만의 생각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낙원산책가와 제민내(川)에서 차(茶) 한잔의 여유를 갖고, 저녁마다 걷기를 통한 건강관리를 즐기며 정신적으로나마 최상의 삶의 질을 찾아가는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

그리고 대화 속 이야기는, “낙원산책, 제민천에서 제석천까지”로 이어진다. 현재의 길은 제민천(川)길을 걷는 낙원산책가지만, 다음 생의 길 위에는 하늘나라 제석천까지 갈 수 있도록 수행정진하고 마음을 맑고 청정한 사람으로 기도하며 힘쓰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마음껏 웃고, 그림과 사진, 예술과 문화를 논하는 낙원산책을 이어간다. 하루의 연속이 일생이라는 책 한권을 만들지만, 찰라의 순간은 영원하다는 철학적 사변 속에서 낙원산책은 꿈처럼 이루어진다.

이제 공주의 생명젓줄 제민내(川)가 다시 살아 꿈틀대는 문화생태하천이 되길 소망해 본다. 누군가는 이를 실현해 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 오늘도 ‘낙원산책, 제민천에서 제석천까지’의 인생여정은 계속된다.

모두가 행복한 낙원산책, 누구나 즐거움을 찾아가는 낙원산책, 아무나 찾아와도 반겨주는 관광낙원산책로, 제민천이 되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영원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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