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소년과도 같은 심성을 지닌 임동식. 그의 작품이 대전시립미술관에 걸렸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인가에 빠져들게 만드는 그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사람이 있고, 풍경이 있고, 과거가 있고, 미래가 녹아 있다. 그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역사, 인생, 마음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보는 단지 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화자(畵者)가 있고, 화자(話者)가 있다. 이들을 찾아내어 이들과 교감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만 ‘지화자(知畵者)’가 될 수 있다. 그런 과정은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다.

그는 그림 속에서 꿈을 꾼다. 어린 시절의 꿈이다. 그가 어렸을 적 보았던 유구의 풍경은 이색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비단들이 놓여 있는 가게들.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비단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 그리고 그렇게 고단한 삶으로 키워준 부모님을 봉양하는 자식들.

파스를 붙인 비단장사는 누드로 등장한다. 왜 누드일까? 그렇게 화려한 비단들이 널린 비단가게에서 정작 비단장사는 왜 누드로 등장했어야만 할까?

바짝 마른, 주름이 물결치는 고단한 모습의 비단장사는 아름답고, 화려한 비단(緋緞)을 팔고 있지만, 자신의 삶은 고달픈 모양새를 하고 있다.

다행히도 그 비단장사는 자식들을 잘 키웠다. 똥, 오줌을 가려가며 그렇게 힘들여 키운 자식들이 늙은 비단 장사를 외면하지 않고, 정성껏 봉양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익숙한 풍경들이 자주 등장한다. 금강, 공산성, 검바위, 방흥리, 곰나루 등 그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공주의 풍경들이다.

‘봄비 내리고 있는 곰나루’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가슴에도 봄비가 내린다. 몰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풍경이라니…. 기가 막힌다.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의 작품에는 세월이 녹아 있고, 시간이 녹아 있으며, 시각이 달라져 있다. 그림 속의 배경이 춘하추동으로 변하고 있고, 햇빛이 비치는 방향이 어느새 바뀌어 있으며, 보는 각도가 달라져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고, 어렸을 때 보였던 어른은 희미한 상상으로 그림 속에 남아 있을 뿐, 현실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의 그림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림 속에 화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림 속에 존재하는 화가는 화가 자신일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이 자신이기도 하다.

뛰어난 예술은 ‘공감(共感)’이자, ‘공유(共有)’이다. 작가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관객들은 함께 느끼게 되는데, 이 때 맛본 느낌은 이미 관객들도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들이 표현된 그림을 만나게 됐을 때, 그 그림은 관객들의 가슴에 자리를 잡게 되고, 눌러 앉은 느낌은 작가와 공유된다.

그와 여행하고 싶다. 그에게 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다 더 많이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보면 눈 속의 기억으로 남을 뿐이지만, 그가 보면 후대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을 것 아닌가.

나에게 만약 생명을 주관한 능력이 있다면, 훌륭한 예술가들의 수명은 길게, 못된 사람의 수명은 가급적 짧게 해주고 싶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의 전시를 위해 입구 외관에 빨간 색을 칠했고, 배너기를 달아 전시장을 찾는 발걸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여덟 방향에서 본 방흥리 할아버지 고목나루그림을 벽에 붙이지 않고, 메달아 전시했으며, ‘오름길’ 시리즈를 눈높이에 따라 세로로 전시해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배려했다.

12일 열린 개막식에서 임동식 화백은 인사말을 통해 “이 전시는 그림보다 기획이 좋고, 그림보다 전시연출이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13일 자신의 그림을 나에게 설명해 주면서도 줄곧 자신이나, 자신의 그림보다는 대전시립미술관의 변화 시도를 높이 평가하고, 강조했다.

그는 늘 그랬다. 기자인 나에게 자신보다 자신의 동료들, 후배들, 주변사람들을 홍보해주길 원했고, 그들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참 쉽게도 한다.

공주고 재학시절부터 55년의 미술인생이 담긴 이번 전시는 5월 29일까지 열린다. 미술과 관련된 그의 편린들이 다양하게 전시된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총 165점(회화 65점, 드로잉 100여점, 아카이브 자료 등)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이화익갤러리, 갤러리 세솜 등에서 빌려왔다. 그런 만큼 이런 전시회는 다시 만날 기약도, 보장도 없다.

그러니 안보면 후회한다. "너도 그렇다."

<전시회 소개> https://youtu.be/LfXaM9T1m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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