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은혜 명창이 지난 2015년 10월 21일 대마도에서 ‘아리랑’을 열창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21일 대마도 ‘李王家宗伯爵家御結婚奉祝記念碑(이왕가종백작가어결혼봉축기념비)’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이 비는 덕혜옹주가 1931년 5월 종무지공(宗武志公)과 결혼해 그해 11월 대마도를 방문했을 때 성혼을 축하해 대마 거주 한국인들이 건립한 비. 본래 시내 하치만구 신사 앞에 세워져 있었으나, 1950대에 쓰러져 땅에 뒹굴고 있던 것을 2001년 11월 10일 이곳에 옮겨 세웠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1912~1989)의 한이 서려있는 이 기념비에서 남은혜 명창은 한복을 차려 입고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가고 싶어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하며 대마도를 방문한 공주사람들과 함께 아리랑을 열창, 비운의 덕혜옹주를 위로했다.

남의 나라에서 듣는 아리랑에 대한 느낌은 각별했다. 더구나 힘없는 나라의 황녀가 겪어야 했을 아픔을 생각하며 들으니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여음(餘音)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을 담은 두 줄의 가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는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아리랑을 사랑하는 이들은 아리랑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강조하면서 대중화와 전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은혜 명창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이수자인 남은혜 명창은 공주아리랑보존회장, 충남아리랑보존회장, (사)한겨레 아리랑연합회 충남지부장, (사)Arirang Institute 한국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남은혜명창은 1997년 ‘공주민요연구회’를 창립해 공주아리랑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8년 ‘공주민요와 민요한마당’이라는 주제로 공주민요연구회 정기공연을 펼쳤다.

▲ 2014년 3월 1일 공주문예회관에서 제15회 공주아리랑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어 ▲2003년 정선아리랑 등을 수록한 ‘남은혜의 노래 가락’ 음반 발매 ▲2007년 산아지타령 등 조사 ▲2009년 한·중 문화교류 아리랑 공연, 한·필리핀수교 60주년기념콘서트 아리랑공연 ·2012년 공주아리랑학술답사, 공주아리랑제 개최, 우즈베키스탄 세계아리랑한마당(미국)참가 ▲2012년 월드아리랑축제(우즈베키스탄)참가, 유네스코 아리랑등재운동 전개 ▲2013년 공주아리랑제 개최, 남은혜의 아리랑 한마당(국립민속박물관), 남은혜후원회결성 기념공연(창덕궁 소극장), 공주지역 아리랑학술조사(아리랑학회 공동), 해외아리랑 학술답사(아리랑학회 공동) ▲2014년 (사)Arirang Institute 창립식 아리랑공연, 공주아리랑제 개최, 남은혜의 아리랑공연(국립국악원), 음반(공주아리랑·북간도 아리랑) 발매 등의 아리랑의 전승, 보급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공주아리랑 음반
공주아리랑 보존회장인 남은혜 명창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4년 12월 22일 (사)한겨레아리랑 연합회 주관으로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대강당에서 열린 제10회 아리랑 활동상 시상식에서 ‘아리랑 상’을 수상했다.

남은혜 명창은 국악인으로서 매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출생한 남 명창은 시조창과 퉁소연주를 잘 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를 닮아 노래를 좋아했고, 잘 불렀다.

그러던 중 큰오빠의 사업실패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 다니던 중학교를 휴학한 남 명창은 오빠와 언니가 양평에서 운영하던 양품점에서 일을 하게 됐다. 남 명창은 그곳에서 어머니가  집에서 토막소리로 불렀던 ‘아리랑’과 ‘북간도’에 얽힌 사연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됐다.

남 명창의 어머니는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슬픈 운명을 목에 걸고 사셨다. 아버지가 술김에 한 약속 때문에 겨우 열세 살에, 20년 연상의 초혼에 실패한 아버지 친구의 손에 끌려와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7남매를 낳고 사셨던 것이다.

술김에 한 약속 때문에 딸을 빼앗긴(?) 남 명창의 외할아버지는 이후 북간도로 떠났다. 어머니의 이런 아픔을 뒤늦게 알게 된 남은혜 명창은 ‘어머니의 아리랑’을 각별하게 인식하게 됐고, 자신도 모르게 부르게 됐다.

언니가 하던 양품점을 인수받아 운영하던 남은혜 명창은 18세가 되던 1978년 코미디언 곽규석씨가 진행하던 ‘KBS TV 전국 콩쿨대회에 출전, 신민요 ’오돌또기‘를 불렀다.

이 때 남은혜 명창은 심사를 맡았던 안비취 선생으로부터 “제대로 공부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안비취 선생으로부터 묵계월 선생을 소개받아 1979년부터 사사를 받게 된다. 이후 10년 뒤인 1989년 남은혜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자(傳受자)’가 됐고, 2002년 이수자가 됐다.

1987년 공주토박이인 남편과의 결혼으로 공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남은혜 명창은 공주지역 민요에 관심을 갖고 민요와 아리랑의 전승, 보급을 위해 팔을 걷었다.

남은혜 명창은 2007년 ‘공주아리랑보존회’를 결성하고, 기미양 성생 등과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 유구읍, 우성면 봉현리의 아리랑을 조사, ‘공주 아리랑’의 존재를 확인, ‘공주 아리랑’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2010년에 들어서는 아리랑 주제 공연 및 학계와 유관단체의 아리랑 관련행사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왜 아리랑을 불렀는지를 깨닫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자각은 남은혜 명창의 발걸음은 어처구니없는 딸의 출가를 한으로 간직하고 있을 할머니가 사셨던 고장인 북간도를 향했고 ‘북간도 아리랑’을 토해냈다.

그리고 비슷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치르치크 동포들의 애환을 담은 ‘치르치크 아리랑’을 창작하는 등 ‘아리랑 명창’으로서 아리랑의 발굴, 전승, 보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남은혜 명창이 자신의 소망을 밝히고 있다.

“진도에 가면 일반인도 진도 아리랑을 다들 잘 부르십니다. 진도 아리랑을 진도아리랑을 부르지 못하면 진도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지요.

그런데 외지 사람은 공주아리랑을 알고 있는데, 정작 공주 분들은 공주아리랑은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공주아리랑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공주사람들이 공주아리랑에 관심을 갖고 한마디씩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주아리랑대회를 열고, 공주아리랑을 무료로 보급해야 합니다.

제가 공주아리랑을 보급하기 위해 노인회관에 봉사를 다니면서 가사를 채록하던 중 문헌에 있는 공주아리랑을 발견해 유네스코 등재 시 심사를 받아 공주아리랑도 유네스코에 함께 등재됐습니다.

앞으로도 꿋꿋하게 충청도아리랑, 공주 아리랑의 미 공개된 아리랑을 발굴해 내고, 이를 전승,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공주아리랑’의 전승, 보급은 저의 꿈입니다.”

▲ 2014년 3월 1일 공주문예회관에서 제15회 공주아리랑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그의 꿈을 하늘에서도 가상히 여겨서 일까? 지난 8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 아리랑경창대회에서 남은혜 명창이 회장으로 있는 공주아리랑보존회가 단체부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현재 전국 단위의 아리랑경창대회는 강원도 정선군 주최 경창대회와 사단법인 영남아리랑보존화가 주최하는 경창대회가 있다. 이 중 대구에서 개최되는 전국 아리랑경창대회는 독립적인 아리랑경창대회로는 역사가 가장 깊다.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아리랑경창대회인 이 대회에는 40여 개 팀 300여명이 참가했으며, 단체부, 명창부, 일반부, 다문화부 등 4개 부문으로 구분,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공주아리랑보존회 팀은 14일 지정곡 ‘대구 아리랑’과 자유곡 ‘공주아리랑’으로 단체부 13개 팀 중 본선에 올라 15일 오전 10시에 행해진 본선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이들은 6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고른 점수를 얻었고 “특히 사설 구사가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대회의 단체부 부문 참가자 가운데 공주아리랑보존회 김낙현옹은 88세의 최고령자로서,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공주아리랑보존회는 이날 대구시장으로부터 대상 상장과 상금을 받았다. 공주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전국경창대회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대구에까지 가서 공주시의 위상을 높여 시민들의 박수와 격려를 받고 있다.

이 자리에서 공주아리랑보존회장인 남은혜 명창은 수상 후 “내년에는 어린이 회원을 참가시켜 색다른 아리랑경창대회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남은혜 명창의 꿈이 현실이 되어 공주에 가면 어디에서는 ‘공주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하며 필자도 혼자서 공주아리랑을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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