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경 (스토리텔링 작가/ 전주대 연구교수)

지난 추석 이브날인 9월 14일, 문득 추석에도 고향 서울에 가지 못하고 원고에 시달려야 하는 내 신세가 하도 초라해 무조건 차에 올라 타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그저 아무 목적도 없이 공주 시내를 빙글빙글 돌다가 '모란'이라는 지명이 눈에 들어 와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갑자기 '모란'이라는 표지판을 보니 조영남의 '모란 동백'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구태여 그 노래를 찾아 들으면서 “'모란 마을'로 들어갔다.

“♬~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그런데 뜻밖에 모란 마을에는 모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밤나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토실토실 '알밤'으로 유명한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모란 마을이다.

여기 모란 마을에서는 가로수도 밤나무들이다. 차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튼실한 밤나무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거기다가 어느 마을 어귀에는 '남방적제대장군(南方赤帝大將軍)”과 “북방흑제대장군(北方黑帝大將軍)'이라고 각각 써 놓은 석장승이 양쪽에 서서 나를 보고 웃는다.

원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宇宙)를 오방색으로 표현하며 동서남북과 중앙을 표시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로 '동방청제대장군(東方靑帝大將軍)·서방백제대장군(西方白帝大將軍)·남방적제대장군(南方赤帝大將軍)·북방흑제대장군(北方黑帝大將軍)·중앙황제대장군(中央黄帝大將軍)' 등이 그것이다.

아마도 이 마을은 이런 우주의 원리를 한 숨에 꿰고 있는 덕망 높은 어르신이 살고 계신가 보다. 석장승에 특이하게 '남방적제대장군(南方赤帝大將軍)'과 '북방흑제대장군(北方黑帝大將軍)'을 써 놓은 것을 보니 말이다.

나는 밤나무 가로수가 있는 모란 마을을 나오며 비로소 가을이 주는 풍성함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면서 기회가 있으면 모란 마을을 비롯한 정안면에 대해 자세히 문화원형 조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첫 번째 자료로 나는 오늘, '정안중제19회동창회(정안골호랑이)http://cafe.daum.net/wons6207)'에 '김정규'라는 분이 올려놓은 '시'같은 글귀를 소개한다.

▲ <2016년 9월 14일, 공주시 정안면 모란 마을을 가다가 찍은 석장승 모습과 밤나무 모습>

                                            정안면은                                                       

                                                                                김 정 규

공주시 북쪽에 있다.
내가 태어나 천진한 꿈을 사르고 고단한 삶의 시작을 새긴
광정리가 있다.

밤나무골 인풍 새실 사현 진동말 내촌 고작골 어물 보물 고성 석송
운궁 장원 북계 전평 평정 화봉 모란 대산 구름뱅이 소랭이
오지울 월산 산성 내문 이런 촌락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뽀오얀 먼지를 일으키며 가는 차를 향해
코스모스 뒤에 숨어 손을 흔들던,
석양의 냇가에 피래미 튀어 오를때
긴 둑길을 걷곤 했던곳.

수정같은 눈을 가진 지지배의 말소리가 아련하고
영혼이 맑을것 같은 애를 잊을 수 없는 곳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이 된 모든것들이 있어
언젠가 돌아 가야 할곳으로 확정한 땅.

삶의 지친 다리를 쉴때
내 옆을 스치는 바람에게 늘 일러두곤 하는곳
내 뿌리를 그 땅에 묻고
나를 태워 그곳에 뿌리면
일러둔 바람이 나를 안을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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