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스토리텔링 작가/ 전주대 연구교수)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나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공주시 중동에 위치한 충남역사박물관 안에 소장품인 “성삼문 요여”에 대한 스토리텔링 문화원형 보충 조사를 위해 충남 홍성군에 있는 매죽헌 성삼문의 생가터에 다녀왔고, 세종시에 있는 성삼문 사당-문절사도 다녀왔다.

그리고는 곧장 차를 몰아 오전 10시 반, 공주시 반죽동에 위치한 “김미경스토리텔링연구소”에 도착했다. 일명 “백제불교사상연구회”라는 모임이 내 연구소에서 열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주 원효사 해월스님부터 문화재청 사혈사 지원사업 총괄기획자 석용현 박사, 공주경찰서 강복순 서장까지 10여명이 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주의 백제불교문화의 찬란했던 흔적들을 더듬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김미경스토리텔링연구소”에서 차를 마신 후 소위 백불회 사람들은 모두 함께 공주 주미산 산기슭에 있는 공주의 옛 사찰 “주미사지” 터를 둘러보았다. 또, “남혈사지”로 가서 석굴도 보고, 절터도 구경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공주가 얼마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간직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제법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손발이 차가워진 우리를 위해 “시골 칼국수집”으로 가서 따뜻한 국물이 좋은 김치칼국수를 뚝딱 한 그릇씩 재빨리 해치웠다. 왜냐하면, 다음 일정으로 공주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사진작가협회 공주지부” 사진 전시회를 관람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 정말 숨차게 바쁜 나의 하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충남 논산에 있는 “성삼문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혼자 눈길을 헤치며 급히 양촌리를 향해 달려가야만 했다.

참, 첫 눈 오는 날, 나는 무슨 팔자로 혼자 미끄러운 비탈길을 올라가 성삼문 묘소를 참배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알쏭달쏭 했지만, 하여간 충절을 지키기 위해 사지가 찢기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던 성삼문의 일지총(一肢塚)에 고개 숙여 진심으로 그 분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눈길을 헤쳐 내가 사는 계룡산 상신마을에 위치한 “계룡산 도예촌”으로 차를 몰았다. 며칠 전부터 마을 입구 현수막에서 본 “이효재의 그릇 이야기”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는 내가 KBS 방송국 작가 시절 때 자주 단골로 드나들었던 서울 아현동 고개에 있었던 “이화옷방”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내가 28살 때 프랑스 파리에 간다고 하니까 아주 개성은 넘치면서도 기품은 잃지 않는 연두색 개량 한복을 예쁘게 만들어 주었었다. 물론, 나는 그 한복 때문에 프랑스 파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온 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하여간 아주 오래 전부터 남다른 예술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그녀가 요즘, 방송과 잡지 등에서 각종 예술품을 선보이고 있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녀가 내가 사는 계룡산 상신마을로 특강을 온다니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도 몹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나의 11월 26일, 토요일의 일정은 또,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세종시에 위치한 “초려역사공원”이다. 여기서는 “초려역사공원” 개원 1주년 기념으로 “갈산서원에서의 어울마당-가울, 詩에 물들다“라는 ”시낭송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초려문화재단” 이연우 이사장이 특별히 전화를 걸어 거절하지 못하고 참석한 자리였지만, 여기서 만난 공주문화원장 나태주 시인의 “대숲 아래서”라는 시는 오늘, 정신없이 보낸 나의 하루를 가만히 정리해주는 뜻 깊은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

아! 삶의 어느 순간에 만나는 사람인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더냐?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내가 만난 백불회 회원들 모습 및 이효재 한복디자이너와 필자 모습>

대숲 아래서

나태주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제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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