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정지산 백제유적 아래▲ 정지산 백제유적에서 바라본 공주시내 전경. 동쪽으로는 공산성이 마주하고 있다.

정지산백제유적은 공주시 금성동 무령왕릉이 자리한 구릉의 북쪽자락 금강에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공산성이 마주하고 있다.

이 정지산유적은 백제가 웅진에 도읍했던 시기의 국가제사 시설로, 특히 왕이나 왕비의 가매장을 위한 빈전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에 의하면 왕과 왕비는 27개월간 빈전(殯殿)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의 왕릉에 안장된 것을 알 수 있으며, 방위로 볼 때 왕비의 빈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유적은 1996년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설 중인 공주~부여 간 백제큰길 건설공사 중 해발 57m내외의 정지산 정상부와 사면 일부에서 조사됐다.

이 능선의 정상부는 약 800여 평 정도의 평탄한 대지로 이루어졌고, 동사면은 절벽으로 금강에 이어졌으며 남·북사면은 경사도 60도 내외의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대부분 백제가 웅진에 수도를 뒀던 시기의 집 자리와 국가에서 제사의례를 거행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 일부 사비도읍기의 무덤과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의 무덤 등이 조사됐다.

웅진도읍기의 국가제사시설은 능선 정상부를 깎아내 넓고 평탄한 대지를 만들었고, 능선의 사면을 가파르게 깎거나 호(壕)와 목책(木柵)을 시설해 사방에서 격리된 공간을 만든 다음, 내부에 몇 채의 건물을 세웠다.

중심부에는 기와를 사용한 지상건물 1동이 배치되고 그 주변에 단층의 부속건물 몇 동을 만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나무를 세워 울타리를 만들었고 그 바깥쪽에는 호와 목책을 시설했다.

중심건물에 사용된 와당은 대통연화문와당(대통사지 출토품)과 비교할 수 있는 팔엽연화문와당(八葉蓮花紋瓦當)이고, 평와(平瓦)는 매우 얇고 표면에 문양이 없다.

부속 건물로 생각되는 대벽건물지(大壁建物地)는 모두 7동이 조사됐다. 먼저 내벽이 들어설 곳에 도랑을 사각형으로 파고 큰 기둥의 위치에 구멍을 재차 파서 기둥을 세운 후, 그 사이에 작은 기둥을 촘촘히 박아 벽체를 만들었다.

이러한 모습의 건물지는 정지산의 7기와 공산성의 2기만이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약 40군데 이상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유적지의 특징은 화려한 장식이 가미된 장고(長鼓)모양 그릇받침, 삼족토기, 뚜껑접시, 흙으로 만든 등잔, 사격자(斜格子)무늬벽돌 등이 다량 출토됐고, 토기의 경우 매우 정교하다.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윤여헌 명예회장은 “약 3천여 평의 능선 전체에 대단위의 토목 공사를 한 점으로 본다면, 이 시설물은 국가 차원에서 만든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며 “특히 내부 시설물은 국내에서 최초로 조사된 특수한 구조물이어서 자료가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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