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외국에 더 잘 알려진 화가 이광복. 30여 년 동안 고집스럽게 사과를 그린 그가 드디어 귀향했다. 고향을 떠난 지 50년만이다.

이광복 화백은 태어날 때부터 복(福)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독하게도 불우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으로 상을 많이 탔던 이광복 화백은 공주고에 다닐 때 미술부에 들어가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이후 이광복 화백은 공주를 떠나 미군부대와 인연을 맺게 되고, 가슴 아픈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런 속에서도 이 화백은 본격적인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창작미술협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게 된다.

이 대상(大賞)은 그의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끄는 전환점이 됐고, 세계적인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로 떠난 그는 비잔틴미술에 매료돼 그리스에서 머물며 비잔틴 미술을 공부하게 된다. 그는 비잔틴 미술을 전공한 유일한 한국인.

그는 여기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스 문화공보부로 부터 “그리스 이름으로 사과그림 전시회를 하자”며 귀화를 권유받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사이프러스에서 그림지도를 할 때면 전 세계의 학생들이 몰려와 서로 지도를 받고자 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 그가 그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공주중동성당 옆에 둥지를 틀었다. 왜일까?

 

▲이광복 화백이 자신의 꿈을 밝히고 있다.

“공주는 이제 대한민국 충청남도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세계 속의 공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주사람’이 아니라, ‘세계인’이 되어야 합니다. 공주에 살면 모두가 공주사람이지, 공주사람이 따로 있나요? 서로 합심해 전 세계인들이 공주를 찾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50년, 100년의 계획을 갖고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는 그 준비를 위해 공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공주를 ‘사과의 메카’로 만들고 싶습니다. 사과는 전 세계에 3,000여종이 있다고 합니다. 공주에 전 세계의 사과나무를 심어 놓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면 살아 있는 사과박물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미술대학을 찾아가 대학생들에게 사과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이러한 사과그림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 대학생들이 그 나라의 미술계를 주름잡게 되어 그림의 가치는 높아지고, 공주는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매력 있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후손들은 그리스처럼 조상을 잘 둔 덕분에 잘 먹고,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4월 4일은 그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70세 생일인 이날 고향인 공주에 와서 전시회를 갖게 된 것.

▲이광복 화백이 지난 4월 4일 열린 전시회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이날 공주문화원 2층 전시실에는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고, 70세의 이광복 화백은 이날 직접 그리스의 춤을 추며 소년이 되어 전시회장을 누볐다.

양반의 고장 공주에서 70세의 화가가 손수 춤을 추며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사건(?)이다.

 

▲전시회에 걸린 사과그림

 때문인지 관객들은 이날 이광복 화백의 퍼포먼스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환호했고, 전시장에 걸린 섹시한 사과그림을 보고는 홀딱 반했다.

이 전시회에는 소품들이 많이 전시됐다. 이광복 화백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공주시민들 모두가 미술작품을 한 개씩 소장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광복 화백의 화실 내부

 중동에 있는 그의 화실에는 누드, 성화 등 수많은 작품들이 얼굴을 가린 채 좁은 화실에서 벌을 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작은 체구의 그가 화실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예술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저는 우직하게 몇 십 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는데 투자했어요. 지금도 서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과식을 하지 않습니다. 앉아서 그리거나, 과식을 하게 되면 졸음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이광복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말을 듣고 많이 반성했다. 지금껏 살면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오늘 못하면 내일로 미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공부하느라, 또는 일을 하느라 밤을 새웠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참 머쓱하다.

그는 요즈음 열심히 장구를 배우고 있다. 외국에서 전시회를 열 때 두루마기를 입고, 장구를 치며 민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퍼포먼스를 하고자 해서다.

“우리는 공주사람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공주에 살더라도 세계인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세계로 향해 힘차게 나아가 세계인들과 당당히 경쟁해야 합니다. 세계 속으로 뻗어 나가는 공주사람들이 많은 세상,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주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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