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령(精靈)이란 사람 사이만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곤 한다. 동물은 물론이고, 집, 책 심지어 지팡이나 돌 하나까지도 모두 정령을 가지고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아주 먼 옛날의 인류의 조상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정령신앙을 가지고 사물을 대한 것을 보면 그렇다. 난 요즘 이 점에서 원시신앙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번 맺은 인연은 끊기가 싶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놀라운 일이다.

며칠 전 일이다. 산행을 하려고 나섰다. 동네 뒷산을 올라갈 때라도 물 한 병은 준비해 가라고 유명한 알피니스트가 하신 충고를 집사람이 지금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수천 번을 나에게 말해 줬다.

그래서 아예 차안에 생수를 준비해 놓았다.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등산용 스틱도 차안에 항상 비치해 놓고 있다. 몸이 비대해 젊어서부터 무릎이 건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심혈관 질환으로 누워 있으나 걷지 못해 누워 있으나 아파 누워 있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그래도 말짱한 정신으로 누워 있는 것이 무릎 아파 누워 있는 것보다 나을성싶어 열심히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스틱이 없었다. 아마도 집사람이 타는 차에 놓은 것 같았다. 며칠 전 그녀와 함께 등산을 하고 거기에 둔 것이다. 요즘은 몸의 균형을 잡는 것도 예전만 못해서 스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좀 낭패스런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다행스럽게도 누군가가 적당한 크기로 여러 개의 단장을 만들어 큰 참나무에 기대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간목한 잡목을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이런 좋은 일을 한 분에게 축복이 있으시길.) 난 내손에 잘 맞는다 싶은 단장을 골라 산행을 시작했다.

난 이 단장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낮지만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그만 경사로에서 미끄러져 손을 짚을 뻔한 것이다.

나는 안다. 살찐 몸통의 균형을 유지하겠다고 허약한 팔로 땅을 짚으면 얼마나 큰 위험이 뒤따르는가를. 몇 년 전에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손으로 땅을 짚어 거의 어깨가 탈골 수준까지 가 석 달이 넘도록 고생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잡고 있던 단장에 지탱하여 종아리가 긁히는 수준의 상처를 입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난 그때 그 지팡이는 마치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나를 선택하여 나와 같이 산행했고, 위기의 순간에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막대기에 정령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이것이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정령은 내가 타고 다니는 차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있음을 느낀다. 지난해 우리 부부 모두 퇴직을 하자, 우선 자동차 두 대중 한 대를 처분하고, 현재 살고 있는 방 네 개짜리 아파트를 팔고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정리대상은 십사 년이나 지난 에스유비 차였다. 그런데 막상 처분하려고 하니 이 차와 함께 했던 추억이 너무나 많아 선뜻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내가 승진하여 먼 곳으로 발령이 난 이후 이 차는 나의 발이 되어 직장과 가정을 이어 주었고, 전국 구석구석을 데려가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보여 주었고, 그리고 대학 다니는 아이들 이삿짐을 싣고 서울 시내를 제집 드나들 듯이 했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주인인 나를 한 번도 곤혹스런 상태에 빠뜨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전에 몰던 차를 팔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에 복받쳐 결국 팔지 않기로 마음을 돌렸었다. “여행 한번만 생략하면 충분히 너와 함께 지낼 수 있어.”라는 말과 함께.

아파트를 팔겠다고 내놓자, 잘 아는 중개인이 구매하려는 부부를 데리고 집사람이 외출한 사이에 우리 집을 찾아왔다. 난 문만 열어주고 내방으로 들어와 보던 책을 보았다.

나중에 중개하신 분이 제 집사람에게 “남편분이 집 파실 의향이 없으신가 봐요”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난 그때 중개인으로부터 집을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이 집이 혹시 바로 팔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집사람의 잔소리로부터의 피난처였고, 무딘 머리로 세파를 헤쳐가기 위한 지혜를 달라고 간구했던 기도실이었고, 짧은 지식을 채워주던 곡간이었던 내 서재가 앞으로 영원히 없을 것이란 것을 느끼고 갑자기 팔 생각이 사라진 것이다.

집보러 오신 분들에게 집을 팔기 위해선 “맨 위층이나 그리 추운 줄 모르고 살았어요. 맑은 날에는 계룡산도 보여요.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연미산, 산성공원, 그리고 저 멀리 서울 가는 쪽으로도 막힘이 없어 전망이 끝내줍니다.” 이 정도의 멘트는 날려야 집이 팔릴 것이 아니냐 하는 집사람의 훈수도 잊고 어떤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내 방에 있었던 것이다. 그 방의 정령은 마치 내 책꽂이 옆에 숨어 나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퇴직 후 변한 것은 없다. 여행을 줄여서 낡은 차와 함께 하기로 했고, 겨울 냉방비를 줄여서라도 이 아파트와 함께해야 한다. 아니 차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차의 정령과 함께 하는 것이고, 아파트의 정령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그날 산행을 마치고 다시 단장이 있던 곳에 이르러 잠시 이 단장을 놓고 갈 것인가 아니면 가지고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망설였다. 나는 그것과의 인연을 좀 더 이어가고 싶어 들고 나왔다. 독자여! 이런 인연이 있어 막대기 하나 들고 나온 것이니 너무 탓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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