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오래 된 연인인 듯 친밀함을 담은 눈빛. 내 모든 속사정을 하나하나 꿰고, 또한 그 것을 이해와 연민으로 바라보는 눈빛. 그 때, 그의 눈빛이 그랬다.

사랑하지 않고서도 어떻게 그런 눈빛이 가능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와 나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때였는데.

아직 어린 사람이 어찌 그리 대담하게 이국의 연상을 미소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또 그의 눈에서 어쩌면 그리도 십년지기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걸까?

눈. 마음의 창이며 영혼의 등불. 눈이 순전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는 말씀도 보았다. 그 순간 이후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을 신봉하게 되었다. 인간의 영혼은 눈으로만 교감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영혼에 있어서는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까지도 생겼다.

레에 있을 때 티벳 난민 가족이 운영하던 한 식당에 자주 갔다. T는 가족을 도와 웨이터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친절함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였고 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으로 그와 그의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며 매일 그곳에 들렀다. 물론 그가 무료 김치를 제공한 때문이기도 했다.

매우 힘들게 느껴지던 어느 날, 곰빠들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한 욕심으로 연일 강행군을 하고 있던 날, 다음 행선지를 가자며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데 그가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짐짓 모른 체하며 배낭을 둘러매고 다음 행선지인 알치 행 버스를 타러 나섰다. 한 여름 태양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터벅터벅 터미널을 향해 걸어가는데 자꾸 그 눈빛이 떠올랐다.

메인 바자르를 지나고 공동묘지를 지나고 인적 드문 길을 얼마 쯤 걸어 터미널에 이르렀다. 오후 4시 알치 行 버스에 올라 비좁은 자리에 앉아서도 마음속에서 그의 눈빛은 흐려지지 않고 또렷이 살아 움직였다.

아마 지쳐 보였을 것이다. 오전에 5km 넘는 산길을 올라야 하는 ‘헤미스’곰빠를 다녀왔고, 레에 다시 돌아와 점심 먹고 곧장 ‘알치’곰빠를 찾아 나선다고 몸을 일으켰으니 인상이 고왔을 리 없다. 그는 내가 걱정되어 보였을 것이다.

친절하고 유능한 웨이터로서 손님의 표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관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엽렵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며 밀밭이 넓게 펼쳐진 라다크 오지의 알치 마을에서 나른한 1박을 하였다.

뜻밖에 알치에서 돌아온 후 식당을 찾았을 때 그는 없었다. 누구보다 나를 반겨주고 문을 열어주고 시원한 프리 워터를 가져다주고 자잘한 테이블 위의 더러운 것들을 치워주고 내 농담에 웃어주고 라다크 여행에 관한 질문에 날카로운 해법을 제시 해 주어야 할 그가. 그가 없으리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난감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열흘이 지나서 그가 돌아왔다. 티벳에 가까운 쏘모리리 호수로 할러데이를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야위었고 몸은 말라 있었다. 나를 기쁘게 하던 소년 특유의 활기와 유쾌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 날 그가 나를 바라본 것은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였다. 나를 지치게 하던 관계가 아닌 순수한 사람으로서. 히말라야 오지에 사는 순박한 산골 청년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보여준 것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그런데 나는 그의 마음을 살뜰하게 알아주지 못하고 다독여주지도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 제대로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 죄로 나 역시 죽을 만큼 심한 열병을 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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