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경 (스토리텔링 작가/ 전주대 연구교수)

나는 2016년 12월 8일 오후 3시, 서둘러 공주시 중동에 위치한 “충남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이날은 “충청남도역사박물관 개관 10주년 특별전 - 충청유학, 미래를 청(淸)치다(전시기간:2016년 12월 8일 - 2017년 5월 31일)”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내가 쓴 “성삼문 요여 스토리텔링”이 처음으로 키오스크로 구현되는 날이었다.

정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충청남도, 기호유학”에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이날 “충남역사박물관”에 몰려 든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는 내게 이번 특별전의 주제처럼 “충청유학”이 진정으로 ”미래를 청(淸)”치게 하는 행복한 신호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러면서 나는 충청남도 특히, 공주목(公州牧)을 중심으로 그 뿌리를 깊게 내린 기호유학이 지금의 혼란한 세상을 다시 깨끗이 정화(淨化)시켜주는 “거문고”의 “청현(淸絃)” 같은 맑은 음(音)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서슴치 않고 해본다.

원래 “거문고”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대변하는 악기로 유명하다. 나는 이날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갑자기 “거문고”를 “청(淸)”치라는 “흥타령”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창밧긔 국화를 심거 국화 밋테 술을 비져 두니 술 닉자 국화 픠자 벗님 오자 달이 도다 온다 아희아 거믄고 청(淸)*쳐라 밤 새도록 놀리라”

그러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정숙한 마음으로 “충남역사박물관” 2층에 있는 “성삼문 요여”가 전시된 곳으로 올라갔다. 이곳에서는 몇 달 동안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한 “성삼문 요여 - 키오스크”가 시범운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손으로 스크린을 터치하면서 내가 쓴 “성삼문 요여 - 스토리텔링”에 대해 장호수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성삼문 요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2016년 12월 8일 충남역사박물관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온 사람들 모습 및 “성삼문 요여 - 키오스크” 시범운영을 관람하는 사람들 모습>

<성삼문 “요여” 관련 성삼문 족자 스토리텔링 (6) : 성삼문의 문절사 영정 이야기_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

안녕하세요? “충남역사박물관 성삼문 요여” 앞을 방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 보고 계신 성삼문 요여의 주인공 -성삼문입니다. 이번에 여러분에게 들려 드릴 이야기는 제 “문절사 - 영정 이야기”입니다.

문절사에 걸려있는 제 영정이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영정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제 생가터의 영정과 문절사의 영정은 그 모습이 좀 다릅니다. 이는 두 영정 모두가 저를 직접 보지 않고 후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고 저를 상상해서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요. 그래도 가만히 보면 저 좀 닮지 않았나요? 인자한 눈매를 지녔지만, 그 안에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날카로움도 들어 있고요. 올곧은 자세로 임금님께 충성하겠다는 꼿꼿한 자태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네요.

원래 문절사에는 제 영정 앞에 “충문공매죽헌성선생신위(忠文公梅竹軒成先生神位)”라고 쓰여 있는데요. 여기 제 요여가 바로 1903년 칙령에 의해 제 봉사손이 결정되어 지금의 문절사로 옮겨질 때 사용되었던 가마입니다. 참, 듣고 보니 의미 있는 물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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