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릉동의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전경, ⓒ 특급뉴스 오희숙대전방향으로 4차선 40번 국도를 따라 3㎞정도 가면 왼편에 무릉동으로 향하는 작은 길을 볼 수 있다.공주시는 1998년 이 무릉동에 전국에 예명(藝名)을 떨친 고 인당 박동진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건립했다.고 박동진 선생의 고향이 바로 무릉동이기 때문에 이곳에 전수관을 건립한 것은 뜻있는 일이다.무릉동은 고려왕조가 멸망하자 낙향한 남궁(南宮)씨들의 집성촌이다. 그리고 외부에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고을이기도 하다.고 박동진명창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지만, 1700년대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의 작가로 유명한 퇴석(退石) 김인겸(金仁謙)과 서화가 송재(松齋) 조동욱(趙東旭)도 무릉동 출신이다.▲ 금강교 옆에 세워져 있는 퇴석 김연겸의 가비. ⓒ 특급뉴스 오희숙
퇴석 김인겸은 영조 39년(1763년), 그의 나이 57세 때에 일본 통신사인 조엄  일행의 서기(書記)로 일본에 갔다가 일동장유가를 지었다.

일동장유가는 일본의 문물제도와 인정, 풍속들에 관해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순국문으로 기록한 8,243구에 달하는 장편 기행가사로,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이를 모를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그렇기에 일동장유가를 지은 지 225년이 되는 1989년 전국의 국문학자들이 발기하고 출연(出捐)해 공주시 금강철교 옆에 퇴석 김인겸의 가비(歌碑)를 세웠다.

가비(歌碑)의 기문(記文) 가운데엔 ‘오늘 선생의 인품과 유운(遺韻)을 사모하는 후진들이 정성을 모아, 생시의 선생이 옷자락 펄럭이며 건너다니시던 이 오얏나루 언덕에 조그만 한 덩이 돌을 세워 기린다’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오얏나루는 선생의 향리가 가까운 무릉동이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하지만 윤여헌 향토문화연구회장은 “김인겸의 가비가 서 있는 곳은 차 한대 근접하기 어려운 전막 금강의 구다리 입구”라면서 “무릉동에는 퇴석의 묘소로 널리 알려진 무덤이 있는만큼 연고지를 찾아 동리(洞里) 입구에 마땅히 옮겨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특히 “이 고장을 빛낸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후학들의 의무가 아니냐?”며 “전수관과 함께 기념관을 마련하고, 퇴석과 송재의 유묵을 전시하게 되면 학습의 장으로 활용하거나, 또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일말고도 우리들의 마음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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